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이 세계 조선업 역대 최대 규모 수주 기록을 세웠습니다. 6년째 적자가 이어지고 있는 삼성중공업은 "조선업 역사를 새로 썼다"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장기간 '수주 가뭄'에 빠진 국내 조선업계에 낭보가 전해진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차분히 이번 수주를 살펴볼 필요는 있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 수주의 내실은 어떤지 분석해 봤습니다.
지난 26일 삼성중공업은 1만5000TEU급(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대) 컨테이너선 20척을 수주했다고 밝혔습니다. 총 수주 규모는 2조8000억원. 발주처는 대만 해운사 에버그린으로 알려졌습니다. 회사 측은 "단일 선박 건조 계약으로서는 세계 조선업 역대 최대 규모"라고 설명했습니다.
외신에 따르면 이번 수주전을 두고 현대중공업, 일본의 이마바리조선, 중국의 조선소(Hudong Zhonghua, Jiangnan) 등이 경쟁을 벌였다고 합니다. 발주 물량이 많다보니 언론에선 한·중·일 회사들이 물량을 나눠 받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삼성중공업이 싹쓸이했습니다.
싹쓸이 수주의 내실은 어떨까요. 삼성중공업은 2010년 이후 에버그린과 총 4번의 컨테이너선 수주 계약을 맺었는데, 이번 수주와 이전 계약 조건과 비교해 봤습니다.
2010년 삼성중공업은 에버그린으로부터 8000TEU급 컨테이너선을 7월에 10척, 9월에 10척을 총 2조4514억원에 수주했습니다. 2018년에는 1만2000TEU급 컨테이너선 8척을 8179억원에 주문받았죠. 선박 크기가 2010년 8000TEU, 2018년 1만2000TEU, 2021년 1만5000TEU로 11년 새 2배 가까이 커지는 동안 평균 선박 가격은 2010년 1226억원, 2018년 1022억원, 2021년 1400억원 등으로 정체된 것입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삼성중공업의 수주에 대해 "규모가 큰 것은 맞지만 계약 조건이 좋은 것은 아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렇다고 이번 수주를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세계 조선업은 수요는 줄고 공급은 늘어나는 공급과잉 상황입니다. 특히 기술 장벽이 낮은 컨테이너선은 중국 조선사의 저가 물량 공세가 쏟아지는 '레드오션'입니다.
삼성중공업이 조선·해운 전문기관인 클락슨의 신조선가 지수를 인용해 산출한 1만3000TEU 기준 컨테이너선 가격은 2018년 1억1500만달러, 2019년 1억900만달러, 2020년 9700만달러로 매년 떨어지고 있습니다.
삼성중공업과 같은 날 수주를 발표한 한국조선해양도 비슷한 처지입니다. 지난 26일 한국조선해양도 1만3200TEU 컨테이너선 5척을 6370억원에 수주했는데, 평균 수주 가격을 계산해보면 1274억원 수준입니다. 1만5000TEU 컨테이너선을 1400억원에 수주한 삼성중공업과 도긴개긴인 셈이죠.
이 가운데 20척을 싹쓸이 수주했다는 것은 삼성중공업의 영업 경쟁력이 입증받았다는 얘기일 것입니다. 올해 전 세계에서 발주된 1만2000TEU급 이상 대형 컨테이너선 66척 중 삼성중공업이 절반 이상인 34척을 수주했습니다. 시장점유율 1위입니다. 한국 선박의 프리미엄을 인정받은 것이죠.
여기에 선박을 새로 만드는 가격을 나타내는 '신조선가 지수'도 오르고 있습니다. 클락슨에 따르면 컨테이너선 신조선가 지수는 작년 12월 75.4 이후 올해 1월 76.4, 2월 77.4, 3월 82로 월평균 약 3%씩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 덕분에 국내 조선업엔 더 깊은 바닥은 없을 것이란 낙관적인 기대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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