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롭게 국산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외쳤던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속속 이를 접고 있다. 엔데믹에 따른 여파다. 하지만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코로나 백신 및 치료제 개발 중단 소식이 잇따르는 가운데서도 일부는 사실상 개발을 포기했음에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침묵하고 있다.
현재 국산 코로나 백신 개발에 뛰어든 10곳 중 3곳이 개발 중단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HK이노엔은 지난 9일 코로나19 백신 'IN-B009'의 국내 임상1상을 자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대웅제약도 지난해 코로나 백신으로 개발 중이던 'DWJ1248정'과 코로나 치료제로 개발 중이던 'DWRX2003주'의 개발을 중단했다. 제넥신도 지난 3월 인도네시아에서 임상 2/3상을 진행할 예정이었던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GX-19N'의 개발을 포기했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잇따라 코로나 백신 개발을 중단하는 이유는 국내 백신 접종률 증가로 미접종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대상자 모집에 어려움이 많아서다. 우리나라는 지난 8일 기준 전체 인구의 87.7%가 1회 이상 접종을 마쳤고 2차 접종 완료는 86.8%, 3차 부스터샷 접종을 완료한 비율은 64.6%에 달한다.
백신 개발을 포기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국산 코로나 백신 1호 탄생이 임박하면서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자체 개발한 GBP510의 임상3상을 마치고 지난달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이르면 오는 6월 허가가 이뤄질 전망이다. 앞서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질병관리청과 1000만회 접종분의 GBP510 공급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허가가 이뤄지면 바로 국내 공급 및 접종이 이뤄지게 된다.
국산 코로나 치료제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당초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임상계획을 신청한 제품 총 22개 중 공식적으로 개발 중단을 발표한 건 GC녹십자, 대웅제약, 부광약품 등 3곳이다. 엔지켐생명과학은 코로나 치료제로 개발 중이던 'EC-18'의 호중구감소증 치료 목적 임상2상에 대한 개발을 중단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코로나 치료제 임상2상에 실패했음에도 코로나 치료제 개발 중단을 공식화하지는 않았다.
백신의 경우 다수 국민들이 기본 접종을 마쳤고 화이자와 모더나, 노바백스 등 수입 백신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SK바이오사이언스의 국산 백신 도입을 앞두고 있어 앞으로 개발되는 국산 코로나 백신의 경쟁력을 장담할 수 없다.
치료제의 경우 감염력이 높은 대신 중증화 위험이 낮은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코로나 대응 환경이 변화했다. 백신과 치료제 모두 시장성을 담보할 수 없는 만큼 개발을 중단하는 게 오히려 현명한 판단일 수 있다. 문제는 사실상 개발을 포기했음에도 슬그머니 얼버무리려는 기업들이다.
업계에 따르면 일부 기업들이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있음에도 공식적인 발표는 하지 않고 있다. 주가 하락과 기업 신뢰도 및 이미지 타격을 우려해서다. 개발이 지연되는 이유로 임상환자 모집 난항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임상시험 약물이 의약품으로 최종 허가받을 확률은 통계적으로 약 1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개발에 성공하는 게 어렵다는 이야기다. 개발에 실패하거나 포기하더라도 도전을 통해 경험을 쌓는 것이 결국 자산으로 돌아오게 된다.
일각에서 코로나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을 주가 상승 도구로 활용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사스, 메르스 등 과거 신종 감염병이 출몰했을 당시에도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내세운 기업들이 등장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내지 못했었다. '구렁이 담 넘어 가듯' 개발 중단을 쉬쉬하는 일이 반복될수록 제약바이오 산업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기업들은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