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호황기 초입에 들어선 국내 조선업계가 올해 수주 목표를 이미 채웠다. 한국 조선업계가 장악한 고부가가치선박 LNG선 덕분이다. 하지만 한국 조선업계의 표정이 마냥 밝은 것만은 아니다. 중국이 친환경 선박 시장에서 치고 나올 수 있다는 불안감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어서다.
한국, 올해 목표 이미 채웠지만
28일 해운시황 전문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10월 글로벌 신조 수주량은 약 4500만 CGT(표준화물톤수)로 집계됐다. 이 중 중국이 약 2000만 CGT(44%), 한국이 약 1500만 CGT(33%), 일본이 약 450만 CGT(10%)를 차지했다.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은 고부가가치 선박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 신조 LNG선 수주량(올 상반기 기준) 140척 중 한국이 100척(71%)를 수주했다. HD한국조선해, 한화오션, 삼성중공업의 고부가가치 선별 수주 전략이 통한 것이다.
친환경 선박 수요가 늘어난 이유는 국제해사기구(IMO)의 규제에 있다. IMO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노후 선박 교체를 해운사에 압박하고 있다. IMO는 선박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에 따라 A부터 E까지 등급을 나눈다. E 등급을 받거나 3년 연속 D 등급을 받은 선박은 재검증을 받을 때까지 운항이 제한된다.
친환경 선박은 LNG선을 넘어 메탄올·암모니아 연료를 사용하는 친환경 선박으로 확대되고 있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이 올해 11월까지 총 248척, 339억 달러(약 47조3200억원) 규모의 수주를 확보했다. 연간 목표(301억 달러, 약 42조136억원)를 이미 초과 달성한 것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조기 달성했지만 중국의 수주 점유율이 급증하고 기술력이 날로 상승하고 있다"며 "국내 조선사들은 초격차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갈등이 아닌 협력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전했다.
중국 저가 공세와 일본 틈새 공략
중국 조선사(중국선박공업집단, 중국선박중공업집단, 양쯔강조선 등)의 저가 공세는 한국 조선사에게 가장 큰 과제다. 중국 교통운수부 발표에 따르면, 중국은 정부의 전폭적인 금융 지원을 바탕으로 2024년 상반기 벌크선 수주 가격을 평균 20% 낮게 제시하며 점유율을 확대했다.
중국의 내수 시장 발주는 2023년 대비 15% 늘었다. 자국 선사 중심의 안정적인 수요를 기반으로 해외 수주에서도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LNG선박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LNG 화물창 기술의 원천특허를 보유한 프랑스 기업 GTT로부터 관련 기술을 확보하고, 수주 물량을 조금씩 늘리고 있다.
일본은 전 세계 조선 시장 점유율은 낮지만, 소형 LNG선·특수 선박 분야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일본조선협회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미쓰비시중공업, 이마바리조선, 재팬마린유나이티드 등은 소형 LNG선 12척을 수주하며 전년동기대비 25% 증가한 성과를 냈다.
최근에는 호주 해군의 10조원 규모 호위함 수주전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의 '모가미 30 FFM'가 한국 조선을 밀어내고 최종 후보로 올랐다. 상선뿐 아니라 특수선 분야도 살아나는 모습이다.
"선박 기술 세계 기준 만들어야"
조선업 수주 경쟁은 단순히 물량 싸움이 아니라, 고부가가치 기술력과 ESG 대응 능력을 갖춘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 전쟁'으로 변모하고 있다.
변화의 두 축은 자율운항 기술과 전기 추진 선박이다. 전기 추진 선박은 전기를 사용해 선박을 추진해 기존 화석 연료를 대체할 수 있다. 자율운항 시스템은 최적의 항로를 설계해 연료 소비와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조선 3사에 각자 강점인 분야를 공략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 10월 기준 1억 5000만 달러(2090억원)를 자율운항 기술 개발에 투자했다. 한화오션은 암모니아·메탄올 추진 선박 기술 개발에 약 1200억원을 투입했다. 최근 삼성중공업은 스스로 운행하고 정박하는 완전 자율운항 기술을 실증하기 위해 '시프트 오토(SHIFT-Auto)'라는 연구 선박을 제작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불·호황기를 떠나 꾸준히 기술 발전에 투자한 게 지금의 K-조선을 만들었다"며 "이제는 IMO 등의 친환경 정책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친환경 선박 기술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