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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家 명의신탁] 조 회장과 229명의 주주

  • 2015.01.15(목) 17:14

차명주주 통해 비자금 관리..해외부동산 구입
자금 세탁은 '급여 교환' 수법..국세청도 속아

재벌가의 탈세를 뒤쫓는 국세청이 이번엔 '주식 실명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부동산과 금융에 이어 주식에도 주인을 명확하게 따져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이다.

 

주식의 실제 주인을 둘러싼 세금 분쟁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재벌가의 주식 명의신탁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국세청은 숨겨놓은 주식을 어떻게 찾아내는지 조명한다. [편집자]

 

▲ 삽화: 김용민 기자/kym5380@


"주식을 가족에게 맡기면 증여세, 타인에게 숨겼다면 과태료를 내라."

 

국세청이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주식 실명제'의 핵심 내용이다. 현행 세법은 주식을 맡아준 사람이 무조건 증여세를 내도록 규정돼 있다. 세금을 피하려던 사람은 따로 있는데, 명의만 빌려준 사람이 증여세를 뒤집어쓴다. 관련기사☞ [단독] 국세청 '주식 실명제'로 재벌 정조준

 

상식을 넘어선 세법은 억울한 납세자를 양산하고 있다. 15일 국세법령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주식 명의신탁' 문제로 조세심판원이 결정한 심판청구는 2000건, 국세청 자체 심사청구는 500건에 달한다. 여기엔 재벌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소유한 자산가들이 상당수 연루돼 있다.

 

가장 최근에 포착된 주식 명의신탁 기업은 효성그룹이다. 2013년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조석래 회장의 차명주주들이 대거 밝혀졌고, 그들은 일제히 세금을 추징 당한 후 억울함을 호소했다. 지난해 말 조세심판원에선 국세청이 세금을 제대로 계산했는지 다시 한번 잘 살펴보라는 '재조사' 결정을 내렸다.

 

 

◇ 탈세 내역 담긴 USB

 

2013년 5월 효성그룹 본사에 들이닥친 국세청 세무조사반은 우연히 이동식저장장치(USB)를 발견했다. USB에는 조 회장이 장기간 비밀리에 보유하던 대규모 차명 주식과 금융자산, 자녀에게 증여한 사실 등에 대한 파일이 담겨 있었다. 국세청은 USB를 토대로 조 회장이 엄청난 규모의 차명 주식을 보유하면서 세금을 탈루한 사실을 밝혀냈다.

 

국세청이 처음에 포착한 차명주주는 318명이었지만, 이 가운데 89명은 국세부과 제척기간이 지난 상태였다. 결국 229명에 대해 세무조사를 진행했고, 그들이 468개의 금융계좌를 개설한 혐의를 포착했다. 이 차명계좌를 통해 효성그룹의 전현직 임직원과 그들의 친인척이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국세청은 지난해 1월 과세 실익이 없는 44명을 추려낸 후 185명에게 증여세를 추징했다. 이때 적용한 규정이 논란이 되는 '명의신탁재산의 증여의제'였다. 즉 조 회장의 주식을 맡아준 사람들이 실제로 증여받은 것으로 간주해 세금을 물린 것이다.

 

조 회장에게는 증여세에 대한 연대납세의무자로 지정해 차명주주들이 세금을 못 내면 대신 납부하라고 통보했다. 차명 주식의 실제 주인이었던 조 회장은 2003년 이후 10년간 받은 배당에 대해 종합소득세도 추가로 내야 했다.

 

◇ 국세청도 속았다

 

효성그룹의 치밀한 차명주식 관리는 국세청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이미 2007년에도 효성그룹은 세무조사를 받았지만, 조 회장의 차명주주를 감추면서 국세청을 속인 것이다.

 

국세청은 "조 회장이 1973년경 아버지인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로부터 상속받은 자금과 출처를 알 수 없는 비자금을 차명 계좌로 관리해왔다"며 "229명이라는 다수의 명의를 이용해 조 회장이 실제 주주라는 사실을 감춰왔다"고 밝혔다.

 

▲ 2013년 11월 조세포탈 혐의로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이명근 기자 qwe123@

 

그렇다면 효성그룹은 어떻게 국세청을 속일 수 있었을까. 조 회장은 임직원 명의로 수표를 발행한 후, 새 수표로 차명주식을 취득해 과세당국의 추적을 피했다. 차명주주를 등급별로 나눠 각자의 특성에 맞게 관리했고, 배당소득세 대납은 물론 현금도 주면서 내부 단속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조 회장은 차명주식을 판 돈은 다른 사람의 명의를 이용해 외화로 환전해 해외 고급 부동산을 구입했고, 무기명 장기 채권을 매입해 자녀에게 물려주기도 했다. 효성의 기획팀 직원 5명이 조 회장의 차명주식 계좌 관리를 전담하면서 국세청의 추적을 피할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한 결과였다.

 

◇ 자금세탁의 新기술

 

효성과 조 회장의 자금 세탁에는 독특한 노하우가 있었다. 조 회장이 국세청에 들키지 않기 위해 '급여 교환'이라는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조 회장의 아들 급여는 차입금 이자 상환에 사용하고, 차명주식을 판 돈은 다시 아들 계좌로 넣어주는 수법이다. 국세청은 "자금 출처가 확실한 급여는 차입금 이자 상환을 통해 향후 세무조사에서 소명하는 용도로 활용했다"며 "결국 증여세는 납부하지도 않으면서 주식 매도자금을 물려준 셈"이라고 설명했다.

 

조 회장은 국세청의 계좌 추적을 피하기 위해 차명주식을 판 대금을 1700차례에 걸쳐 소액으로 분산시켜 출금했고, 급여 교환을 통해 비자금의 용처도 숨길 수 있었다. 과세당국의 자금세탁 전문가들도 조 회장의 '급여 교환'은 처음 본 수법이었다. 

 

현재 조 회장과 차명주주들에 대한 세금 분쟁은 법정 소송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말 조세심판원은 국세청의 과세 처분이 대부분 맞지만, 세액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부 오류를 바로잡으라고 결정했다. 조만간 국세청이 최종 세액을 확정하면 조 회장과 주주들의 소송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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