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鐵)'은 산업의 쌀이다. 설비부터 제품까지 철이 사용되지 않는 곳이 드물다. 이 산업의 근간이 글로벌 경기침체로 흔들리고 있다. 수요는 줄고 공급은 많아졌다. 철강은 조선업 등과 함께 대표적인 경기 민감 업종이다. 경기가 좋을수록 용광로는 쉴새 없이 돌아간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큰 타격을 입는다. 업종 특성상 회복도 느리다. 업계와 시장에서는 유례없는 침체기로 보고 있다. 국내 철강업체들도 판매 부진과 실적 악화로 신음하고 있다. 철강업황 부진의 원인과 국내 업체의 대응, 업황 전망 등에 대해 짚어본다.[편집자]
철강업황 부진의 원인으로 꼽히는 곳은 중국이다. 중국 철강업체들의 무분별한 생산으로 글로벌 철강 시장은 혼란을 겪고 있다. 공급량은 물론 가격까지 뒤흔들고 있다. 중국 정부가 나서봤지만 역부족이다. 업계에서는 상당기간 중국발(發) 공급과잉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중국發 공급과잉' 원인은
중국 경제는 지난 2003년부터 매년 급격한 성장을 거듭해왔다. 비록 지난 2007년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지만 글로벌 경기침체를 감안하면 여전히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높다. 작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3.9%였던 반면 중국은 7.4%를 기록했다.
중국 경제의 급격한 성장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중국의 고도 성장을 뒷받침했던 것은 바로 자국내 산업이다. 산업의 규모가 팽창하면서 철강 수요도급격하게 증가했다. 이때부터 중국 중소 철강업체들이 난립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5년과 2006년 전후로 시작된 중국 경제와 산업의 본격적인 성장은 이들 철강업체들에게 큰 과실을 안겨줬다.
▲ 자료:중국 국가통계국. |
이때부터 중국 업체들은 글로벌 철강업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글로벌 철강 생산능력 대비 중국 업체들의 생산량 비중은 지난 2001년 14.1%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2007년 41.1%까지 뛰어올랐다. 지난 2007년은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3%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해다. 불과 7년만에 생산 능력이 26%포인트 증가했다.
이후에도 중국 업체들의 철강 생산능력은 계속 증가했다. 작년 글로벌 철강 생산량 대비 중국 업체들의 생산량 비중은 55%를 나타냈다. 세계철강협회에 따르면 작년 중국의 조강생산량(강철 생산량)은 8억2270만톤으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이제 글로벌 철강 시장은 중국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발 철강 공급과잉 현상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철강산업은 장치산업이다. 최종 제품이 아닌 중간 소재를 생산한다. 따라서 업종의 특성상 수요 감소시 대응이 어렵다. 다른 산업처럼 인센티브를 늘리거나 가동률을 낮춰 소비와 재고를 조절하는 게 쉽지 않다. 제철소는 계속 돌아가는데 판매할 곳이 없는 셈이다.
◇ 확산되는 피해
중국 철강업체들은 그동안 자국의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대대적인 설비를 구축하고 생산에 돌입했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지난 2003년 이후 설비를 증설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2012년과 작년에는 각각 1000만톤씩 감산에 돌입했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은 계속 설비를 증설했다. 중국 업체들의 무분별한 증설은 공급과잉을 낳았고 이제는 주변국 뿐만 아니라 글로벌 철강 시황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뒤늦게 공급과잉의 폐해를 깨달은 중국 업체들은 출혈을 감수하고 자국산 철강제품을 해외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1년 4940만톤이었던 중국의 철강 수출량은 작년 9380만톤까지 늘어났다.
중국 업체들은 내수 시장에서 남아도는 철강 제품 수출을 위해 가격을 대폭 낮췄다. 품질에서 앞서는 한국이나 일본 제품을 이길 수 없어서다. 특히 철강 제품은 부피가 크고 무거워 수출할 경우 물류비용이 많이 든다. 따라서 중국 업체들은 물류비용까지 감안해도 수출 대상 국가의 내수 제품 가격보다 싸게 수출해야 했다. 내수 시장에서의 재고를 털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 자료 : 한국철강협회 |
중국 업체들의 저가 수출 정책은 성공을 거뒀다. 특히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까운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산 철강제품의 수입이 크게 늘었다. 작년 우리나라의 중국산 철강제품 수입량은 전년대비 34.9% 증가한 1339만5000톤을 기록했다. 이는 일부 고부가가치 제품을 제외한 범용제품에서 가격경쟁력을 가진 중국산 철강 제품이 대체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중국산 저가 물량이 대거 유입되면서 해당 수입국의 철강 시장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국내에 수입된 중국산 후판의 경우 톤당 가격이 60만원선이었다. 국내 제품의 경우 톤당 90만원으로 가격 차이가 컸다. 여기에 중국 업체들이 가격을 더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뿐만 아니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은 작년 5월 저가 중국산 H형강에 대해 반덤핑 혐의로 정부에 제소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철강업체들이 편법으로 저가 제품을 대거 수출하는 것은 결국 자신들이 자초한 공급과잉의 피해를 주변국으로 떠넘기려는 것"이라며 "중국의 과잉생산이 중단되지 않는 한 주변국의 피해는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중국 정부에 달렸다
업계와 시장에서는 중국발 공급 과잉의 영향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과잉 생산한 물량은 이미 중국 내부에서 소화하기 힘든 상태다. 따라서 중국 업체들은 지속적으로 낮은 가격에 수출을 시도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렇게 되면 글로벌 철강업체들의 제품 가격 인상은 요원해진다. 판매 가격을 올리지 못한다면 수익성 악화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최근 철강 제품 가격 결정에 있어 중요한 잣대인 철광석과 석탄 가격이 하락하고 있음에도 업체들이 판매 가격을 인상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철강 업황 침체 기간이 더욱 길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전문가들은 업황 회복을 위해서는 우선 중국의 저가 수출 물량이 감소해야한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중국 내수 증가와 생산 및 공급량의 축소가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경제 성장이 눈에 띄게 둔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내수 증가를 기대하기에는 무리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 자료 : POSRI |
생산 및 공급량 축소의 경우 중국 정부가 나서지 않는 한 해결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중국 업체들의 자발적인 감산이나 생산시설 폐쇄를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중국 정부가 강제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침 중국 정부는 얼마 전 '신(新) 철강정책'을 통해 오는 2017년까지 생산량 8000만톤을 감소시켜 공급 과잉 해소에 나서기로 했다.
또 최근 중국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도 기대해 볼만 하다. 일대일로 정책은 육상의 실크로드 경제지대와 해상의 21세기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대륙을 도로와 바닷길로 연결, 인근 일대를 종합적으로 개발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철강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
권순우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일대일로와 같은 정부 정책에 따른 대규모 수요 발생이나 정부의 적극적인 구조조정 개입으로 인한 공급량 축소가 아니라면 현재의 틀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현 상황 해소를 위해서는 중국 정부 정책과 같은 변수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