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전 회장의 횡령·배임 혐의로 거래정지된 쌍방울이 지난해에 이어 또 다시 무상감자를 진행한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조치다. 쌍방울은 상장폐지에 대한 이의제기 후 개선기간을 부여받았다. 개선기간 동안 재무구조 개선의 노력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장 폐지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쌍방울 주주들의 입장은 다르다. 거래정지에 이어 무상감자까지 이어지자 쌍방울 주주들은 애를 끓이고 있다. 무상감자가 재무구조 개선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회사의 개선 노력에 따라 상장 유지 여부가 결정날 것으로 전망한다.
작년에 이어 또
쌍방울은 지난 22일 주식 98% 비율의 무상감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발행 주식은 감자 전 2억6259만2129주에서 감자 후 525만1843주로 줄어든다. 자본금은 감자 전 1312억9606만4500원에서 26억2592만1500원으로 감소한다.
감자기준일은 오는 10월23일이다. 기명식 보통주 50주를 동일한 액면가의 기명식 보통주 1주로 무상병합한다. 명의개서정지기간은 내달 7~9일이다. 명의개서정지는 회사가 주권발행 전 주식 또는 증권예탁원에 보관 중인 주권의 명의개서를 일정기간 동안 금지하는 것을 말한다. 매매거래 정지예정기간은 10월22일~11월8일이다. 신주상장예정일은 11월11일이다.
쌍방울은 감자사유에 대해 "자본잠식을 해소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감자를 통해 자본금이 낮아지면, 자본총계와 자본금의 차이가 벌어지면서 자본잠식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문제는 쌍방울의 무상감자 카드가 효과가 있을지 여부다.
앞서 쌍방울은 지난해 4월에도 무상감자를 실시했다. 당시 쌍방울은 보통주 95%를 무상감자하겠다고 밝혔다. 보통주 20주를 1주로 무상병합하는 방식이었다. 무상감자 소식에 주가는 급락했다. 작년 7월 쌍방울의 주식 거래는 정지됐다.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의 횡령·배임 혐의가 제기된 탓이다.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9월 쌍방울이 상장폐지기준에 해당한다고 통보했다.
이후 쌍방울은 한국거래소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했고 한국거래소는 기회를 줬다. 오는 12월 22일까지 개선기간을 부여했다. 개선기간에도 주식거래는 중단된다. 쌍방울로선 개선 기간 내에 재무구조 개선에 있어 유의미한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그만큼 절박하다. 이번에 또 다시 무상감자 카드를 꺼낸 것도 이 때문이다.
쌍방울 상폐되면
쌍방울그룹의 지배구조는 순환출자 구조다. '쌍방울→비비안→디모아→아이오케이→제이준코스메틱→광림→쌍방울'로 이어져 있다. 쌍방울이 상장폐지 될 경우 상장된 그룹 계열사의 주주들에게도 타격이 가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증권업계에서는 쌍방울의 경우 횡령·배임 이슈가 있었던 만큼 지배구조 개선, 내부 통제 등에 대한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임원진의 횡령·배임으로 발생한 상장폐지 요인을 어떻게 개선하느냐가 향후 상장 유지 여부를 가늠할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국거래소가) 개선기간을 부여했다는 것은 회생 기미가 보인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회사가 횡령·배임 금액 때문에 실질심사 요건에 들어간 것이라면 해당 마이너스 부분을 메우기 위한 회사의 노력 여부에 따라 상장폐지 결정이 철회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쌍방울이 한국거래소에 상장폐지에 대한 이의신청 시 약속한 개선사항은 알 수 없다. 상장폐지 최종 심의 의사록은 한국거래소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이의신청 혹은 개선기간 중 해당 기업의 의사록은 공개대상에서 제외돼서다. 쌍방울 측 역시 "이의신청 내용은 대외비로, 외부에 노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언제까지 발 묶여야"
속이 타는 건 쌍방울 주주들이다. 무상감자는 회사의 자본금을 줄여 재무개선에는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주주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없다. 통상적으로 기업의 재무가 악화할 때 이를 개선하기 위해 시행하는 만큼 주가에는 부정적이다. 거래정지에 무상감자까지 겹친데다, 개선기간 이후 상장이 유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쌍방울 주주들이 애가 타는 이유다.
다만 개선기간 중 쌍방울이 상장 유지 여부를 신청하거나 쌍방울의 개선계획이 불이행된 사실이 확인될 경우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상 개선기간 종료 전에도 상장공시위원회를 개최할 수 있다. 개선계획의 이행여부 등을 고려해 상장적격성 유지 여부를 심의가 열릴 수 있다. 즉 개선기간 종료일 전에도 언제든 쌍방울에 대한 상장폐지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사실 쌍방울은 한때 재계 순위 51위에 오를 만큼 탄탄한 회사였다. 1954년 이봉녕, 이창녕 형제가 설립한 내의류 제조회사로, 트라이 등의 브랜드를 앞세워 국내 내의 시장을 장악했다. 이후 의류, 생활용품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여기에 리조트, 야구단 등 사업을 다각화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무리한 확장으로 자금난에 처한 쌍방울은 결국 1997년 IMF사태 당시 부도를 피해가지 못했다. 이후 2010년 회사의 주인이 바뀌었다. 김성태 전 회장이 레드티그라스라는 특수목적법인을 통해 쌍방울을 인수했다.
쌍방울의 매출은 2011년만 해도 1588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2016년 1100억원대로 떨어졌고, 그해 15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19~2021년엔 3년 연속 매출이 900억원대를 기록했다. 2022년엔 반짝 1000억원대로 반등했으나 지난해 947억원으로 다시 줄었다. 2020년부터 2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하다가 2022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당기순이익은 여전히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횡령 여파 벗어나기 '안간힘'
지난 12일 김 전 회장은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혐의는 외국환거래법 위반, 뇌물공여,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이다. 앞서 김 전 회장은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도지사이던 2019년에 경기도를 대신해 북한에 800만달러를 지급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당초 김 전 회장은 134억8000여 만원(자기자본의 9.72%)을 횡령·배임한 것으로 공시됐다. 지난해 2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업무상횡령, 업무상배임에 36억4000여 만원, 같은해 7월 98억4000여 만원을 추가 횡령·배임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그 판결엔 3억2600여 만원이 확인됐다. 이를 제외한 재판은 현재 진행 중이다.
현재 쌍방울은 김 전 회장의 그늘 지우기에 총력을 펼치고 있다. 실적 개선은 물론 내부 운영 효율화, 사업부별 실적 개선 등 사업 다각화를 통해 재무구조를 건전하게 바꾸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지역자치단체, 복지기관 등에 적극적인 물품 기부 등으로 실추된 기업 이미지를 다시 세우겠다는 생각이다.
쌍방울 관계자는 "현재 기업가치 회복과 거래재개를 위해 내부통제시스템을 강화한 것은 물론 건전하고 투명한 상장법인이 되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며 "이번 무상감자를 통해 자본잠식을 해소하고 재무구조 개선에 따른 경영기반으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