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던 배출권 거래제도와 저탄소차 협력금제도(탄소세)가 엇갈린 운명을 맞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최근 기획재정부, 산업자원부, 환경부 등 유관부처들이 배출권 거래제는 예정대로 내년 1월부터 시행하되 보완대책을 마련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반면 저탄소차 협력금은 당정협의를 통해 처리방향을 최종 확정하기로 했다.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 시행 연기 가능성이 높아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 배출권 거래제, 부담줄여 시행
배출권 거래제의 경우 일단 예정대로 시행하되, 보완대책을 통해 산업계의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배출권 거래제는 각 기업이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의 양을 정부가 할당하고, 이를 기준으로 배출량이 초과할 경우 배출권을 사거나 못 살 경우 과징금을 내야 하는 제도다. 할당량보다 적게 온실가스를 배출했을 경우 이를 팔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계는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너무 적게 잡아 대부분 기업들이 배출권을 사야할 것이라며 시행을 연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경제계는 17개 업종 정부 할당량 14억9500톤과 업계 산출치 17억7000만톤 간 차이가 발생하는 만큼 과징금을 감안하면 오는 2017년까지 최대 27조5000억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배출권 거래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국가 온실가스 배출전망치를 전면 재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정부가 할당량 목표치를 수정하거나 과징금 수준을 낮출 경우 기업들의 부담은 줄어들 수 있다.
이같은 분위기는 지난달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경제5단체장이 만난 자리에서도 감지됐다. 경제계는 이 제도의 시행에 따른 악영향이 크다는 점을 강조했고, 정부는 기업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찾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 배출권 거래제의 시행시기를 연기하기 위해선 관련법 개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는 법제처의 해석이 나온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2일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배출권거래제와 관련 "소프트랜딩(연착륙) 할 수 있게 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는 2020년까지 배출전망치를 다시 한번 재검토하게 된다"며 "그 과정에서 업계가 겪고 있는 어려운 점들을 수용할 수 있는 만큼 큰 걱정을 안해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저탄소차 협력금, 연기 가능성
배출권 거래제와 달리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는 시행시기가 연기될 가능성이 커진 상태다. 다만 정부 부처간 의견이 달라 최종 결정은 국회와 정부간 협의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법제처 역시 저탄소차 협력금에 대해선 강행규정이 아닌 만큼 시행시기가 연기된다고 해도 위법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유권해석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는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은 차를 살 때는 보조금을 주고, 많은 차에는 부담금을 부과하는 내용이다. 환경에 상대적으로 유해한 자동차로부터 부담금을 걷어, 유해물질 배출이 적은 자동차 구입자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구조다.
산업계에서는 수입 디젤 차량과 국산 자동차 간 격차로 인해 상대적으로 국산차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 쌍용자동차 등이 생산하고 있는 국산 가솔린 대형차 수요가 유럽의 중형디젤 승용차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는 입장이다.
최근 수입차 판매 확대로 국산차량의 내수판매가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제도 시행으로 가격 경쟁력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자영업자가 사용하는 카니발로부터 부담금을 걷어 고가의 수입디젤차에게 보조금을 주는 형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제도는 환경부 주도로 추진돼 왔지만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재검토하자는 입장을 보여왔다. 최근 부처간 회동에서도 수년간 연기하는 방안과 예정대로 시행하는 방안, 수정방안 등이 모두 논의됐지만 결국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당정협의에서 최종안을 결정하기로 했다.
◇ 국회 변수 주목
산업계가 배출권 거래제와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에 강력하게 반발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의 분위기는 최악의 상황은 피한 것으로 보인다. 배출권 거래제의 경우 예정대로 시행되지만 부담수준이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당초 우려했던 만큼의 영향은 아닐 것이라는 평가다.
저탄소차 협력금 역시 연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고, 예정대로 시행된다고 해도 부담금 적용이 제외되는 구간을 확대할 경우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다만 당정협의에서 국회가 어떤 입장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정부 부처간 회동에 앞서 이달초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환경부간 당정협의에서는 이들 제도를 조속히 시행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후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이견을 보여 정부 부처간 합의에 실패한 만큼 결국 국회의 의중이 중요해진 상황이다. 그동안 환경노동위원회가 제도 시행 의지를 강조해온 만큼 마지막 변수가 남아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