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화성 궤양용제 시장에서 차세대 약물로 꼽히는 칼륨 경쟁적 위산분비 차단제(P-CAB) 경쟁이 내년부터 본격화할 전망이다. 현재 국내에 출시된 P-CAB 계열 위식도 역류질환 치료제는 HK이노엔의 '케이캡(성분명 테고프라잔)'이 유일하다.
여기에 대웅제약과 일본 제약기업인 다케다가 후속제품의 품목허가를 획득하고 출시를 준비하고 있고 제일약품도 개발 막바지 단계에 돌입했다. 아직 소화성 궤양용제 시장은 프로톤펌프 억제제(PPI)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P-CAB 후속약물들이 출시되면 PPI에서 P-CAB으로 시장 판도가 변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HK이노엔이 지난 2019년 국산 신약 30호로 허가받았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인 유비스트(UBIST)에 따르면 출시한 해에 309억원의 원외처방액*을 기록했다. 다음 해에는 2배 이상 늘어난 761억원, 지난해에는 1000억원을 넘기며 대형 블록버스터 의약품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위식도 역류질환을 포함한 국내 소화성 궤양용제 시장 규모는 총 7497억원으로, 케이캡이 시장 1위를 기록했다.
*원외처방액: 약국에서 병원 처방의약품을 조제하고 조제 내역에 따른 급여비용을 청구한 데이터.
소화성 궤양은 염산, 펩신분비 등 위장관 점막을 손상시키는 공격인자와 점액분비, 점막세포재생 등 방어인자의 불균형이 주 원인이다. 공격인자가 방어인자보다 우세할 때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등이 발병한다. 역류성 식도염(GERD)은 위 전정부에서 분비되는 위산이나 위의 내용물이 식도 내로 유입돼 하부식도에 염증을 유발하고 속쓰림과 상복부 통증 등 다양한 임상 증상과 식도 점막의 변화를 가져오는 질환이다.
발병 원인은 다르지만 공격인자를 억제하거나, 방어인자를 증가시켜 치료하기 때문에 두 질환의 치료에 사용하는 의약품이 거의 동일하다. 과거 시장에서는 위산분비를 억제하는 공격인자 억제제인 프로톤펌프 억제제(PPI)와 H2수용체 길항체(H2RA)가 대세였다. 그러다 2019년 H2RA 계열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라니티딘'과 '니자티딘' 성분에 발암의심물질인 불순물이 함유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소화성 궤양용제 시장에서 H2RA의 입지는 대폭 줄어들었다.
H2RA 계열의 시장 축소로 위산분비를 억제하는 PPI가 시장을 확대하면서 격차를 벌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2015년 H2RA와 PPI의 원외처방액은 3000억원 내외로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2020년 H2RA는 1000억원대, PPI는 6000억원대로 약 6배의 격차가 벌어졌다.
PPI가 견고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가운데 P-CAB 후발주자들이 줄줄이 출시를 앞두고 있어 소화성 궤양용제 시장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대웅제약은 지난해 12월 P-CAB 제제인 '펙수클루(성분명 펙수프라잔)'를 국산 신약 34호로 품목허가를 받았다. 이르면 올 하반기, 늦어도 내년 출시가 예상된다. 앞서 2019년 일본 다케다가 개발한 P-CAB 제제 보신티(성분명 보노프라잔)도 국내 허가를 받았지만 국내 판권 문제로 출시가 지연되고 있다. 판권 및 급여 문제가 해결되면 두 제품 모두 줄줄이 출시가 이뤄질 예정이다.
또 제일약품 자회사인 온코닉테라퓨틱스는 이달 초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위궤양 환자를 대상으로 한 'JP-1366'의 임상3상 시험계획을 승인받았다. 온코닉테라퓨틱스는 제일약품이 지난 2020년 5월 스핀오프한 신약 연구개발 전문회사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역류성식도염 임상3상을 허가받은 바 있다. 출시 초기부터 다양한 적응증을 내세워 빠르게 시장을 넓히기 위한 전략이다.
케이캡은 국내에서 미란성 및 비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 위궤양, 헬리코박터파일로리 제균을 위한 항생제 병용요법 등의 적응증을 확보하고 있다. 이 중 미란성 및 비미란성 위식도 역류질환과 위궤양은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고 있고 향후 다양한 적응증 및 급여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아직 국내에 P-CAB 제제가 '케이캡' 1품목뿐이지만 후발주자들이 출시되면 소화성 궤양용제 시장이 PPI에서 P-CAB으로 전환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케이캡은 지난달 알약을 삼키기 어려운 환자들이 물 없이 입 안에서 녹여먹을 수 있는 구강붕해정 제형을 출시하면서 빠르게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P-CAB은 PPI의 느린 약효 발현 시간, 식사 30분 전 복용, 야간 위산분비 촉진 등 단점을 개선해 소화성 궤양용제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다"면서 "앞으로 PPI에서 P-CAB으로 시장 판도가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