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마진 악화와 국제유가 급락 등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국내 정유사들이 글로벌 석유화학 기업 및 국내 화학 기업들과 합작을 통해 신사업 진출에 나서고 있다.
석유화학 사업은 대규모 장치 산업이어서 공장을 짓는데 투자비용이 많이 든다. 그 만큼 실패에 대한 위험부담이 크다. 합작을 하면 이를 낮출 수 있다.
또 파트너의 기술이나 영업망 확보를 통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석유화학 제품의 경우 대부분 해외시장에 수출한다. 새로운 매출처를 뚫어야 하는데 기존 영업망이 확보돼 있다면 상업생산 시작과 함께 수익을 낼 수 있다.
◇ SK이노베이션·현대오일뱅크, 합작사업 활발
5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글로벌 파트너링’ 프로젝트를 통한 합작사업을 펼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화학사업 담당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은 지난해 10월 일본 에너지기업인 JX에너지와 합작해 울산아로마틱스 공장을 준공했다. 양사는 50%씩 총 9363억원을 투자했고, 이 공장에선 연간 파라자일렌(PX) 100만톤, 벤젠 60만톤을 생산하게 된다.
SK종합화학이 신성장동력으로 내세운 넥슬렌 역시 합작사업으로 이뤄진다. SK종합화학은 지난해 5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빅과 넥슬렌 생산 및 판매를 위한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맺었다. 내년 초까지 싱가포르에 합작법인 설립을 마무리짓고, 3~5년 내에 사우디아라비아에 제2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 울산CLX 넥슬렌 공장을 방문한 모하메드 알 하디 사빅 부회장 |
이와 함께 윤활유사업 담당 자회사인 SK루브리컨츠는 최근 스페인 렙솔(Repsol)과 손잡과 스페인 남동부 해안 카르타헤나 윤활기유 공장을 준공, 상업생산에 들어간 상태다. 여기서 만든 제품은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지역에 수출한다.
현대오일뱅크도 비정유사업 강화를 위해 합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석유화학 제품인 혼합자일렌(MX) 생산을 위해 롯데케미칼과 6대 4 비율로 합작해 현대케미칼을 설립했고, 윤활유 사업을 위해선 쉘(Shell)과 함께 현대쉘베이스오일을 만들어 지난 9월부터 상업가동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독일계 카본블랙 업체와 합작법인 설립 및 신규공장 건설을 위한 협력계약을 체결, 카본블랙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채비를 마쳤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합작을 통해 시작한 윤활유사업의 실적은 지난 3분기부터 반영되기 시작했다”며 “카본블랙 사업 역시 합작사 영업망을 통해 국내외 시장에 판매해 연간 3000억원의 매출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에쓰오일 역시 2008년 ‘토탈’과 합작해 에쓰오일토탈윤활유를 설립했다. 유럽과 인도, 미국 등에 윤활유를 수출하고 있다.
◇ GS칼텍스, 일본 쇼와웰과 PX 합작 난항
이에 반해 GS칼텍스는 정유사 가운데 유일하게 합작사업이 없다. 윤활유 사업은 직접 현지법인을 세워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향후에도 이 사업에서 합작 계획은 없는 상황이다.
또 외국인투자촉진법의 통과로 가시화됐던 여수 파라자일렌 합작 공장 설립은 답보상태다. GS칼텍스는 일본 쇼와웰 및 타이요오일과 합작을 통해 기존 여수 PX 공장에 100만톤 규모의 증설을 계획해왔고, 관련법이 통과되면서 사업 진행에 걸림돌도 없는 상태다.
하지만 공급 과잉으로 인해 PX 시황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합작사업의 진행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MOU 체결기간도 불과 3개월 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 PX 시장 전망도 어두워 합작 포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관련법이 정치권에서 논란이 됐던 만큼 GS칼텍스가 합작을 포기한다면 따가운 눈총을 받을 수 있어 결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GS칼텍스 관계자는 “관련법이 통과됐다고 해서 무조건 합작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 사업의 가능성을 보고 검토하고 있으며 이는 일본(쇼와웰)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