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 다음은 최악
지난해 최고의 유행어가 뭘까요. 아마 "빠쓰잖아?"가 아닐까 싶습니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넷플릭스 요리 서바이벌 '흑백요리사' 2라운드에서 등장한 멘트입니다. 백 대표가 눈을 가리고 커다란 빠쓰를 아기새처럼 받아먹는 모습과, 한 입 먹자마자 바로 낯선 음식인 빠쓰를 맞추는 장면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죠.
이후 백 대표는 안성재 셰프와 함께 결승전까지 티격태격하면서도 미쉐린 3스타 셰프 못지 않은 미각과 지식을 뽐내며 또 한 번 '국민 요리 선생님'으로서의 지위를 굳혔습니다. 지난해 11월엔 더본코리아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며 시가총액 7000억원대 기업의 오너가 되기도 했죠. 백 대표에겐 최고의 한 해였을 겁니다.

그런데 승승장구하던 백 대표에게 악재가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설을 앞두고 터진 '빽햄' 논란이 시작이었죠. 이후 더본코리아 산하 프랜차이즈 연돈볼카츠의 맥주 '감귤오름'의 감귤 함량이 너무 적다는 비판이 나왔고요. 국산인 것처럼 홍보했던 밀키트와 된장 등에 수입산 원재료를 사용했다는 논란도 터져나왔습니다.
특히 된장과 낙지볶음에 중국산 원재료를 사용한 건은 농지법과 원산지표기법을 어긴 행위였습니다. 이전의 비판들이 도의적 논란이었다면 이번엔 불법·위법 논란까지 확산된 겁니다. 결국 경찰은 백 대표를 원산지표기법 위반 혐의로 형사 입건했습니다.
백 대표도 지난 13일 더본몰 홈페이지를 통해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발생한 용납할 수 없는 잘못들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저에게 주신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법적 사항을 포함한 모든 내용에 대해 신속히 개선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백 대표에겐 최악의 두 달이었을 겁니다.
연예인이냐 사업가냐
이전까지 백종원 대표는 '백주부'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을 만큼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방송인이었습니다. 단순한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고, 요리가 꼭 어려운 것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가르쳐 준 선생님이었죠. 그런 그가 지금은 왜 이렇게 논란의 중심이 된 걸까요.
업계에서는 백 대표가 더본코리아를 상장시키면서 본인의 정체성을 잘못 잡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백 대표의 정체성은 '외식사업을 하는 방송인'에 가까웠습니다. 본인이 빽다방과 홍콩반점, 새마을식당 등 다양한 외식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방송에서는 이를 직접 다루기보다는 그의 요리 실력과 지식을 중심으로 다른 외식업 종사자들을 돕는 모습이 중심이었죠.

하지만 더본코리아의 상장을 준비하면서부터 백 대표가 노출되는 방식이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연돈 볼카츠 논란이 그렇고요.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홍콩반점 부활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홍콩반점 같은 경우는 겉으로 보기엔 백 대표가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해 왔던 '망한 가게 살리기'와 포맷은 비슷하지만 그 속은 전혀 다릅니다. 백 대표는 외부인이 아닌, 홍콩반점의 퀄리티를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는 오너이자 CEO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과자에서 이물질이 나왔는데, 대표이사가 방송을 통해 "왜 이런 식으로 과자를 만들었냐, 똑바로 만들어라"는 식으로 공장 직원들을 혼낸다면 대중의 반응은 어떨까요.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백 대표의 방식이 이랬습니다. 본인이 홍콩반점의 오너로서 맛없는 짬뽕을 먹은 손님들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백 대표는 점주의 부실만 지적했죠.

빽햄 사태 때의 대응도 비슷했습니다. 사실 정상가를 높게 매긴 후 할인폭을 키워 파는 건 어느 유통업계에서나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이런 마케팅이 옳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원재료의 함량과 가격이 꼭 일치하는 것도 아닙니다. 가격에는 마케팅비, 마진 책정 등 다양한 요소가 있죠. 가격 책정이나 할인 마케팅이 근본적인 비판 요소는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때도 문제가 커진 건 이슈가 터진 후 백 대표의 해명 방식 때문이었습니다. 유통 마진, 외주 생산 등 다양한 외부 요인을 이야기하며 빽햄을 비싸게 파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만 되풀이했죠. 상장사의 대표로서는 적절치 못한 대응이었습니다. 백 대표가 골목식당에서 자주 했던 말마따나 "소비자는 사장의 사정 같은 건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냐 난
일각에서는 백종원 대표의 지나치게 잦은 언론·방송 노출이 오히려 독이 됐다는 평가를 내놓습니다. 백 대표는 상장 당시 여러 차례 사내에 홍보 조직을 두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백 대표 자신이 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CEO나 오너의 정제되지 않은 말 한 마디에 기업이 휘청이는 일은 의외로 많습니다. SNS로 회사에 대한 소식을 전하며 홍보 창구 역할을 톡톡히 했던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도 수차례 논란 끝에 결국 SNS를 끊었습니다.
백 대표가 유튜브나 방송 출연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백 대표의 유튜브는 자취생·집밥러의 바이블로 불릴 정도로 사랑받는 채널입니다. '흑백요리사 시즌2'에서 보여 줄 날카로운 미각 역시 기대됩니다.

다만 그 채널들이 더본코리아나 더본코리아의 브랜드들을 홍보하는 자리가 되면 논란은 또다시 불거질 겁니다. 실제로 더본코리아 상장 이후 백 대표의 유튜브에는 '내꺼내먹', '내팔렘', '더본뉴스' 등 자사 홍보 콘텐츠가 부쩍 늘었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백 대표에게는 방송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기업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혼재돼 있습니다. 그는 훌륭한 방송인인 동시에 성공한 기업인입니다. 둘 중 하나를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 둘을 분리할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방송에서 기업인으로서의 자아가 나타나면 시청자들은 냉정해집니다. 기업인에게서 방송인의 자아가 등장하면 주주들과 소비자들이 분노합니다.
집에서 요리를 하다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저는 언제나 유튜브를 켜고 '백종원'을 검색합니다. 제가 할 만한 요리는 모두 '백종원 유튜브'에 있습니다. 흑백요리사 시즌 2는 제가 가장 기대하는 예능입니다. 시즌 1에 나온 셰프들의 식당도 몇 군데 방문했었습니다. 이제 막 촬영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공개일만 손꼽아 기다립니다. 백 대표가 이 위기를 벗고 다시 '국민 주부'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누구보다도 제가 가장 바라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