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가 저탄소차협력금 제도 도입 철회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 제도가 시행될 경우 국내 자동차산업의 제조기반이 약화되는 등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산업계는 특히 정부가 설정한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량을 전면 재검토해달라고 건의했다. 현재 경제·산업 현실을 반영하고 산업계도 참여하는 방식을 통해 목표량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제도는 쉽게 말해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자동차를 구입할 때 추가로 부담금을 내고, 적게 배출하는 자동차를 구입할 때는 보조금을 받는 제도다. 환경에 상대적으로 유해한 자동차로부터 부담금을 걷어 유해물질 배출이 적은 자동차 구입자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구조다.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전망치의 30%를 줄이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한 상태다. 이 제도 역시 국가적인 온실가스 감축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 내부에서도 시각차가 존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반대입장인 반면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업계도 이 제도가 무리하다는 반응이다. 국회에서 통과되고,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법안에 대해 경제단체 공동으로 규제 철회를 건의할 만큼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주장이다.
규제 철폐 건의 과정에서 제시된 산업계의 입장은 다음 9가지로 요약된다.
① 3중 규제
산업계는 기존의 제작단계와 소유·운행 단계에 이어 판매(구매)단계에 새로운 행태로 진입하는 3중 규제라는 입장이다.
제작단계에서 자동차제작사는 연간 판매된 자동차의 평균 연비·온실가스가 정부에서 정한 기준치를 달성해야 하고, 소유·운행 단계에서 자동차세와 유류세 등 부담이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저탄소차협력금 규제는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해 개별차량별로 부담금을 정해 구매자에게 부과하는 새로운 형태의 규제인 만큼 자동차산업에 비정상적인 영향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② 온실가스 저감효과 미미
산업계는 이 규제를 시행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도 온실가스 감축효과가 명확히 검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평균 온실가스 규제를 시행하고 있는 유럽연합(EU)국가 전체의 온실가스 저감률이 프랑스의 온실가스 저감률보다 오히려 높다는 설명이다. 유사제도인 'ecoAUTO'제도를 시행했던 캐나다도 2년만에 이를 폐지했다는 설명이다.
또 저탄소차협력금 규제가 도입될 경우 경유차 쏠림현상이 심화돼 미세먼지 등 대기질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유차가 휘발유차보다 이산화탄소가 덜 나온다)
③ 상업성·시장성 외면
산업계는 이 제도가 친환경이라는 공공성을 고려한 나머지 상업성과 시장성을 도외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동차산업 발전을 위한 산업정책과 배치된다는 설명이다.
자동차제조사 입장에서는 아직 친환경차량으로 영업이익을 실현할 수 없는 단계고, 특히 대형 고부가가치 차량의 시장 진입과 투자 자체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소형차 위주의 정책은 전체적인 산업 경쟁력 저하를 가져올 것이라고 입장이다. 제도를 시행한 프랑스도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자동차생산 순위는 2007년 세계 6위에서 지난해 13위까지 하락했다.
④ 국산 자동차 역차별
산업계는 이 제도가 유럽과 일본 등 수입차에 비해 국산차를 불리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국산 대형차의 경쟁모델이 수입 중소형차인 상황에서 대형차가 중소형차보다 뛰어난 연비를 낼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이 제도가 시행될 경우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 쌍용자동차 등이 생산하고 있는 국산 가솔린 대형차 수요가 유럽의 중형디젤 승용차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는 입장이다. 최근 수입차 판매 확대로 국산차량의 내수판매가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제도 시행으로 가격 경쟁력이 더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⑤ 시장질서 훼손
산업계는 정부가 인위적인 보조금이나 부담금으로 구매가격에 개입할 경우 기업의 마케팅 과정에서 왜곡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우선 보조금을 받는 경우 판매가격을 올려 소비자보조금을 판매자가 흡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부담금을 내는 경우는 판매자가 이를 감당하거나 부담금만큼 깎아줄 것을 염두에 두고 그만큼 판매가격을 높게 책정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매년 부담금 금액과 구간이 재설계될 경우 대기 수요 및 선 수요 발생으로 자동차 판매시장의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상적인 마케팅이 불가능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신차생산 계획 수립 자체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⑥ 소비자 선택권 제한
산업계는 이 제도로 인해 불가피하게 차량을 구매해야 하는 소비자에게 부담을 늘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장애인 차량이나 대가족 등 필요에 따라 차량을 구매해야 하는 경우나 운행거리가 짧은 소비자들도 원천적으로 부담금을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자영업자가 사용하는 카니발로부터 부담금을 걷어 고가의 수입디젤차에게 보조금을 주는 형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산업계는 지금도 차량가격의 평균 25% 수준인 세금이 더 높아질 경우 소비자 차원의 반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⑦ 주요 자동차 생산국 도입 반대
산업계는 프랑스를 제외한 주요 자동차 생산국들은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프랑스는 소형차 위주 생산, 전기자동차 우위전략에 근거해 제도를 시행했지만 미국이나 일본 등은 규제를 도입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저탄소차협력금 제도가 오로지 이산화탄소 배출량만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차량의 크기, 중량과 같은 효율성 요소(Utility factor)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⑧ 중소 부품업계 경영위기
국산 자동차 수요가 감소할 경우 중소 부품 협력업체의 생산물량 감소, 조업단축, 매출손실, 가동율 저하 등으로 심각한 경영난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1차 협력업체 887개사중 중소기업 비중이 절대다수(76.9%, 682개사)임을 감안할 경우 대기업보다는 중소 협력업체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설명이다.
국내 부품산업은 가솔린차 중심의 부품산업구조로 디젤차가 증가할 경우 핵심부품은 수입에 의존하고 가솔린 부품 수요는 감소해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다.
⑨ 정부의 일방적 규제
산업계는 이 제도가 정부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량을 근거로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일방적으로 설정된 목표량에 따라 가정과 시나리오를 동원해 평균연비 기준이나 저탄소차협력금 규제 구간과 금액을 설정하는 것은 경제·산업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라는 주장이다.
산업계는 정부의 목표치를 재검토하고 민간과의 사회적 합의에 따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제도가 "사람에 옷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옷에 사람을 맞추는 것"이라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