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엘리베이터를 둘러싼 현대그룹과 쉰들러 간의 다툼이 점점 더 격화되고 있다. 왕(王) 회장이 구축한 현대호(號)에서 분리된 이후 범(凡)현대가를 상대로 경영권을 지켜냈던 현대그룹이 지금은 쉰들러와 공방을 펼치고 있다. 현대그룹에게 현대엘리베이터는 바퀴의 축과도 같다. 지배구조상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을 빼앗기면 그룹 전체가 흔들린다. 현대그룹이 사활을 걸고 경영권 방어에 나서는 이유다.
반면,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를 통해 아시아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국내 1위 업체다. 그만큼 매력적이다. 지난 99년부터 시작된 현대엘리베이터와 쉰들러 간의 인연은 양측의 다툼으로 인해 악연으로 변해가는 양상이다. 비즈니스워치는 단독 입수한 쉰들러 측의 법원 진술서와 LOI 문서를 통해 지난 14년간 진행돼온 현대엘리베이터와 쉰들러간 애증의 관계를 들여다봤다. [편집자]
글 싣는 순서
①현대그룹-쉰들러, '난타전' 까닭은?
②현대엘리, 쉰들러에 2차례 넘기려했다
③현대엘리·쉰들러, '숨겨진' 이야기-1
④현대엘리·쉰들러, '숨겨진' 이야기-2
[그래픽]한눈에 보는 쉰들러-현대엘리 분쟁
현대엘리베이터와 쉰들러 간의 분쟁이 치열하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쉰들러가 적대적 M&A(인수·합병)에 나섰다고 보고 있다. 반면, 쉰들러는 '적법한 투자'라는 입장이다.
현대그룹은 '현대글로벌→현대로지스틱스→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글로벌'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이 쉰들러에게 넘어갈 경우 현대그룹은 지배구조에 큰 균열이 생긴다. 현대그룹이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다.
현대엘리베이터와 쉰들러의 사이가 애초부터 나빴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우호 세력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견원지간으로 바뀌고 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으로 돌아서게 된 원인이 뭘까.
◇ 현 회장, 쉰들러 지분 인수 알고 있었다
비즈니스워치가 단독 입수한 문서에 따르면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 2006년 쉰들러의 KCC 보유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인수에 대해 쉰들러 측으로부터 사전 통보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현대그룹 회장은 쉰들러의 지분 인수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지금껏 현대엘리베이터가 주장했던 것과는 상반되는 내용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쉰들러가 2006년 지분 인수 당시 사전 협의나 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또 "경쟁 사업자의 의사에 '반(反)'해 대량으로 취득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라고도 했다.
▲ 지난 2007년 쉰들러 회장은 현대그룹 회장의 초청으로 금강산을 방문한다. 이 자리에서 쉰들러와 현대그룹 측은 상호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키로 했다. 이 시기는 쉰들러가 KCC보유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인수한 이후다. 이는 현대엘리베이터 측이 "쉰들러가 KCC 보유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인수하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한 내용과는 배치된다. 쉰들러측에 따르면 현대그룹은 이미 쉰들러가 지분을 인수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런 사실을 사전에 현대그룹쪽에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
하지만 이 문서에 따르면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의사에 '반'한 일이 없다. 오히려 현대그룹과 현대엘리베이터는 쉰들러의 지분 인수를 반겼다. 심지어 지분 인수 이후인 지난 2007년에는 현대그룹 회장과 쉰들러 회장이 각각 스위스와 금강산을 상호 방문해 우의를 다지기도 했다. 이런 관계는 2010년까지 이어진다.
◇ 현대엘리베이터, 쉰들러에 인수 타진
글로벌 승강기 업체인 쉰들러가 한국 시장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외환위기를 겪고있던 한국 정부는 쉰들러에게 한국 엘리베이터 산업에 대한 투자 의향을 물었다.
진술서에 따르면 지난 98년 한국의 재정경제부와 쉰들러 최고 경영진이 만났다. 재경부의 고위 관계자는 쉰들러가 한국 엘리베이터 산업에 수억달러를 투자해주기를 원했다.
쉰들러는 내부적으로 이 건을 검토했다. 결론은 투자처를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한국 엘리베이터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당시 국내에서 엘리베이터 사업을 하고 있던 LG, 동양, 현대엘리베이터를 두고 투자를 고민했다.
글로벌 승강기 업체인 쉰들러가 한국 시장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외환위기를 겪고있던 한국 정부는 쉰들러에게 한국 엘리베이터 산업에 대한 투자 의향을 물었다.
진술서에 따르면 지난 98년 한국의 재정경제부와 쉰들러 최고 경영진이 만났다. 재경부의 고위 관계자는 쉰들러가 한국 엘리베이터 산업에 수억달러를 투자해주기를 원했다.
쉰들러는 내부적으로 이 건을 검토했다. 결론은 투자처를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한국 엘리베이터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당시 국내에서 엘리베이터 사업을 하고 있던 LG, 동양, 현대엘리베이터를 두고 투자를 고민했다.
▲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 99년 쉰들러에 인수의사를 타진한다. 양측이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형식이었지만 실상은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를 인수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논의는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반대로 없던 일이 됐다. |
처음 투자를 논의했던 곳은 LG엘리베이터(현 오티스엘리베이터)였다. 하지만 같은 시기 남미의 아틀라스와도 협상 중이었던 쉰들러는 두 곳 모두에 투자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을 내린다. 결국 LG건은 무산됐다. 동양도 검토했지만 결국 투자하지 않기로 했다.
쉰들러와 현대엘리베이터가 처음 만난 것은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1999년 말이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쉰들러 측에게 먼저 만남을 요청했다. 이때 논의된 것이 쉰들러와 현대엘리베이터가 함께 합작사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이 합작사의 지분 30%를 쉰들러가 먼저 취득한다는 조건이었다. 이후 지분을 늘려 쉰들러가 최대주주가 되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 건은 무산됐다. 당시 현대엘리베이터 CFO였던 최용묵 부사장의 반대가 심했다. 고 정몽헌 회장도 이를 받아들였고 결국 없던 일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