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하순. 상반기 판매실적을 집계하던 기아차 영업본부 관계자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비록 가집계이기는 하지만 기아차 모닝의 상반기 판매실적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국내 완성차 5개 업체는 매월 말 가집계 형태로 각사별 판매실적을 공유한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보안을 유지한다. 내부 보고용이다. 하지만 가집계 결과는 대체로 들어 맞는다. 정확한 숫자는 아니더라도 추세를 가늠해볼 수는 있다.
기아차 영업본부 관계자는 "가집계 결과, 모닝의 판매실적이 예상보다 많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며 "비록 가집계이긴 하지만 이런 추세라면 대형 사고를 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기아차 모닝, 쏘나타·아반떼 제쳤다
그의 이런 생각은 꼭 들어 맞았다. 지난 1일 발표된 국내 완성차 5개사의 상반기 판매실적에서 기아차의 모닝은 전통의 베스트셀링카인 현대차의 쏘나타와 아반떼 등을 제치고 상반기 베스트셀링카 1위에 올랐다.
기아차의 모닝은 올해 상반기에 총 4만6809대가 팔렸다. 기아차의 주력차종인 K5의 상반기 판매량이 2만8094대인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경쟁차종인 한국GM의 쉐보레 스파크는 같은 기간 2만7576대 판매에 그쳤다.
[기아차의 모닝은 올해 상반기 가장 많이 판매됐다.]
기아차 모닝의 질주가 더욱 놀라운 것은 대표적인 베스트셀링카인 현대차의 쏘나타와 아반떼마저 제쳤다는 점이다.
현대차 쏘나타의 상반기 판매량은 4만6380대, 아반떼는 4만4550대를 기록했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세그먼트(차종별 분류)인 C세그먼트(준중형)나 D세그먼트(중형)이 아닌 A세그먼트(경차)가 베스트셀링카 1위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 '경기침체+세컨드카 수요'덕에 판매 '쑥쑥'
모닝이 이처럼 각광 받은 이유에 대해 기아차는 '경기침체'를 이유로 꼽는다. 경기침체로 소비자들이 구매하려던 차급을 낮추면서 모닝의 인기가 올라갔다는 분석이다.
쏘나타나 K5, 아반떼 등을 구입하려던 고객들이 경제적 부담도 덜고 각종 세제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경차에 눈길을 주면서 모닝이 부각됐다는 설명이다. 또 최근 1가구 2차량 트렌드에 힘입어 모닝이 세컨드카로 많이 애용된다는 점도 모닝 질주의 이유로 꼽힌다.
이어 "주부들이 아이들의 학교·학원 통학용이나 장보기 등으로 모닝을 많이 찾으면서 세컨드카로서 자리를 잡았다"고 덧붙였다.
◇ 올해 '연간 판매 1위' 등극 가능할까
모닝은 지난 2004년 처음 출시된 이후 조금씩 성장하다가 지난 2008년 경차 범위 확대조치 이후 판매가 급증했다. 지난 2011년에는 11만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업계의 관심은 모닝이 과연 이런 여세를 몰아 올해 연간 베스트셀링카 1위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에 쏠려있다.
경차가 다른 세그먼트의 차종을 제치고 베스트셀링카 1위에 오른 것은 딱 한 번 있었다. 지난 98년 대우자동차(현 한국GM)의 마티즈가 8만8951대를 판매하며 1위에 올랐었다. 만일 모닝이 연말까지 이런 추세를 유지한다면 15년만에 경차가 연간으로 베스트셀링카 1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그동안 베스트셀링카 1위 차종을 살펴보면 녹록지 않다. 지난 99년~2003년까지는 EF쏘나타, 2004년 싼타페, 2005년~ 2008년 NF쏘나타, 2009년 아반떼, 2010년 YF쏘나타, 2011년~2012년 아반떼 등 A세그먼트 차종은 없었다.
업계에서 모닝의 연간 판매 1위 등극에 대해 쉽지 않다고 보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경차가 연간 판매 1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맞아줘야 하는 등 한계가 분명히 있다"면서 "소비자들의 구매 트렌드는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것이 아닌만큼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여전히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있고 경제적이고 편의성이 확보된 차량에 대한 수요가 꾸준해 모닝이 1위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모닝은 지난 2009년부터 작년까지 연간 베스트셀링카 2~3위에 랭크됐던 저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