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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어가는 용광로]②터널 출구가 안 보인다

  • 2015.08.31(월) 09:30

원료값 하락 등 실적 하락 요인만 가득

'철(鐵)'은 산업의 쌀이다. 설비부터 제품까지 철이 사용되지 않는 곳이 드물다. 이 산업의 근간이 글로벌 경기침체로 흔들리고 있다. 수요는 줄고 공급은 많아졌다. 철강은 조선업 등과 함께 대표적인 경기 민감 업종이다. 경기가 좋을수록 용광로는 쉴새 없이 돌아간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큰 타격을 입는다. 업종 특성상 회복도 느리다. 업계와 시장에서는 유례없는 침체기로 보고 있다. 국내 철강업체들도 판매 부진과 실적 악화로 신음하고 있다. 철강업황 부진의 원인과 국내 업체의 대응, 업황 전망 등에 대해 짚어본다.[편집자]

 

 

중국발 공급과잉의 여파는 국내 주요 철강사들에게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공급과잉과 전방산업 부진으로 제품 판매 가격 인상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처지다. 그러다보니 실적은 매분기 추락하고 있다. 곳간은 빠르게 비어가고 있는데 채울 게 없는 상태다.

문제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철강업은 대표적인 경기 민감 업종이다. 글로벌 경기가 나아지기 전까지는 철강 업황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철강업체들로서는 경기 회복을 기다리는 것 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 철강업체들이 잇따라 구조조정에 나서며 버티기 들어간 이유다.

◇ 가격 인상은 꿈일 뿐

철강 제품가격은 철강업체들의 수익성과 직결되는 문제다. 제품가격이 인상된다면 그만큼 철강업체들의 수익성은 좋아진다. 철강 제품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원재료 값이다. 철광석과 유연탄의 가격이 제품 가격을 좌우한다. 원재료 값이 낮아지면 그만큼 제품가격을 인상할 수 있는 여력도 없어진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철광석과 유연탄 가격은 크게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지난 7월 철광석 국제 가격은 전년대비 20% 하락해 10년만에 가장 낮은 상태다. 한국광물자원공사에 따르면 지난 2013년 1월 톤당 157달러였던 국제 철광석 가격은 지난 21일 현재 톤당 56.39달러까지 떨어진 상태다.

 

▲ 자료:한국광물자원공사 (톤당 가격)

 

철광석 가격이 이처럼 하락세인 것은 최대 수입처인 중국이 과잉 생산으로 고전하면서 절대적인 수입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국 철강 수요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설 부문이 부진해 강재 수요가 줄어든 것도 수입량 감소의 원인이 되고 있다. 지난 7월 중국 내 철근 가격은 전년대비 30% 하락했다. 


유연탄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3년 2월 톤당 106.8달러였던 국제 유연탄 가격은 지난 21일 64.8달러까지 하락했다. 철강업체들로서는 제품 가격을 인상할 수 있는 조건 자체가 없어진 셈이다. 이에 따라 철강업체들은 제품 가격 인상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현재 철강 시장 상황이 원재료 가격이 상승한다고 해도 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원재료 가격이 올라도 수요가 없으니 가격을 인상하지 못한다. 이현수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와 같이 위축된 수요와 좀처럼 감소하지 않는 생산량 속에서는 철강재 가격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무너지는 실적

제품 가격 인상이 요원해지면서 철강업체들은 대부분 실적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 2분기 연결기준 매출액 15조1890억원, 영업이익 6860억원을 기록했다. 각각 전년대비 9.1%, 18.2%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작년 3분기 8787억원을 기록한 이후 계속 하락세다. 개별기준으로도 매출액은 전년대비 11.3%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7.5% 늘었지만 추세적으로는 작년 3분기 이후 내리막길이다.

시장에서는 포스코의 올해 하반기 실적의 관건은 최악의 영업환경을 얼마나 극복할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포스코의 수출 비중이 올해 50%를 넘어설 것으로 보이는 만큼 저가 공세를 펼치고 있는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내수 시장 대비 수익성이 낮은 해외 시장에서 수익성을 방어해내야 한다. 하지만 중국의 저가 공세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전망은 밝지 않다.
 

 

현대제철은 공격적인 투자와 그룹 차원의 계열사간 시너지가 맞물리면서 그나마 선방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현대제철의 2분기 매출액은 전년대비 11.3% 감소한 3조7022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18.3% 증가한 4245억원을 나타냈다. 현대하이스코 합병 등에 따른 시너지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

현대제철도 업황 부진의 영향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지난 2분기 공급 과잉에 따라 제품 가격을 인상을 하지 못했다. 또 후판 및 열연강판 가격의 하락 폭도 생각보다 컸다. 여기에 원재료 가격 하락에 따라 현대·기아차로 들어가는 자동차 강판 가격도 동결됐다. 상대적으로 다른 철강업체들에 비해서는 견조한 실적이었지만 업황 부진에 따른 불안 요인은 현대제철에게도 여전히 남아있다는 이야기다.

 

 
동국제강의 경우 지난 2분기 실적이 전년대비 큰 폭으로 향상됐다. 고강도 구조조정 효과를 본 것으로 보인다. 동국제강의 2분기 매출액은 전년대비 8.9% 감소한 1조4924억원에 그쳤지만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2056% 증가한 539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는 업황 부진에 따른 경영 악화로 페럼타워 등 자산 매각에 따른 효과다. 동국제강은 지난 6월 주력이었던 포항 후판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업황 부진의 여파다.

◇ 업황 부진 언제까지
 
업계와 시장에서는 철강 업황 부진이 언제까지 갈 것인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단기간 내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공급 과잉으로 재고 물량이 많은 데다 수요 산업의 회복도 쉽지 않아보여서다.

주목할 점은 최근의 시장 상황이다. 현재 상황으로는 수요 산업이 회복 된다고 해도 철강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기가 어려운 상태다. 최근 철강 시장의 상황이 변화해서다. 과거에는 수요가 회복되면 재고가 소진되고 이는 공급 부족 현상을 야기했다. 공급 부족은 결국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재고가 소진되더라도 공급부족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재고가 줄어들 경우 철강 업체들이 설비 가동률을 높이기 때문이다.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중국 업체들이 그렇다. 중국 업체들은 재고 소진보다 제철소 설비 가동에 초점을 맞춘다. 중국 경제의 특성상 지어놓은 설비를 놀릴 수 없어서다. 이렇다 보니 재고는 쌓이고 공급량은 계속 늘어간다.
 
▲ 업계에서는 중국 철강업체들의 공급 과잉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만큼 업황 회복 시기를 가늠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분석이 많다.
 
지난 4~6월 원료가격이 일시적으로 상승했을 당시 철강업체들이 제품가격을 인상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제품 가격 인상을 노려볼 수 있었지만 줄어드는 재고보다 생산량이 더 많아지면서 오히려 판매가격은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결국 공급과잉이라는 무거운 돌덩어리가 철강업체들의 실적 개선 요소를 짓누르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현재와 같은 구조로는 철강 업황의 회복 시기를 가늠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만큼 공급 과잉에서 시작된 업황 부진의 정도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전체적인 업황의 개선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각 품목별로 대응 전략을 마련해 단기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돌파구가 없는 상황에서 업황 회복 시기를 전망하고 그에 맞춰 수익성 회복 전략을 짜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면서 "개별 품목의 시장 상황에 맞춰 공급을 조절하는 단기적인 전략으로 버티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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