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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방식 바꿨더니"…롯데ON의 '실험' 통했다

  • 2022.01.06(목) 08:42

나영호 롯데ON 대표, 조직 문화에 '메스'
'수직적'에서 '수평적'으로…긍정적 효과
바뀐 문화 토대로 성과 내야…실적 주목

/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야심찬 시작, 실망스런 결과

롯데쇼핑의 큰 고민 중 하나는 이커머스다. 오프라인에서는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유독 온라인에서는 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제 유통업계에서 온라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낙오할 수밖에 없다. 롯데가 지난 2020년 롯데ON을 야심차게 론칭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롯데ON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경쟁사들과 동일한 유형의 서비스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오픈 초기 서버 불안 등의 문제점도 수면 위로 드러났다. 2018년부터 3조원을 투입해 온라인 시장을 잡겠다던 롯데의 선언은 무색해졌다.

/ 그래픽=비즈니스워치

롯데그룹 내부에서는 "롯데ON이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만큼 롯데ON의 부진은 롯데그룹 내부에 큰 상처가 됐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적극적으로 추진한 사업이었던 만큼 기대가 컸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와는 정 반대였다.

업계에서는 롯데ON의 부진이 이미 예견된 일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실제로 롯데ON 론칭을 준비할 당시 내부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여러 군데 흩어져있는 온라인 조직들과 시스템을 모으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는 것은 표면적인 이유다.

그 이면에는 각 조직 간 이기주의가 있었다. 오랜 기간 뿌리박힌 조직 이기주의가 얽히고설키면서 롯데ON이라는 배는 결국 산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결국 롯데그룹은 롯데ON의 수장을 교체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나영호 당시 이베이코리아 전략기획본부장을 선임했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

나 대표 선임은 파격이었다. 롯데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커머스 사업을 외부 출신 인사에게 맡겼다는 것은 롯데에 만연했던 '순혈주의'에 종말을 고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는 롯데가 가진 내부의 고질적인 문제를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바꾸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이런 기조는 지난해 말 있었던 롯데그룹 인사에서 더욱 확실히 드러났다.

롯데ON의 수장이 된 나 대표는 '디지털 DNA'를 강조했다. 그는 "롯데그룹의 디지털 전환이 이 자리에 오게 된 이유이자 나의 미션"이라며 "롯데그룹은 디지털로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거기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하고 혁신해야 한다"고 밝혔다. 나 대표는 다양한 곳에서 이커머스 관련 경력을 쌓고 성과를 내왔다. 롯데닷컴 창립멤버이기도 하다.

나영호 롯데쇼핑 이커머스 사업부장 /그래픽=비즈니스워치

나 대표는 지난해 4월 롯데ON에 부임한 이후 조용한 행보를 보여왔다.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내부부터 메스를 대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조직문화 개선이었다. 나 대표는 지난해 5월 조직문화 TF를 설치했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위해서는 조직 문화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아울러 온라인을 적극 활용했다.

나 대표는 매주 월요일에 전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일명 '먼데이레터(먼레)'라는 이름의 이메일은 현재까지 총 39통이 발송됐다. 먼레에는 일하는 방법, 조직 개편 방향 설명, 행사 리뷰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대표와 경영진이 결정한 내용을 톱다운 방식으로 내려보내는 것이 아닌, 설명과 토론을 통해 조직원들과 공유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기존 롯데 계열사의 대표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임직원 간 온라인 간담회도 수시로 열린다. 간담회 주관은 나 대표나 부문장 등 임원들이다. 대표나 임원들이 주관한다고 해서 예전과 같은 무거운 분위기가 아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피력하고 토론한다. 여기서 얻은 아이디어가 경영 전략에 반영되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각 부문별로 매월, 분기 단위로 모든 직원이 참여하는 '타운홀 미팅'도 열린다.

'수직적' 조직에 이식한 '수평적' 소통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슬랙(Slack)'을 도입한 것도 눈에 띈다. 슬랙은 2013년 출시된 기업용 메시징 플랫폼이다. 한 채널에 인원 제한 없이 필요한 모든 부서 사람이 협업하는 툴이다. 현재 배달의민족, 야놀자 등 IT업계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다.

슬랙은 현재 롯데ON의 주 소통채널이다. 현재 6000개의 채널에서 250만개의 포스트가 생성됐다. 대표적 채널은 '롯데온에서 사고 싶어요', '이런 아이디어 어때요'다. 사원부터 대표까지 전 직원이 슬랙에서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의사결정 시간도 짧아졌다. 통상 4개월이 걸렸던 행사 준비 기간이 3주로 줄었다. 그동안 롯데가 하고 싶었지만 못 했던 것들을 이런 실험을 통해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기업형 메시징 플랫폼인 '슬랙'의 예시 화면 / 사진=슬랙 홈페이지 켑처.

모든 직원이 아웃룩을 통해 일정을 공유하고 있는 것도 큰 변화다. 기존에는 회의 담당자가 참석자들의 스케줄을 알아보고 회의 일정을 잡아야 하는 등 번거로웠다. 하지만 이제는 아웃룩 일정을 기반으로 참석자의 일정을 확인하고 참석 요청 메일만 보내면 되는 형태로 변화했다.

또 미팅의 목적을 의사결정, 아이디어, 일정 체크 등 5가지로 구분해 사전에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요청하게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미팅을 줄이고 미팅 시간을 효율적 사용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지는 취지다.

조금씩 나타나는 성과…실적 연결될지 주목

롯데ON의 이런 시도는 실제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롯데ON의 GMV(총 거래액)은 전년 대비 45.1% 증가했다. 롯데ON에 셀러 등록을 하고 판매를 통해 실제로 매출이 발생한 셀러인 '액티브 셀러'의 수도 전년 대비 126% 늘었다. 더불어 론칭 초기부터 문제점으로 꼽혔던 메인화면 로딩 시간도 기존 대비 절반으로 줄인 1.3초로 당겼다.

롯데ON의 이같은 '실험'은 의미가 있다. 이는 신 회장이 나 대표를 롯데ON으로 불러온 이유이기도 하다. 보수적이고 정체된 조직문화를 바꾸면 실제 경영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여서다. 신 회장이 수년째 사장단 회의인 VCM에서 '변화'를 주문해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롯데ON이 그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 사진제공-롯데쇼핑

물론 아직 숙제도 산적해있다. 가장 큰 것이 실적이다. 롯데쇼핑 이커머스 부문의 지난 3분기 매출액은 240억원이었다. 전년 대비 14% 감소한 수치다. 여기에 46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적자폭이 커졌다. 지금까지는 조직 문화의 변화를 통해 잘못된 습관을 바로잡았다면, 앞으로는 바로잡은 습관을 토대가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 롯데ON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다.

맹창주 롯데ON 조직문화 TF팀장은 "최근 온라인 환경이 변하는 속도가 빠르고 이에 얼마나 유연하게 대처하느냐가 경영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한 경쟁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빠른 의사결정 및 의견 수렴 등이 가능한 조직문화와 MZ 사원들도 부담 없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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