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던 면세점이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했다. 이번에는 현대백화점마저 서울 시내면세점인 현대면세점 동대문점을 폐점하기로 했다. 지난 2020년 문을 연지 5년 만이다.
면세업계는 코로나19 이후 긴 불황에 빠져 있다. 중국인 단체관광객(유커)가 돌아오지 않는데다 인천국제공항 임대료, 다이궁(중국인 보따리상)에게 지급하는 송객수수료 등으로 수익성이 날로 악화하고 있어서다. 불황이 장기화하자 면세점들은 어렵게 얻은 특허를 반납하고 희망퇴직을 진행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적자의 늪
현대백화점 자회사 현대면세점은 경영 효율화를 위해 오는 7월 말까지 동대문점을 폐점하기로 했다고 1일 밝혔다. 동대문점은 5년의 특허 종료를 앞두고 지난해 11월 특허를 연장했으나 결국 폐점 대상이 됐다. 현대면세점 동대문점의 지난해 매출액은 2238억원이다. 이와 함께 현대면세점은 1호점인 무역센터점 역시 기존 3개층(8~10층)에서 2개층(8~9층)으로 축소 운영하기로 했다.
현대면세점은 "회사 설립 후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최선을 다했으나 중국 시장 및 소비 트렌드 변화 등 대내외 경영 환경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며 "많은 고민 끝에 면세산업 전반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경영 상황 개선과 적자 해소를 위해 경영 효율화를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대백화점은 2016년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를 따내며 면세시장에 진출했다. 2018년 말 1호점 무역센터점을 열었고 2019년에는 두 번째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와 인천공항 1터미널 사업권까지 획득하며 단숨에 3개 매장을 확보했다.
이번에 폐점하는 동대문점은 2019년 특허를 획득해 2020년 초 문을 연 현대면세점의 두 번째 매장이다. 강남에만 매장이 있던 현대면세점은 유커가 많은 강북에 진출하기 위해 두산의 두타면세점이 문을 닫은 자리를 임대했다. 당시 현대면세점은 두산의 보세창고와 직원까지 승계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면세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었고 엔데믹 이후에도 회복되지 않으면서 현대면세점의 실적도 크게 악화했다. 2022년 2조2571억원에 달했던 현대면세점의 매출액은 지난해 기준 9721억원까지 줄었다.
현대면세점은 1호점 개점 이래 한 차례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결국 현대백화점은 면세점 사업을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동대문점 폐점으로 현대백화점이 운영하는 면세점은 서울 시내의 무역센터점과 인천공항점 2곳으로 줄어든다.
현대면세점은 "이번 경영 효율화 추진은 면세산업 전반에 걸친 위기 상황 속에서 사업을 정상화하고 나아가 미래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투명하고 안정적인 사업 정상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6개→13개→7개
면세업계에서는 중국인에만 의존해온 기형적인 시장 구조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무분별하게 신규 특허를 남발했던 것이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지난 2015년만 해도 면세점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평가를 받았다. 전통적인 유통업인 백화점, 대형마트의 성장이 둔화하는 가운데 면세점만 유커 증가에 힘입어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그 해 15년 만에 신규 서울 시내면세점 3곳을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이 중 대기업 몫이었던 2개의 특허에 7개의 기업이 도전하면서 '면세점 대전'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중소중견기업의 1개 특허에는 무려 14개 기업이 도전했다. 당시 승자는 현대산업개발과 호텔신라의 합작법인인 HDC신라면세점과 한화갤러리아, 그리고 하나투어, 제이에스티나(당시 로만손), 토니모리 등 컨소시엄으로 구성된 에스엠(SM)면세점이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특허기간이 만료되는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권 2개를 두고 대기업간의 2차 면세점 대전이 벌어졌다. 이 때 신세계와 두산이 처음으로 면세시장에 진출했다. 이듬해 10월에도 신규 특허가 3곳 추가돼 '3차 면세점 대전'이 이어졌고 롯데면세점과 신세계, 현대백화점이 특허를 따냈다.
이렇게 벌어진 세 차례의 면세점 대전으로 서울 시내면세점의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1차 면세점 대전 직전인 2015년 상반기 기준 서울 시내면세점은 6곳에 불과했으나 2019년 상반기에는 13곳까지 늘었다.
문제는 '큰손'인 중국인이 사라지면서 시작됐다. 면세점은 2016년 사드 배치 보복으로 시작된 한한령으로 유커의 수가 줄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유커의 빈 자리를 다이궁으로 채우려다보니 송객수수료 탓에 수익성까지 크게 악화했다. 여기에 2020년 팬데믹 사태가 터지며 면세업계의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결국 2019년 4월 한화갤러리아가 여의도 갤러리아 63의 특허를, 같은 해 10월 두산이 두타면세점의 특허를 내놓으며 면세시장에서 철수했다. 2020년에는 중소중견기업인 탑시티와 에스엠면세점마저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를 내놨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2년에는 업계 1위 롯데면세점마저 코엑스점을 폐점했다. 이번에 현대면세점 동대문점마저 문을 닫으면서 이제 서울 시내면세점은 7곳만 남게 됐다.
끝나지 않는 구조조정
면세업계의 위기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팬데믹이 끝난 이후 국내 관광시장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면세점은 좀처럼 이 수혜를 입지 못하고 있다. 면세점을 찾는 외국인 수는 다시 늘어나고 있지만 객단가가 높은 유커 대신 씀씀이가 작은 개별 여행객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전히 다이궁에 의존하는 구조 탓에 수익성은 날로 악화하고 있다.
실제로 롯데면세점의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보다 6.1% 성장한 3조2680억원을 기록했으나 영업손실 1432억원이 발생하며 적자 전환했다. 신라면세점 역시 지난해 매출액 3조2819억원을 내며 전년보다 11.9% 증가했지만 영업손실 697억원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신세계디에프도 매출액이 전년보다 6.3% 늘고도 197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로 돌아섰다.

이 때문에 면세점들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6월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희망퇴직을 받았다. 롯데월드타워 영업점의 면적도 축소했다. 특히 올 1월부터는 수익성 악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다이궁과의 거래를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신세계면세점 지난해 역시 희망퇴직을 받았고 최근 부산점을 폐점했다.
면세점들은 다이궁과의 거래를 점진적으로 줄여가는 한편 개별 여행객을 잡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또 정부가 오는 3분기부터 유커에 대한 한시 비자 면제를 추진하고 있어 단체관광객 유치를 위한 전략도 함께 수립 중이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고환율과 고물가로 업황 자체가 어려워져 내실 경영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중국인에 의존했던 호황기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점차 정상화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