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매각을 위한 예비입찰이 마무리됐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냉담하다. 대기업들은 참여하지 않았고 인수를 희망하는 곳들은 국내 중견기업 뿐인 까닭이다.
특히 HMM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선 5조~7조원 수준의 자금이 필요한 만큼 예비입찰자 가운데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돼도 실제 매각이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
이로 인해 연내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을 목표로 하는 KDB산업은행이지만 매각 계획을 중단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자본과 경영 능력을 갖춘 업체가 인수 기업이 되길 원한다"고 밝혔던 만큼 HMM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넘길 수 있는 인수 기업을 산업은행이 직접 찾는 방안도 거론된다.
HMM 매각, 그들만의 리그?
HMM은 자산 25조8000억원,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한 몸값만 5조원에서 많게는 7조원에 달할 것으로 평가받는 대어다. 해운업이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점에서도 인수 후 HMM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지가 인수자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인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예비입찰 참여 기업을 두고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동원과 하림, LX 등 국내 기업들은 HMM보다 자산 규모가 작을 뿐 아니라 인수를 위한 현금 동원 능력도 크지 않은 까닭이다. ▷관련기사: [HMM 주인찾기]①고래 삼킬 새우 나올까(8월30일)
HMM 개인주주들이 예비입찰 참여기업중 한 곳인 독일의 하파그로이드의 HMM 인수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낸 것 역시 국내 기업들에게 매각될 경우 기업가치 훼손 등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하파그로이드는 외국 기업이라는 점에서 국가 기간산업을 영위하는 HMM의 경영권을 넘기는 것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크다. 이로 인해 산업은행은 투자적격후보에서 하파그로이드를 제외했다.
산업은행 입장에선 HMM을 인수할 자금 능력을 갖추고, 인수 후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등을 기대할 수 있는 대기업이 예비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당초 대기업 중에선 포스코와 현대차 등이 참여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었지만 이들은 예비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현대차의 경우 그룹내 물류업을 영위하는 현대글로비스와의 시너지, 포스코도 포스코인터내셔널 등 상사와 물류의 시너지 등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해운업황 변동성이 크고, 당장 업황 개선 가능성도 크지 않다는 점에서 입찰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투자은행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예비입찰에 참여한 국내 중견기업들은 물류업을 경험해 해운업황의 변동성을 감내할 수 있고, 인수를 통해 몸집을 불릴 수 있는 기회로 여길 수 있다"며 "반면 대기업들은 해운업황에 대한 불확실성과 그룹내 계열사 간 시너지도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은 영구채도 부담
높은 몸값뿐 아니라 이번 매각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영구채의 주식 전환도 매각 걸림돌로 꼽힌다.
산업은행과 해진공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HMM 주식 약 1억9879만주에 영구채(전환사채·신주인수권부사채) 1조원어치를 주식으로 전환(2억주), 총 3억9900만주를 매각한다는 계획이다.
남아있는 영구채를 모두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HMM 발행주식 수는 10억2500만주다. 매각대상 주식을 모두 매입하고 경영권을 확보한다 해도 지분율은 38.9%(희석지분율) 수준이다.
내년부터 금리 스텝업 시점이 도래해 주식으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되는 영구채는 1조6800억원 규모다.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3억3600만주에 달한다. 지분율로는 32.8%다.
산업은행과 해진공이 이를 매각하지 않고 보유할 경우 지분율은 인수자와 차이가 크지 않다. 인수 기업 입장에선 대규모 자금을 동원해 경영권을 확보한 후에도 산업은행 등 정부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미다.
현재 매각 관련해선 HMM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약 12조원)을 배당 등에 활용하지 못하는 방안을 포함해야 한다는 내용이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남아있는 영구채 주식 전환과 매각 등도 향후 협상 과정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취소'에 눈길 가는 이유
상황이 이렇자 HMM 매각이 중단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주식매각공고에 "매도인의 사정에 따라 취소 또는 변경될 수 있다"는 문구가 포함된 까닭이다. 현재 입찰에 참여한 기업들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것이 마땅치 않을 경우를 대비한 것이란 해석이다.
일각에선 산업은행이 현금 동원력이 있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원매자를 찾아 경영권을 매각하는 '스토킹호스' 방식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스토킹호스는 매물 인수 의사를 보인 수의계약자(임의계약자)와 사전 계약을 체결한 후 공개경쟁입찰을 시작하는 방식이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을 한화그룹에 매각할 때 스토킹호스 방식을 활용했다. ▷관련기사: [한화 대우조선 빅딜]산은 "빠른 민영화로 손실 최소화"(22년9월20일)
한 투자은행 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대기업을 대상으로 원매자를 찾아나설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최근 기업들이 무리한 사업확장보다 연구·개발 등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 쉽지는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산업은행의 기업 구조조정은 경제적 논리 뿐 아니라 정치적 상황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에서 HMM 매각이 성사될지 확신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산업은행은 매각 관련해선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