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개인형퇴직연금(IRP)고객들 모시기에 전념하는 모습이다. 최근 퇴직연금 고객들이 증권사로 연이어 이동하는 등 하락하는 퇴직연금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나아가서는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규제 기조에 따라 비이자 수익원 확대 차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5일 은행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지난 1일부터 인터넷뱅킹과 우리WON뱅킹을 통해 IRP에 가입한 고객을 대상으로 운용수수료와 자산수수료를 전액 면제해주기로 했다.
DGB대구은행 역시 비대면으로 IRP에 가입할 경우 수수료 면제 정책을 펼치기로 했다. 이에 앞서 BNK금융지주 계열 부산은행과 경남은행도 IRP 수수료 면제에 나섰다.
수수료 면제까지는 아니지만 신한은행, 하나은행, 광주은행 등은 IRP 가입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이벤트를 시행하는 등 은행권의 'IRP고객 모시기'가 연이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최근 은행들이 IRP고객 모시기에 전념하는 이유는 최근 퇴직연금 가입 고객이 빠르게 증권업계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최근 퇴직연금 가입고객은 은행업계에서 증권업계로 옮겨가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증권가 퇴직연금 적립액은 56조원 수준으로 지난해 대비 7%가량 늘었다. 은행의 경우 135조원을 유치하며 규모면에서는 증권업계에 비해 규모는 많지만 성장률은 증권업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퇴직연금 고객들이 증권업계로 흡수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흐름이 나타나는 이유는 증권업계의 퇴직연금 수익률이 은행권에 비해 월등히 높으면서 금융소비자들에게 매력을 어필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주요 증권사들의 퇴직연금 운용 수익률은 두자릿 수 까지 확대되는 모습이지만 은행권은 3%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은행 퇴직연금 가입자 고객의 경우 안정성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상품 포트폴리오가 예적금 등 안정적인 곳에 쏠려있는 경향이 높다"며 "이에 은행권의 퇴직연금 수수료가 낮은 부분이 있어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한 작업도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업계가 경우 빠르게 수수료 면제책을 펼치면서 적극적으로 퇴직연금 고객들을 끌어들였다는 점 역시 한몫 했다. 업계에 따르면 KB증권, 신한금융투자, 삼성증권, 미래에셋증권 등이 IRP고객들을 대상으로 수수료 면제에 나선 바 있다.
은행권의 핵심 이익 부문인 이자이익 증가세가 감소할 가능성이 커진 것도 퇴직연금 시장에 집중하는 이유로 꼽힌다. 은행들은 그간 순익의 60~70%가량을 이자이익에서 내왔는데 이에 '이자장사'를 한다는 비판여론이 제기된지 오래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증가세를 잡기 위해 은행을 중심으로 하는 대출 규제를 예고하면서 대출자산 증대를 통한 이자이익 증가를 기대하기도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비이자 부문 이익을 높여야 하는데 이 중 핵심이 퇴직연금 시장으로 꼽힌다. 퇴직연금은 가입기간이 상대적으로 길어 장기간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퇴직연금 고객 확보를 통한 순익은 비이자 부문으로 산입된다. 은행 입장에서는 장기적으로 점유율을 확대해야 하는 필수 시장인 셈이다.
은행 관계자는 "대출규제가 장기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대출자산 증대를 통한 이자이익 증가는 기대하기 어렵게 된 것이 사실"이라며 "이에 따라 비이자 이익을 늘려야 하는데 이 중에서는 장기간 꾸준한 비이자 이익을 낼 수 있는 퇴직연금 고객 확보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