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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세청 '주식 실명제'로 재벌 정조준

  • 2015.01.13(화) 13:51

명의신탁 양성화로 과세분쟁 해소..조세硏 연구용역 마무리
친족은 증여세, 타인은 과태료..'주식실명법' 제정 대안

"그룹 회장의 외손자로서 사회적 파급 효과와 비난의 소지 때문에 운전기사에게 명의신탁했다는 주장은 정당화될 수 없다."-코오롱그룹

 

"그룹 회장이 스스로 증여계약서를 작성하고 세금을 납부했기 때문에 명의신탁으로 볼 수 없고, 환급도 해줄 수 없다."-부영그룹

 

2010년 이후 국세청이 주식의 실제 주인을 놓고 재벌가와 한판 승부를 벌인 이력이다. 주식 명의를 둘러싼 크고 작은 세금 분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차명 주식에 대해 세금을 누가 내야하는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삽화: 김용민 기자/kym5380@

 

그렇다면 재벌 총수가 운전기사에게 주식을 맡겼다가 국세청에 적발됐다면 증여세를 누가 내야 할까. 실제 주식의 주인은 재벌 총수지만, 증여세는 명의만 빌려준 운전기사가 내야 한다.

 

현행법상 증여세는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이 내야하기 때문에 운전기사에게 납세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을(乙)의 입장에선 갑(甲)의 부탁을 거부하기도 힘들다. 그러다가 국세청에 걸리면 거액의 증여세를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

 

재벌가의 전형적 탈세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주식 명의신탁'에 대해 국세청이 칼을 빼 들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세법을 바로잡기 위해 '주식 실명제'를 검토하고 있다. 부동산과 금융에 이어 주식에도 실제 소유자를 가려내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 주식으로 '甲질'.."세금은 乙이 낸다"

 

"김 기사. 내가 피치못할 사정이 있으니, 우리회사 주식 10만주만 자네 이름으로 맡아 주게나.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걱정할 필요없네."

 

주식 명의신탁은 처음엔 이렇게 시작된다. 재벌가에선 상속될 주식을 타인의 명의로 분산시켜 상속세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자녀에게 주식을 물려주고도 증여세를 내지 않기 위해 명의신탁이라고 우길 수도 있다.

 

상장기업의 대주주가 되면 주식을 팔 때 양도소득세를 내야하기 때문에 주식을 남의 명의로 돌려놓는 방법도 있다. 주식의 배당에 대한 금융소득 종합과세나 높은 누진세율을 피하기 위해 주식 명의신탁을 사용하기도 한다.

 

잠시 맡아준 주식에 실제 세금을 내야하는지 여부는 조세회피 목적에 따라 결정된다. 주식 명의신탁을 통해 세금을 피하려 했다는 점을 국세청이 입증하지 못한다면 증여세를 내지 않는다. 이 때문에 국세청의 주식 명의신탁 조사를 받는 당사자들은 대부분 조세회피 목적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막상 세금을 낼 사람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재산을 물려받은 적도 없고 단지 명의만 빌려줬을 뿐인데, 증여세를 내야한다는 것이 황당할 따름이다. 세금을 피하려고 한 사람은 회장님인데, 증여세는 운전기사가 떠안아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 증여세 분쟁의 '화약고'

 

주식의 명의를 빌려준 사람에게 증여로 간주해 증여세를 매기는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은 해외 어디에도 사례가 없다. 미국은 재산이 완전히 이전된 후에야 증여세를 부과하고, 증여 후에도 기증자가 다시 상환받을 권리를 갖고 있다면 세금을 내지 않는다. 일본도 재산 이전을 통해 경제적 이익이 발생할 경우에 증여세를 매길 뿐, 명의신탁에 대한 증여 의제 규정은 없다.

 

애매한 규정 탓에 학계에선 끊임없이 위헌성에 대한 논란을 제기하고, 실제 납세자들의 과세 분쟁도 잦은 편이다. 2012년 조세심판원이 결정한 상속·증여세 관련 심판청구 780건 중 주식 명의신탁 증여의제 사건은 184건으로 24%를 차지했다. 세법에 대한 불신만 커지고, 국세청의 행정력도 과도하게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세청도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을 비정상적인 조세 제도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명의신탁주식 실제 소유자 확인제도'를 시행해 비정상의 정상화에 나섰다. 이어 6개월간의 연구용역을 통해 주식 명의신탁을 양성화하는 대안을 마련했다.

 

연구용역을 주관한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이상엽 박사는 "주식 명의신탁의 증여의제 규정은 납세 의무자가 상식적인 법 감정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두꺼운 장벽이 존재한다"며 "자신에게 부과될 세부담을 회피히려는 사람에게 제재를 가하고, 회피한 세부담의 크기에 상응해 제재하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국세청에 제안한 '주식 명의신탁 증여의제' 개선방안

 

 

◇ 친족은 증여세, 타인은 과태료

 

조세재정연구원이 제시한 대안은 친족이 주식을 맡아줄 경우에만 증여세를 매기고, 타인이 명의를 빌려줬다면 최대 30%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규정이다. 과태료는 조세범처벌법에 신설할 수도 있고, 새로 만들 '주식실명법'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도 있다.

 

이때 과태료는 주식의 실제 소유자에게만 부과하거나, 명의를 빌려준 사람에게 절반 정도만 부담시키는 방안이 제시됐다. 명의를 빌려준 사람이 자진 신고할 경우에는 과태료를 면제하거나 깎아주는 '당근책'도 나왔다. 주식 명의신탁을 제보하면 포상금을 주는 방안도 포함됐다.

 

국세청은 연구용역 결과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자본거래의 대표적 조세회피 수단인 명의신탁주식을 양성화하기 위한 법령 제·개정의 추진 업무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세청이 명의신탁 주식 과세의 개선 방안을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에 건의해 세법 개정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자본시장에서도 주식 실명제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세금을 더 부과하는 게 아니라 주식 거래를 투명하게 하자는 취지인 만큼, 반대할 명분이 없다"며 "자본시장에 끼칠 영향은 미미하고, 재벌가의 재산을 양성화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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