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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만 띄우고 임상 중단?"…'약물 재창출'의 허상

  • 2022.10.06(목) 07:20

시판 중인 약물 새 적응증 발굴하는 신약개발 방법
다수 기업 '약물 재창출'로 코로나 치료제 개발 발표
성과는 '0'…"주가 부양 위해 호재성 정보 이용" 지적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코로나19 이후 치료제 개발에 뛰어든 국내 기업은 50여곳에 달한다. 이중 상용화에 성공한 곳은 셀트리온뿐이다. 신약 개발은 실패의 확률이 더 큰 영역이다.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도전 자체만으로도 격려할 만하다.

다만, 일각에선 코로나19가 엔데믹(풍토병) 국면에 접어든 만큼 치료제 개발 기업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이뤄질 때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약물 재창출' 방식으로 치료제 개발에 나섰던 기업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는 모습이다.

경제성 높지만 성공률은 '글쎄'

2020년 초 코로나19 창궐 당시 바이오 업계에선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열풍이 불었다. 치료제 개발 기업들이 가장 많이 활용했던 전략은 약물 재창출이다. 약물 재창출은 시판 중이거나 임상에서 안전성 외의 이유로 상업화에 실패한 약물의 새로운 적응증을 발굴하는 신약 개발 방법이다.

제약바이오 기업이 약물 재창출 전략을 구사하는 이유는 신약 개발 기간과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어서다. 개발 중인 후보물질이 다른 질환에도 효능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때문에 후보물질 탐색 단계를 거칠 필요가 없다.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약의 경우 이미 안전성이 검증된 만큼 임상1상 단계를 생략할 수 있다. 또 감염병 대유행 등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신속하게 치료제를 개발해야 할 때도 주로 쓰인다.

그러나 약물 재창출은 한계가 명확하다. 처음부터 해당 질환을 겨냥해 개발한 것이 아니기에 효능이 뛰어난 약물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점이다. 기존 약물에서 새로운 적응증을 찾아내는 것도 힘들지만, 찾아내더라도 기대보다 효능이 좋지 않은 사례가 대부분이다.

지난 2020년 세계 최초 코로나19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긴급사용 승인을 받은 '베클루리주'(성분명 렘데시비르)가 대표적이다. 베클루리주는 바이러스가 유전체인 리보핵산(RNA)을 복제할 때 이를 억제하는 항바이러스 치료제다. 앞서 길리어드 사이언스는 렘데시비르를 에볼라 치료제로 개발하다가 실패한 바 있다.

이후 렘데시비르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 코로나바이러스 계열 감염병에도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코로나19 임상을 진행, FDA 조건부 승인을 얻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현재 렘데시비르는 최종적으로 코로나19 치료에 효능이 없다고 밝혀졌다.

개발 중단 코로나19 치료제 '전부' 약물 재창출

이에 업계에선 약물 재창출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최근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성과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난 만큼 약물 재창출로 치료제 개발에 나섰던 기업을 재평가할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임상 의지나 역량이 없는 일부 기업이 주가 부양만을 위해 약물 재창출이라는 호재성 정보를 이용했다는 지적이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실제 팬데믹 초기 기업들이 약물 재창출 방식으로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계획을 발표하면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특히 시가총액 1조원 미만의 중소형 제약바이오 기업의 주가 변동이 도드라졌다. 중소형 기업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나서면서 굴지의 대형 제약사 시가총액을 뛰어넘는 모습도 연출됐다.

코로나19 창궐 직전인 2020년 1월 3783억원이었던 신풍제약의 시가총액은 치료제 개발 의사를 밝힌 뒤인 같은 해 6월 1조6134억원으로 326% 이상 치솟았다. 같은 기간 일양약품은 4018억원에서 1조5154억원, 부광약품은 9371억원에서 2조4055억원으로 시가총액이 각각 277%, 157% 이상 급증했다. 2020년 6월 기준 종근당과 대웅제약의 시가총액은 각각 1조2138억원, 1조6916억원 수준이었다.

반면, 이들 기업 중 유의미한 성과를 보인 기업은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코로나19 치료제 임상계획을 신청한 연구 과제를 보면 개발이 중단된 모든 과제가 약물 재창출 방식이다. 나머지 연구 과제도 대부분 임상2상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지금까지 상용화에 성공한 국산 코로나19 치료제는 셀트리온의 항체치료제 '렉키로나'(성분명 레그단비맙)밖에 없다.

"실험실 연구만으로 언론보도"…효능 부풀려 시장 왜곡

사실상 개발을 포기했음에도 임상 중단을 알리지 않은 기업이나 해외에서 임상을 발표한 기업까지 포함하면 약물 재창출의 실패 사례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 치료제를 이용한 주가 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일양약품은 러시아에서 임상을 진행했다. 올 초 임상 중단을 선언한 큐리언트 역시 남아프리카공화국 규제기관에서 임상 허가를 획득,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을 진행해왔다.

임상을 신청하지도 않은 경우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의사를 밝힌 여러 바이오 기업이 임상계획 신청 전 시험관 내 시험(in vitro) 연구만으로 기존 후보물질의 효능을 확인했다고 언론보도를 냈다. 테라젠이텍스, 셀리버리, 압타바이오, 코미팜, 젬백스, 카이노스메드 등이다. 해외 임상이나 전임상은 식약처 등에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임상 진행 경과를 확인하기 어렵다.

메르스나 원숭이두창 등 감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이런 행태를 반복하는 기업도 많다. 하나의 후보물질이 다양한 감염병에 치료 효과를 낸다고 홍보하는 식이다. 약물 재창출 방식의 희박한 신약 개발 가능성을 모를 리 없는 제약바이오 기업이 약물의 효능을 부풀려 주가 부양을 노린 것이란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업계 관계자는 "감염병 테마를 통해 투자자를 현혹하는 기업이 종종 나오는데, 이는 업계 전체의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약물 재창출 방식이 처음부터 성공 확률이 높지 않다는 걸 알았음에도 주가 부양과 방역 주권 등의 이유로 애써 진실을 외면한 건 아닌지 모두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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