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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 오너 일가의 책임 값 '3107억원'

  • 2021.05.29(토) 11:00

[주간유통]남양유업 오너 일가, 지분 전량 매각
'책임'아닌 '포기'선택…고통은 남은 임직원에게

[주간유통]은 비즈니스워치 생활경제팀이 한 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주간유통]을 보시면 한 주간 국내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벌어진 핵심 내용들을 한눈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편집자]

리스크 관리 실패의 대명사

남양유업 오너 일가가 매각 카드를 빼들었습니다. '초강수'입니다. 사실 그동안 매각 움직임이 있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도 설마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할까 싶었습니다. 남양유업은 57년 역사의 국내 2위 유제품 기업입니다. 그동안 실책도 많았고 악재도 많았습니다. 물론 대부분 스스로 자초한 일들이었습니다만 그래도 실제로 매각을 할지는 몰랐습니다.

돌이켜보면 남양유업처럼 소비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미움을 받은 기업도 드물 겁니다. 2013년 갑질사태 이후 소비자들의 남양유업에 대한 시선은 늘 냉랭했습니다. 여기에 근거 없는 경쟁사 비방, 오너 일가의 마약 사건 등등 소비자들에게 미움받을 짓만 골라서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소비자들은 이런 남양유업에 대해 '불매운동'으로 대응했습니다. 그 세월이 10년이 다 돼갑니다.

남양유업은 신사옥에도 '남양유업'이라는 사명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심지어 남양유업이 제품에서 슬그머니 사명을 빼자 소비자들은 남양유업 제품인지를 판별할 수 있는 사이트까지 직접 제작해 대응했습니다. 세상에 어느 기업이 이렇게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미움을 받을 수가 있을까요? 이는 그만큼 남양유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이 깊었다는 방증일 겁니다. 남양유업의 사례는 기업이 리스크 관리에 실패하면 얼마나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소비자들이 이처럼 지속적으로 남양유업을 불신했던 것은 그동안 벌어졌던 각종 사고에서 남양유업이 보여줬던 태도에 '진정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양유업은 늘 '눈 가리고 아웅'식의 사과만을 반복해왔습니다. 단 한 번도 진심을 담아 사과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소비자들은 이 부분에 분노했던 겁니다.

이번 불가리스 사태 이후 보여준 남양유업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오너가 직접 나서 사과를 했다는 점일 겁니다.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이 울먹이며 "자식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남양유업 입장에서는 최후의 카드였을 겁니다. 내심 '이 정도면 됐겠지'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남양유업의 사과 전략의 핵심은 언제나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였으니까요.

변하지 않았던 '사과 패턴'

하지만 소비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분노했습니다. 남양유업이 '코로나19'라는 가장 민감한 사안을 건드린 것도 있겠지만 홍 전 회장의 사과에서 진정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가장 컸습니다. 만일 남양유업이 진심으로 사과를 하려 했다면 홍 전 회장의 퇴임과 경영권 세습 포기 이외에 그다음에 대한 '책임 있는 약속'이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상대로 남양유업은 여론의 눈치 보기에만 급급했습니다.

물론 오너 일가의 등기 이사직 전원 사퇴 등 액션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여론은 더욱 악화됐습니다. 당연합니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남양이 남양 한 것'에 속지 않습니다.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하고 지배 구조 개선에 대한 요구가 나왔을 때 내심 '지분을 매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홍 전 회장의 사과도 효과가 없는 마당에 이제 내놓을 것이라고는 지분 매각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홍원식 남양유업 전 회장 /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그리고 정말로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실제로 매각 소식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이번 지분 매각으로 홍 전 회장을 비롯한 남양유업 오너 일가는 남양유업에서 완전히 떠났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오너 일가로서 충분한 '책임'을 다 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오랜만에 홍 전 회장과 오너 일가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홍 전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는 보유하고 있던 남양유업 지분 53.08%를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에 매각했습니다. 매각 가격은 3107억원입니다. 3107억원.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업계에서도 놀랍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홍 전 회장 일가가 잘 팔았다"고 말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업을 매각할 때에는 매각 가격에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습니다. 대체로 20~30%가량이 시장 가격입니다. 그런데 이번 남양유업 매각에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100% 붙었습니다. 이례적입니다. 남양유업을 인수하는 한앤컴퍼니가 경영권 프리미엄 100%를 인정한 겁니다. 이는 곧 남양유업이 그만큼 매력적인 매물이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앤컴퍼니, 3107억원을 매긴 이유

남양유업은 최근 수년간 적자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유업계 2위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그것은 남양유업이 그만큼 기술력 등을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남양유업은 그동안 경영상의 실책과 폐쇄적인 의사결정 과정, 후진적인 업무 프로세스 탓에 제 빛을 발하지 못했을 뿐 이런 부분을 제외한다면 기업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히 높다"고 밝혔습니다.

남양유업을 인수하는 한앤컴퍼니는 사모펀드입니다. 사모펀드는 철저히 계산과 숫자로 움직입니다. 손해보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 한앤컴퍼니가 3107억원이나 주고 인수했다는 것은 남양유업 기업 자체는 괜찮다는 이야기입니다. 한앤컴퍼니 입장에서는 남양유업을 짓누르고 있던 '오너 리스크'를 3107억원에 지우고 망가졌던 평판을 올려 되파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곧 홍 전 회장과 남양유업 오너 일가가 진정으로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면 남양유업은 매각하지 않고도 부활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됩니다. 이 대목에서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홍 전 회장 일가는 진정으로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나는 것일까요? 아니면 3107억원이라는 큰돈을 챙기고 사라지는 것일까요?

물론 자신이 가진 지분이고 그 지분을 매각하는 것은 그들의 선택입니다. 누구도 왈가왈부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홍 전 회장의 말처럼 소비자들과 남양유업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미안함이 있었다면 적어도 끝까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고 생각됩니다. 본인이 아버지에게 물려받아 45년간 함께했던 남양유업 식구들에게 보여준 마지막 모습치고는 너무나도 무책임한 모습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오너 일가의 지분 매각…책임? 포기?

남양유업을 인수한 한앤컴퍼니는 "지배 구조 개선과 경영 효율화를 통한 기업 가치 제고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곧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하겠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사모펀드 특성상 비효율을 제거하고 비용을 아낄 겁니다. 이후 남양유업의 기업가치를 올려 다시 매각에 나서겠지요. 그 과정에서 생길 고통은 오롯이 지금껏 홍 전 회장과 오너 일가를 대신해 따가운 시선을 받아왔던 남양유업 가족들이 받을 겁니다. 

홍 전 회장은 남양유업을 매각한 후 임직원들에게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는 "기업 가치는 계속해서 하락하고, 남양유업 직원이라고 당당히 밝힐 수 없는 현실이 최대주주로서 마음이 너무나 무겁고 안타까웠다"며 "고심 끝에 마지막 자존심인 최대주주로서의 지위를 포기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본인과 가족들은 자존심을 포기한 대가로 거액의 돈을 쥐게 됐지만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상처만 남았습니다.

결국 '최대주주로서 마음이 무겁고 안타까웠던' 홍 전 회장과 오너 일가가 버린 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책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책임 값으로 3107억원을 받아 떠납니다. 기업의 오너는 막강한 권력을 쥡니다. 대신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져야 합니다. 하지만 홍 전 회장과 오너 일가는 남양유업을 책임지기보다는 포기를 선택했습니다. 이번 남양유업 매각이 유난히 씁쓸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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