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그룹은 은행권 재무구조 평가에서 정상 판정을 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B그룹은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체결한 후 자구계획을 충실히 이행했는데도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부실기업으로 전락했다.
대기업에 대한 은행들의 감시가 강화된다. 주채무계열 대기업이 15개 정도 더 늘어나고, 부실 징후만 있어도 관리대상에 들어간다.
금융위원회는 5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주채무계열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제도 정비 방안을 내놨다. 부실 징후가 있는 대기업을 사전에 선별해 효과적으로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 주채무계열 대기업 30개서 45개로 확대
우선 주채무계열 편입 대상을 확대한다. 주채권계열로 선정되면 여신이 많은 주채권은행이 여신상황을 포함한 기업정보를 종합적으로 관리하게 된다. 또 재무구조를 평가해 문제가 있으면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고 구조조정을 추진하게 된다.
현재는 전체 은행권의 대출과 보증 등을 합친 금액의 0.1% 이상 차지하는 대기업 그룹이 주채무계열 대상이다. 앞으론 이 기준이 0.075%로 낮아진다. 그러면 주채무계열 대기업이 기존 30개에서 현대그룹을 포함해 45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동양그룹처럼 은행 대출보다는 시장성 차입금이 많으면 주채무계열에서 빠질 수 있다. 이런 대기업 집단은 총차입금과 함께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등 시장성 차입금 규모를 공시해야 할 전망이다.
실제론 재무구조가 취약한데도 약정 대상에서 빠지는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재무구조 평가 방식도 바뀐다. 우선 부채비율별 평가구간을 세밀하게 구분한다. 부채비율 200~300% 구간은 현행 2개에서 4개 구간으로, 300~400% 구간은 1개에서 2개 구간으로 늘어난다. 매출액영업이익률과 이자보상배율 등의 항목도 최근 실적에 가중치를 주기로 했다.
주채무계열 중 약정을 맺어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 징후가 있는 대기업은 관리대상 계열로 따로 선정한다. 부채 구간별로 기준점수의 10% 내에 있는 대기업이 그 대상인데, 두산과 한진, 효성, 동국제강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관리채무 계열이 되면 주채권은행과 정보제공 약정을 맺는 등 은행들의 관리가 강화된다. 신규사업 진출 등 중요한 사항을 결정할 때도 은행과 협의해야 한다. 3년 연속 관리대상 계열이 되면 자동으로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어야 한다.
◇ 부실 징후 있는 주채무계열 관리대상 지정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거부하거나 약정을 이행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제재도 세진다. 약정 체결을 거부하면 이 사실을 수시로 공시해야 한다. 계열 기업의 회사채를 발행할 때 이 때문에 은행권 차입이 어렵다는 내용도 투자위험으로 설명해야 한다.
약정을 이행하지 않으면 만기도래 여신 회수, 신규여신 중지와 함께 경영진 교체를 권고하거나 대출금리를 올리는 등의 제재 수단도 추가된다.
일단 약정을 맺으면 졸업도 어려워진다. 약정을 졸업한 대기업이 다시 재무구조가 악화하는 경우가 많아 약정 체결을 끝낼 땐 평가 점수가 기준점수를 크게 웃돌아야 한다.
금융위가 주채무계열과 약정제도 정비에 나선 이유는 웅진과 STX, 동양 등 대기업들이 잇달아 무너지는 과정에서 이곳저곳에서 헛점이 발견되고 있어서다. 반면 일부에선 정부가 은행을 통해 대기업의 경영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김용범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경기회복이 늦어지면서 취약업종을 중심으로 대기업의 수익성과 재무 건전성이 계속 나빠지고 있는 만큼 미리 부실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면서 “내년 2월까지 관련 규정을 정비해 4월부터는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