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쇼핑몰'을 낙점하고 오는 2030년까지 7조원을 투자한다. 올해 수원에서 먼저 선보인 '타임빌라스' 브랜드를 본격적으로 활용해 미래형 쇼핑몰을 선보인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국내 쇼핑몰을 13개까지 확대하고 쇼핑몰 1위 사업자가 되겠다는 목표다.
유통업의 미래는 '쇼핑몰'
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는 지난 23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서울에서 열린 '쇼핑몰 중장기 전략 발표 간담회'에서 "2030년까지 7조원을 투자해 13개 쇼핑몰을 운영할 것"이라며 "2030년 13개 쇼핑몰에서 6조6000억원의 매출을 내 국내 쇼핑몰 시장 1위 사업자가 되겠다"고 밝혔다.
롯데백화점은 2030년까지 송도, 수성, 상암, 전주에 4개의 신규 쇼핑몰을 세운다. 또 군산, 수완, 동부산, 김해 등 기존 아울렛 7개점은 증축 및 리뉴얼해 쇼핑몰로 전환한다. 해외에서도 쇼핑몰을 신규 출점하거나 위수탁 운영하는 등 쇼핑몰 사업을 추진한다.
롯데백화점이 쇼핑몰에 집중하는 것은 최근 유통 시장 트렌드와 맞물려 있다. 유통 시장의 주력 소비 주체로 떠오르고 있는 MZ세대는 체험 콘텐츠에 관심이 높고 넓은 동선, 높은 층고, 여유 있는 주차장 등 개방감 있는 쇼핑 공간에 대한 선호가 높다. 이에 부합하는 쇼핑몰이 최근 MZ세대의 관심을 받는 채널로 급부상하고 있다. 잠실의 롯데월드몰, 여의도의 더현대서울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과 유사한 시장인 일본의 경우 이미 쇼핑몰이 백화점을 대체하며 꾸준히 성장하는 추세다. 일본 쇼핑몰 시장은 2000년대 들어 이미 시장 규모 면에서 백화점을 넘어섰다. 지난해 기준 일본 쇼핑몰 시장 규모는 약 117조원으로 10년 전보다 13% 성장했다. 반면 백화점 시장 규모는 지난해 51조원으로 2013년보다 15% 축소됐다. 아울렛은 2013년 이후 신규 출점 자체가 없을 정도로 정체돼 있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여전히 백화점이 유통 시장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국내 백화점 시장 규모는 약 39조원인 반면, 쇼핑몰 시장 규모는 아직 5조원 수준이다. 2030년에도 백화점 우위는 지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그 성장률은 정체될 가능성이 높다. 수도권과 지방, 대형점과 중소형점의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시장 내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은 2023년부터 2030년까지 백화점의 연평균 성장률(CAGR)이 2%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쇼핑몰 시장은 유통 대기업들이 공격적으로 진출하면서 2023~2030년 연평균 성장률이 17%에 달할 전망이다. 시장 규모도 13조원으로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정 대표는 "일본 리테일 시장 현재 쇼핑몰이 전체의 약 68%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경우 2030년에도 백화점이 주력이겠지만 쇼핑몰의 유통 시장 점유율이 약 30% 정도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잠실·하노이서 기회 봤다
하지만 쇼핑몰 사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부지 가격과 건축비 상승에 따른 투자비 부담이 크다는 점, 지자체의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 쇼핑몰에 적합한 테넌트가 부족하다는 점 등이 있다.
정 대표는 "도심 근교에 1만5000평 규모의 쇼핑몰을 열기 위해서는 10년 전 약 4000억원 정도가 필요했지만 현재는 7500억원 정도가 든다"며 "지자체 및 인근 소상공인과의 상생도 해결해야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백화점에서는 평균 30평 정도의 매장을 운영하는 브랜드들이 쇼핑몰에서는 100평, 150평 정도의 매장을 운영하며 다양한 상품을 준비할 수 있는가 하는 점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롯데백화점은 여러 쇼핑몰을 운영한 경험을 바탕 삼아 쇼핑몰 시장에 기회가 있다고 판단했다. 국내에서는 '롯데월드몰', 해외에서는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가 쇼핑몰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롯데백화점은 2022년 롯데물산으로부터 롯데월드몰 운영권을 넘겨받으며 백화점, 롯데월드몰, 에비뉴엘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데 주력했다. 이후 매년 25%씩 고성장을 거듭하며 연간 5500만명이 방문하는 쇼핑 명소로 자리매김 했다.
또 지난해 오픈한 베트남 하노이의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는 개점 약 4개월만에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 이미 쇼핑몰 매출 2800억원을 내며 하노이 내 19개 쇼핑몰 중 1위를 달성했다. 올 연말까지 매출 3000억원을 달성할 전망이다.
