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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배추가 요즘 제철"…대상, '김치 세계화 거점' 가보니

  • 2023.11.22(수) 06:50

[K푸드 격전지를 가다]
김치 세계화 표준 만드는 대상 LA 공장
배추부터 마늘까지 원재료 현지 공급
현지 입맛 공략…얼얼한 매운맛 김치 준비

[로스앤젤레스=안준형 기자] "요즘 캘리포니아 날씨가 딱입니다"

지난 8일 대상 LA 공장에서 만난 권오종 공장장이 서늘해진 11월 캘리포니아 날씨에 자란 배추로 갓 담근 김치를 소개했다. 이달 들어 캘리포니아 날씨가 쌀쌀해지자 배춧속이 꽉 차고 단맛이 올라온 것이다. 한국의 김장철쯤에 캘리포니아에도 배추 제철이 돌아온 셈이다.

배추는 김치의 70%를 차지하는 핵심 재료다. 대상은 일 년 내내 제철 배추로 김치를 만들기 위해 배추 공급처를 미국 전역으로 넓혔다. 그는 "캘리포니아 날씨가 더워지면 위쪽 시애틀에서, 추워지면 애리조나와 멀리 선 멕시코에서 배추를 공급받는다"고 설명했다.

대상 LA 공장의 김치 생산 라인 /사진=대상 아메리카 제공

'메이드 인 USA' 종가 김치

미국산 배추로 만든 '메이드 인 USA' 김치를 담그는 이곳은 작년 3월 완공된 대상 LA 공장이다. 국내 식품회사 중 미국에 건설된 첫 번째 대규모 김치 공장으로, 대상은 이곳을 김치 세계화의 거점으로 점찍었다. 현지화를 위해 '종가집' 브랜드명에서 '집'도 떼어냈다.

미국인 입맛에 맞는 '종가' 김치를 만들기 위해 배추뿐 아니라 무, 마늘, 파 등도 미국 땅에서 자란 식재료로 공급받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재료는 베트남 피시 소스 회사인 '레드보트'에서 공급받는 멸치액젓과 중국산 고춧가루 정도다.

연간 2000톤의 김치 생산이 가능한 제조라인이 들어선 이 공장은 체계적이고 위생적인 김치 제조 방식으로 김치 세계화의 '생산 표준'을 만들고 있다. 그간 영세한 한인 업체들이 한인을 대상으로 만들던 김치 생산 방식에서 벗어났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상 사업보고서에 공시된 '아메리카 지역' 매출

대상 LA 공장의 공정은 크게 '배추 절임-양념 버무림-숙성' 등으로 나뉜다. 

배추 속 줄기 한가운데 있는 '심'을 제거한 뒤 '조각 김치' 형태로 잘게 자른 배추를 염수에 16시간 이상 절이는 것이 첫 번째다. 소금 대신 소금물을 사용해 배추를 골고루 절인다. 대상 LA 공장에선 포기 김치 대신 조각 김치만 생산하고 있다. 

김장 양념은 먹기 좋게 손질된 무·생강·마늘·파 등을 고춧가루·타피오카 시럽·멸치액젓 등과 버무려 만든다. 절인 배추와 양념은 각각 7대 3의 비율로 치댄다. 저온 창고에선 유통과정에서 김치가 빨리 익지 않도록 하루 이상 숙성해 '품온'(김칫속 온도)을 낮추면 김장은 완성된다. 과정마다 깐깐한 재료 세척도 빠지지 않는다.

현지 공장에서 한국의 맛을 내기 위해선 신선한 재료의 공급망 확보가 핵심이다. 미국에서 자란 배추는 한국 배추보다 평균 20% 크지만 얼마나 속이 꽉 찼는지 얼마큼 단맛을 내는지는 원재료 수급 과정에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고춧가루도 믿을만한 공급처를 확보한 뒤 입자와 색 등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 입자가 고운 고춧가루를 많이 쓸수록 김치가 빨갛게 되지만 맛은 뻑뻑해질 수 있어 입자가 굵은 고춧가루를 적당히 섞는 '황금 비율'이 중요하다.

숙성중인 김치 /사진=안준형 기자 why@

"멸치 액젓 맛 알아 버렸다"

대상 LA공장의 주력 제품은 김치 본연의 맛을 살린 오리지널 김치와 멸치액젓이 첨가되지 않은 비건 김치다. 공장 가동 초반엔 비건 김치가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미국인들도 멸치액젓이 첨가된 김치의 감칠맛을 안 셈이다. 

권 공장장은 "공장 가동 초반에는 비건 김치가 잘나갔지만 지금은 역전됐다"며 "멸치 액젓의 맛을 알아버렸는지 오리지널 김치가 치고 올라오는 속도가 빨라졌고, 이번 주 생산량을 보면 비건보다 오리지널 김치 생산이 더 많이 잡혀있다"고 전했다. 이날 생산된 김치도 모두 오리지널 김치였다.

이 밖에 백김치, 비트김치, 피클무, 맛김치, 양배추 김치 등도 수요에 따라 만든다. 이중 비트 김치는 미국인 입맛에 맞게 만든 현지화 제품이다. 올해는 한국인 입맛에도 칼칼한 매운맛 김치를 신제품으로 준비하고 있다. 불닭볶음면처럼 전 세계에 김치의 매운맛을 알리겠다는 계획이다.

포장중인 '종가 김치' /사진=안준형 기자 why@

'서울 김치' M&A 시너지

대상 LA 공장에서 생산하는 김치는 미국 최대 마트 월마트와 한인이 주로 찾는 H마트 등에 공급된다. 2013년 유통망을 뚫은 뒤 대상의 '효자' 판매처가 된 미국 코스트코는 한국의 거창 공장이 김치 공급을 맡는 구조다. 김치 공급량은 코스트코가 월마트를 압도하는 상황으로, 대상 LA 공장 입장에선 미국 공급망을 확대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 상황이다. 

대상은 지난 6월 인수한 미국 아시안 식품전문회사인 럭키푸드를 통해 미국 현지 공급망 확대를 노리고 있다. 럭키푸드의 '서울 김치'와 시너지를 통해서다. 유통망을 확대하려면 마트 납품을 중계하는 유능한 디스트리뷰터(도매상)를 뚫어야 하는데, 대상은 설립 23년 된 럭키푸드가 가진 디스트리뷰터 네트워크를 활용할 계획이다. 

이정한 대상아메리카 경영전략본부장은 "대상의 '종가 김치'는 월마트의 3분의 1 정도에 입점한 반면 럭키푸드의 '서울 김치'는 월마트 전 매장에 들어가 있다"며 "럭키푸드의 미국 내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전했다.

대상 LA 공장은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현재 330g과 1.2kg 두 종류로 생산되는 김치에 400g 포장 라인을 증설하고 있다. 400g 포장 라인은 럭키푸드가 월마트에 납품하는 '서울 김치'의 생산 라인이다. 

내년엔 추가 투자를 진행해 김치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다. 당일 절인 배추를 바로 김장에 쓸 수 있도록 절임 설비도 확충된다. 여기에 샘스클럽 등 현지 유통채널 확대도 추진 중이다. 원가 부담이 높은 미국에서 이익을 내기 위해선 '박리다매'밖에 뾰족한 수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권 공장장은 "미국 소비자에게 아직 생소한 김치는 마케팅 또한 숙제"라며 "김치를 그대로 먹는 것 외에 김치볶음밥, 김치전, 김치찌개 등으로 요리할 수 있는 문화를 알릴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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