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그룹의 ㈜동양 경영권 확보 시도가 일단 무산됐다. 유진은 지난 30일 주주총회에서 파인트리자산운용와 손잡고 동양 이사로 자사 측 인물을 심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동양 지분의 74%를 차지하고 있는 소액주주들은 유진에 신뢰를 보이지 않았다. 일단 동양 현 경영진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변화보다 안정을 택했다.
하지만 유진은 동양 경영권 확보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동양 현 경영진도 경영권 방어를 위한 채비를 더욱 단단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소액주주들은 이번엔 동양의 손을 들어줬지만 언제까지 지지할지는 동양 측도 확신이 없다. 주총 이후에도 동양을 둘러싼 제각각 주체들의 행보를 눈여겨 봐야하는 이유다.
◇ 유진 "파인트리 지분 산다"
유진은 이번 주총을 마친 뒤 결과에 승복하며 "안정적 경영권을 확보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지분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유진이 동양 인수 의지를 밝히며 추산한 최소 목표 지분률은 25% 정도다. 현재 공개된 유진의 의결권 있는 동양 주식 지분율은 10.01%다. 여기에 주총 전날인 29일에는 동양레저가 가진 지분 3.03%를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사들였다.
유진은 주총에서 연합한 파인트리의 지분도 빠른 시일안에 인수한다는 계획이다. 유진 관계자는 "조만간 인수 계약을 맺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주총에서 파인트리와 의결권 공동행사 계약을 맺으면서 서로의 지분을 일정 시점에 일정 가격으로 매수할 수 있는 권리(콜 옵션)를 주고받은 것은 유진 입장에서 상대방 지분 인수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인트리가 가진 동양 지분은 10.03%다. 이 지분까지 확보하면 유진은 23.07%까지 지분율을 끌어올리게 된다. 목표에 근접한 수준이다. 장내에서 추가로 지분을 매입하고 소액주주의 지지까지 이끌어 낸다면 다음엔 의결권 과반을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임시주주총회를 소집해 이사 수를 늘려 동양 경영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된다.
◇ 동양의 '독자경영' 방어수는
김용건 대표 등 동양 현 경영진은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이번 주총에서 동양은 안건 부결을 위해 유진-파인트리 연합이 모아올 의결권의 절반만 확보하면 됐다. 의안 통과 조건이 출석 주식수의 3분의 2를 넘기는 것으로, 현 경영진에 유리하게 돼 있었기 때문이다.
동양은 이번 주총에서처럼 뚜렷한 대주주가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외부의 경영권 침입을 막을 장치를 해뒀다. 하지만 유진 등 동양 인수를 희망하는 기업들이 절대적 지분을 차지하게 되면 저지선은 뚫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이번 주총에서 김용건 대표가 "매년 영업 이익의 3분의 1에서 2분의 1을 주주에게 배당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두 가지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소액주주들에게 고배당을 약속해 현 경영진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는 동시에, 주가를 끌어올려 외부로부터의 지분 매집 부담도 키우려는 포석"이라고 설명했다.
◇ 소액주주 마음은 '갈대'
동양이 지켜낸 경영권은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한시적, 제한적' 성격이 강한 소액주주들의 의결권 위임으로 현 상태를 유지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소액주주들은 과거 잇딴 감자와 출자전환 등으로 투자 주식에 대한 재산상 손해를 입은 경우가 많아 주가와 배당에 민감하다.
즉 유진을 비롯한 다른 외부 기업으로의 인수합병이 주가를 끌어올리고, 배당 성향을 더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현 경영진에 대한 지지도 뒤집힐 수 있다는 게 증시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런 맥락에서 유진은 인수합병 시너지나 동양과의 경영실적 비교 등으로 소액주주들의 표심을 끌어모으는 계획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주총에서도 한 50대 남성 소액주주는 "동양 경영진이 원하는 결과가 나왔지만 주주들이 동양을 신뢰해 밀어준 것은 아니다"라며 "향후 유진이 주가를 끌어 올려 주주이익을 제고할 것을 약속한다면 경영 참여를 지지할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 '캐스팅 보트' 쥔 삼표
동양 지분 3.19%을 가진 삼표의 의중도 변수다. 삼표는 유진기업과 레미콘 시장 1~2위를 다투는 기업이다. 작년 동양시멘트를 인수하면서 레미콘 원료인 시멘트를 유진에 공급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이번 주총에서는 동양 쪽에 위임장을 줬다. 유진이 동양을 인수해 자사와 시장점유율 격차를 벌리는 게 불편했을 거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이 선택이 주총에서 동양이 승리하게 된 결정적 '캐스팅 보트'였다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삼표가 동양에 경영권을 행사할 것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다른 선택이 가능하다. 유진 견제를 위해 동양과 공조할 개연성도, 보유 물량에 웃돈을 얹어 유진측에 팔 여지도 있다.
아울러 동양이 보유현금을 이용해 추진하는 삼부건설공업 인수 시도 등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증권사 한 연구원은 "동양은 건자재 사업 시너지를 높이 보고 인수를 시도하고 있지만, 소액주주들이 시너지 논리나 인수가격 적정성에 불만을 느낄 경우 동양 지지를 철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