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기 위해 줄인다
국내 철강업체 중 구조조정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포스코다. 업황 부진에 따른 실적 하락에 올해 초부터 시작된 검찰의 비리 수사까지 겹치며 포스코는 만신창이가 됐다. 과거 몸집 불리기에 주력했던 전략이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특히 수익성 악화가 뼈아팠다. 지난 2008년 17.2%에 달했던 영업이익률은 작년 4.94%까지 떨어졌다. 5조원이 넘어섰던 연간 영업이익은 3조원대까지 내려앉았다.
작년 권오준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수익성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무너진 포스코의 위상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수익성 확보가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권 회장은 이를 위해 비핵심 사업 정리를 중심으로 한 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내놨다. 이에 따라 포스코는 올해 창사 이래 최초로 계열사인 포스하이알에 대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포스코플랜텍도 워크아웃을 신청한 상태다.
지난 7월에는 더욱 높은 강도의 구조조정안인 'IP 2.0'을 발표했다. 포스코는 올해 상반기 단독기준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1461억원이 증가했음에도 불구, 연결 기준으로는 1527억원이 감소했다. 부실 계열사들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포스코는 오는 2017년까지 국내 계열사의 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해외 연결법인도 지금보다 50개 줄어든 117개로 감축하기로 했다. 본격적인 몸집 줄이기에 나선 셈이다.
동국제강의 경우는 주력 사업을 통합했다. 동국제강은 후판 전문 업체다. 하지만 건설업과 조선업 등 후판 수요 산업들이 부진하면서 동국제강의 실적은 급락했다. 동국제강은 분기 기준으로 지난 2013년 2분기 이후 매분기 적자를 면치 못했다. 올해 1분기에는 58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기도했다.
결국 동국제강도 구조조정을 통한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사옥인 페럼타워를 매각했다. 또 인적 구조조정을 통해 조직을 슬림화했다. 사업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계열사였던 유니온스틸을 흡수 합병했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동국제강은 주력인 후판사업도 재편했다. 당진, 포항 2개 공장(연산 340만톤)을 당진공장(150만톤) 단일체제로 슬림화하기로 했다.
현대제철은 상대적으로 상황이 나은 편이다. 하지만 업황 부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현대제철은 지난 1월 경쟁력이 떨어지는 포항공장 철근 생산라인을 중단했다. 여기에 특수강 전용 전기로와 가열로 등을 설치해 특수강 전용공장으로 전환하는 등 사업 구조조정에 나선 상태다.
◇ 돈 되는 사업이라면…
철강업체들이 당면한 최우선 과제는 수익성 확보다.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는 것도 몸집을 줄이고 돈이 되는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업황 부진 지속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버티기 위해서는 크던 작던 돈 되는 사업에 뛰어들어야 한다. 최근 대형 철강업체들이 잇따라 진출하고 있는 특수강 시장과 봉형강 시장이 대표적이다.
현대제철은 동부특수강을 인수하고 본격적인 특수강 시장 진출을 준비중이다. 그동안 국내 특수강 시장은 세아그룹이 쥐고 있었다. 하지만 현대제철이 특수강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현대제철은 현재 충남 당진에 구축 중인 특수강 1차 공정 생산라인을 통해 내년 2월부터 특수강을 양산할 계획이다.
특수강 시장이 주목받는 것은 자동차, 조선 등 주요 산업 핵심 부품 제조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생산 비용이 다른 철강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데다 수요처는 항공기, 자동차, 특수 기계 등으로 꾸준하다. 업황 부진 속에서 꾸준한 수요처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은 철강업체들에게 매력적이다. 현대제철의 경우 현대·기아차라는 안정적인 수요처를 가지고 있다.
▲ 현대제철은 동부특수강을 인수, 현대종합특수강으로 사명을 바꾸고 본격적으로 특수강 시장에 뛰어들었다. 업황 부진으로 수익성 확보를 위해 새로운 시장에 진출한 셈이다. |
봉형강 시장도 마찬가지다. 봉형강 시장에 새롭게 뛰어든 곳은 포스코다. 포스코는 지난 6월 베트남에 연산 100만톤 규모의 봉형강 공장을 준공했다. 포스코는 이곳에서 생산한 철근과 H형강 등 봉형강 제품을 한국으로 들여오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베트남 봉형강 공장은 원래 포스코특수강이 투자한 공장이었다. 포스코특수강이 세아베스틸에 합병됐지만 베트남 공장은 포스코에 남았다. 그 덕에 포스코는 봉형강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당초 포스코가 포스코특수강 베트남 공장을 건설했던 것은 동남아 현지 수요를 감안해서였다. 하지만 현지 수요가 기대에 못미치자 방향을 틀었다. 최근 국내 주택 경기가 조금씩 회복되면서 철근 등의 수요가 늘고 있다. 수익성 확보에 사활을 건 포스코가 베트남산 봉형강 역수입을 고려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대형 철강업체들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작은 시장에 대형 업체들이 뛰어들면서 경쟁이 심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중소 업체들이 대형 업체에 밀려 도태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수강 시장에서는 현대제철과 세아그룹이, 봉형강 시장에서는 포스코와 현대제철·동국제강의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가격 출혈 등으로 오히려 수익성이 악화될 수도 있다.
◇ 살아남기 위한 조건
▲ 중국 철강업체들은 최근 업황 부진 장기화로 재무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재무적 압박을 못이긴 중소형 업체들이 자연스럽게 도태되면서 조만간 구조조정이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
따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 업체들은 시장 논리에 의해 자체적으로 구조조정 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업체들은 이런 상황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글로벌 철강 시장을 틀어쥐고 있는 중국에서 변화가 일어날 경우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곳은 국내 업체들이다. 그런만큼 선제적이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미리 준비한다면 기회가 올 수도 있다.
이현수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업체들이 중국보다 먼저 구조조정을 마무리 짓는다면 중국의 철강업체들이 구조조정에 직면했을 때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 국내 철강업체들이 진행하고 있는 구조조정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일 뿐 먼 미래를 준비하는 구조조정으로 보기는 어렵다"면서 "비효율적인 요소를 과감히 정리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생존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