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한국금융연수원에서 열린 '사외이사 양성 및 역량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식'에서 나란히 앉았습니다. 둘은 밝은 표정으로 악수를 하며 다정한 모습을 연출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이 알려진 지난해 8월부터 이 원장이 임 회장을 내내 질타한 데다, 이른바 '매운맛' 우리금융·은행 정기검사가 발표된지 불과 열흘만이어서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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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정기검사를 통해 금감원은 우리은행에서 총 101건, 2334억원의 부당대출을 적발했습니다. 이 중 손 전 회장 관련 부당대출이 730억원으로, 절반 이상인 451억원이 현 경영진 취임(2023년 3월) 이후 집행됐습니다. 이 원장은 내부통제 부실 및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현 경영진 책임론을 거듭 강조했고요. ▷관련기사 : 부당대출 60% 현 경영진 체제서 취급…이복현 "경영진 모두 책임"
화해모드? 립서비스?
그랬던 이 원장이 임 회장을 바로 옆에 앉히도록 직접 지시했다고 합니다. 통상 공식 석상에서는 회사 규모에 따라 자리가 배치되는데, 4위권에 해당하는 우리금융이 금감원장 옆자리를 차지한 건 그만큼 이례적이죠. 이 원장은 지난 19일엔 은행장 간담회 직후 "임 회장이 임기를 채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기회 될 때마다 사석에서 많이 밝혀왔다"고 했고요.▷관련기사 : 이복현 "임종룡 임기 채워야…우리금융 거버너스 흔들리면 안돼"
이 원장은 취임 후 다양한 금융현안을 두고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지만 이번 태세전환에 특히 관심이 쏠렸습니다. 그동안 금융권에선 이 원장이 임 회장 사퇴를 압박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많았는데 직접 나서 선을 그은 셈이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금융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금감원 경영실태평가 등급에 따라 우리금융의 동양생명·ABL생명 등 보험사 인수가 좌지우지 될 수 있어서죠. 이 원장은 임 회장 임기보장 발언과 동시에 "우리금융에 대한 경영실태평가 결과 도출과 자회사 편입 문제 등은 원칙대로 엄정하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복현 원장의 속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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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장의 속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옵니다. 그동안 이 원장의 발언을 종합하면 경영실태평가는 자회사 인수합병(M&A)이 어려운 3등급(보통)이 나올 가능성이 높죠. 지난해 비은행 계열사 순이익 기여도가 8.4%에 그친 우리금융은 생보사 인수가 최대 숙원으로 떠오른 상태이고요. 더불어 올해 8월 말까지 모든 절차를 완료하지 못하면 인수가의 10%인 약 1500억원을 두 생보사 대주주인 중국 다자보험에 물어줘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금융당국 수장인 금융위원장을 지낸 임 회장이라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1000억여원을 허공에 날린 최고경영자(CEO)를 향한 안팎의 비판을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물음표가 뜨죠. 비은행 인수를 통한 종합금융그룹으로서의 청사진 구축에도 차질이 빚어지고요. 결국 경영실태평가 3등급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임 회장의 실각을 재촉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 원장으로서는 굳이 나서서 임 회장과 대립각을 세울 이유가 없는 것이죠.
이 원장 임기도 몇 달 안 남아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 원장 재임기간 내내 강한 압박에 지친 금융사들의 반발 심리가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임기 말까지 금융권과 극도의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건 이 원장도 부담이라는 게 금융권 관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