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전기차 배터리 강국이다. 가장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여나가고 있다. 하지만 암초가 생겼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의 견제다. 특히 중국 정부는 각종 규제 장벽을 만들면서 자국 배터리 기업에게 성장 기회를 주고 있다. 최근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직면한 위기와 향후 전망 등을 알아본다. [편집자]
중국의 견제는 국내 배터리 기업 실적에 충격을 안겼다. 그 동안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기술 개발을 통해 관련 사업이 향후 신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크다.
당분간 중국에서의 배터리 사업 불확실성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향후 배터리 시장 성공의 열쇠로 꼽히는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장밋빛이었던 국내 배터리 업계 사업 전망이 안갯속으로 빠졌다는 반응이 나오는 배경이다.
◇ 규제로 악화된 수익성
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지난 2분기 전지사업에서 영업손실 312억원을 기록했다. 1분기 3억원 수준이던 적자폭이 2분기 들어 큰 폭으로 증가했다.
LG화학 전지사업은 모바일 제품에 사용되는 소형 배터리와 전기차 및 ESS(에너지저장장치) 등에 들어가는 중대형 배터리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중대형 배터리 시장의 성장성을 눈여겨본 LG화학은 선제적 투자를 통해 기술 경쟁력을 확보했고, 공격적인 사업 확장으로 올해부터 전기차 배터리를 중심으로 중대형 배터리 사업성과가 본격화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NMC(니켈·망간·코발트) 계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버스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면서 전지 사업에 차질이 생겼다. 일반 승용 전기차 배터리 제품보다 수익성이 좋은 상용차 배터리 매출이 줄면서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이다.
정호영 LG화학 CFO 사장은 “중국의 규제로 상용차 매출은 줄어든 반면 전기차 승용차 비중이 늘어 전체 매출 규모는 유지됐지만 수익성은 악화됐다”며 “하반기에도 배터리 사업 수익성 개선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그래픽: 김용민 기자/kym5380@ |
삼성SDI도 마찬가지다. 삼성SDI는 지난해 롯데케미칼에 케미칼 사업부분을 넘기고 배터리 사업에 집중하기로 했지만 성과는 미흡하다. 삼성SDI 2분기 매출액은 1조3172억원을 기록한 반면 영업손실 542억원이 발생했다.
지난 2분기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으로 승승장구했던 SK이노베이션 역시 배터리 사업 부분에선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시장에서도 전기차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국내 배터리 업체 사업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있다.
◇ 가격 경쟁력 확보가 관건
향후 배터리 시장 주도권은 배터리 가격 경쟁력이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한 조건으로 충전 인프라와 함께 가격 인하를 꼽는다. 현재는 각국 정부가 전기차 구매자 부담을 덜기 위해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시장이 자체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지금보다 전기차 가격이 떨어져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이를 위해선 전기차 배터리 가격 인하가 필수다. 전기차 가격 중 핵심 부품인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까닭이다.
배터리 가격을 낮추려면 대규모 생산설비를 갖춰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하지만 주요 타깃 시장인 중국에서 규제 등으로 인해 사업 불확실성이 확대된 국내 기업 입장에선 생산설비를 공격적으로 늘리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반면 전기차 선두 업체인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일본의 파나소닉, 배터리부터 전기차까지 수직계열화를 갖춘 중국 BYD는 공급망이 확실한 만큼 증설에 여력이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들과 경쟁하는 국내 배터리 업계의 사업환경이 녹록지 않은 이유다.
손영주 교보증권 연구원은 “앞으로 배터리 시장에선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선 생산설비를 지속적으로 늘려야 한다"며 "최근 테슬라와 BYD가 공격적으로 증설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은 이들에게 배터리를 납품하지 않는 국내 업체에게는 위협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기업들이 중국은 물론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공급계약을 맺고 있지만 향후 경쟁업체 배터리 가격이 인하된다면 완성차 업체들은 값싼 배터리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며 “기술 뿐 아니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배터리 사업에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