특히 롯데백화점은 2010년 이후 백화점, 아울렛 사업 확대를 위해 이미 다수의 사업 부지를 확보한 상태다. 2010년 계약한 송도(2만6000평), 2012년 계약한 전주(1만5000평), 2013년 계약한 상암(6300평), 2014년 계약한 대구(2만3000평) 등이 있다. 정 대표는 "계약 당시에는 백화점 중심으로 투자가 이뤄져 개발이 다소 지연됐으나 최근 우리가 쇼핑몰을 짓겠다는 의지를 보이자 지자체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롯데그룹이 보유한 다양한 콘텐츠도 롯데백화점만의 장점이다. 롯데그룹은 자라와 유니클로, 무인양품(MUJI), 캐나다구스, 바샤, 콘란, 롯데리아 등 다양한 쇼핑, F&B 콘텐츠 외에도 롯데월드와 롯데시네마 등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롯데건설의 주거 시설, 롯데물산의 오피스 시설, 롯데호텔 등까지 결합한 대규모 복합 단지를 구성할 수 있다. 정 대표는 "쇼핑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숙박, 업무시설 등 롯데그룹 내 콘텐츠를 활용하는 것이 롯데 쇼핑몰 사업의 차별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더 가까운 곳에 고급스럽게
롯데백화점이 내세우는 쇼핑몰 브랜드는 '타임빌라스(TIMEVILLAS)'다. 시간(Time)과 별장(Villas)의 합성어로 '새로운 시간이 열리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타임빌라스는 원래 2021년 롯데아울렛 의왕점 오픈 당시 사내 공모를 통해 선정된 브랜드명이다. 롯데백화점은 올해 롯데백화점 수원점과 롯데몰 수원점을 하나의 복합쇼핑몰로 합치면서 다시 타임빌라스라는 브랜드를 꺼내들었다.
24일 그랜드 오픈하는 '타임빌라스 수원'은 앞으로 롯데백화점이 추구할 미래형 쇼핑몰 사업의 첫 결과물이다. 롯데백화점은 이곳에서 기존 면적의 약 70%를 바꾸는 회사 역사상 최대 규모의 리뉴얼을 단행했다. 지난 5월 타임빌라스 브랜드로 전환한 후 타임빌라스 수원의 신규 고객 매출은 전년 대비 40% 이상 늘었다. 수원 외 지역에서 온 광역형 고객 매출도 20% 이상 확대됐다. 2030 매출도 30% 가량 급증했다. 객단가는 12만원으로 수원 내 경쟁 쇼핑몰보다 높다.
롯데백화점은 타임빌라스 브랜드를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도심에서 가까운 지역에 고급화 한 복합문화단지로서 타임빌라스 브랜드를 차별화 한다는 전략이다. 지자체의 대규모 프로젝트로 개발되는 상업, 업무지구 중심부에 롯데그룹 자산을 활용한 '멀티 콤플렉스'를 개발할 예정이다.
특히 롯데백화점은 세계적인 건축가와 협업해 쇼핑몰 건물 자체를 '건축 랜드마크(Architectural Landmark)'로 만들 생각이다. 송도와 상암은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리처드 마이어와 협업해 쇼핑몰과 리조트, 오피스텔이 결합된 복합단지로 조성한다. 대구 수성은 영국의 유명 쇼핑몰 설계사인 LDA와 협업해 ‘인앤아웃도어(In&Outdoor)’ 콘셉트를 적용할 계획이다.
롯데백화점은 해외에서도 쇼핑몰 사업을 키운다. 정 대표는 "하노이 시는 제2, 제3 신도시가 만들어질 때 롯데가 쇼핑몰과 주거 시설, 오피스 등이 합쳐진 복합단지를 조성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1위 사업자
롯데백화점은 올해 수원에 이어 2026년 송도와 수성, 2029년 상암, 2030년 전주에 신규 출점을 예정하고 있다. 기존 아울렛의 증축 및 리뉴얼 계획에는 2025년 군산, 2026년 광주 수완, 2027년 의왕, 2028년 김해, 2030년 파주가 포함됐다. 경기도 용인과 서울 은평의 롯데몰 역시 타임빌라스로 리뉴얼할 예정이다.
신규 출점과 기존점 리뉴얼을 마치면 2030년 롯데백화점이 운영하는 쇼핑몰은 13개로 늘어난다. 이를 통해 6조60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롯데백화점은 기대하고 있다. 이 경우 쇼핑몰 시장 점유율 51%의 1위 사업자가 될 수 있다.
롯데백화점의 매출 비중은 2023년 기준 백화점 75%, 아울렛 24%, 쇼핑몰 1%로 구성돼 있다. 롯데백화점은 쇼핑몰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해 2030년 쇼핑몰 매출 비중을 최대 3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쇼핑몰 사업 확대를 위한 7조원의 자금 조달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게 정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현재 롯데백화점이 보유하고 있는 자금과 매해 만들어낼 EBIDTA 범위 내에서 자금을 조달할 것"이라면서 "현재 연결 회사의 부실을 털어내는 등 적자 규모를 줄이고 있어 적정 부채비율을 유지하면서 수익을 내는 범위 내에서 집행 가능한 금액을 계산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타임빌라스는 패션, F&B, 엔터테인먼트, 컬처, 여행과 비즈니스 등 고객이 바라는 모든 경험이 연결된 쇼핑몰의 미래”라며 "타임빌라스가 모든 유통업체가 동경할 미래형 리테일의 표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