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품었다. 14년 만이다. 한화는 지난 2008년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기회를 얻지만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로 그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무리스럽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14년이 지난 지금의 평가는 다르다. 한화의 주력인 방산과 에너지 등에서 시너지를 낼 요소가 많다는 평가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통해 한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망해 본다. [편집자]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마무리되면 산업은행은 2대 주주가 된다. 산은이 대우조선해양 대주주 자리를 민간 기업에 넘겨주는 건 2000년 이후 22년 만이다. 하지만 산은은 2대 주주로서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그간 투입한 자금을 회수해야 한다는 명분도 있다. 실제로 산은은 사외이사 파견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의 이사직은 두자리가 남아있다.
산은, 매각이라 하지 않는 이유
산은은 대우조선해양을 한화그룹에 '매각했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전략적 투자 유치'라는 점을 강조한다. 지난 16일 산은이 배포한 보도자료에도 "대우조선해양의 근본적 정상화를 위해 전략적 투자유치 절차를 개시했다"고 명시했다.
이는 대우조선해양 인수 과정을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있다. 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이 발행하는 신주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인수를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산은은 대우조선해양 주식을 한 주도 매각하지 않는다. 유상 증자를 통해 대우조선해양에 신규 자금이 유입되므로 투자 유치가 더 적절한 표현인 셈이다.
대우조선해양은 한화그룹 대상으로 하는 제3자배정 증자를 통해 신주 1억443만8643주를 발행한다. 증자 규모는 총 2조원에 달한다. 신주 발행가는 주당 1만9150원으로 인수 추진 시점의 기준주가(지난 1개월간·1주일간·최근일 가중산술평균주가의 평균)에서 9.82% 할인된 가격이다. 현재 대우조선해양 주가가 1만8500~1만8700원대인 점을 고려하면 할인 효과는 사라졌다.
유상증자로 주식 수가 늘어나므로 주당 가치는 하락하게 된다. 대우조선해양이 발행하는 신주 규모는 현재 유통되는 주식수와 맞먹는 양이다. 지난 3분기 대우조선해양의 유통주식수는 1억727만4462주다.
신주 발행으로 주식 수가 증가함에 따라 산은의 지분율은 기존 55.7%에서 28.2%로 낮아진다. 유상 증자에 참여한 한화그룹은 지분 49.3%를 확보해 대우조선해양 1대 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산은은 한화그룹에 이어 2대 주주가 된다.
산은과 한화그룹이 이 같은 방식으로 본계약을 체결한 건 대우조선해양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서다. 만약 한화그룹이 산은의 대우조선해양 주식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인수가 추진됐다면 대우조선해양에 새롭게 유입되는 자금은 없다.
대우조선해양은 현재 자금 수혈이 절실한 상황이다. 대우조선해양의 지난 3분기 연결 기준 결손금은 2조2735억원에 달한다. 이는 작년 말대비 127.1% 증가한 수치다. 1년 내 상환해야 하는 단기차입금도 1조4116억원으로 작년말 대비 24.1%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헐값에 인수했다고 일각에서 이야기하지만 재무구조 상태를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며 "이번 증자를 통한 자금수혈 외에도 재무 개선을 위해선 그룹 차원의 꾸준한 뒷받침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금 회수 어떻게?
2대 주주 산은의 다음 과제는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그동안 투입했던 자금을 회수하는 일이다. 산은이 대우조선해양에 투입한 신규 자금(한도 대출, 출자 전환 포함)은 4조500억원이다.
산은은 대우조선해양이 정상화에 성공해 주가가 올라가면 투자 회수에 나설 계획이다. 산은 측은 대우조선해양 주가가 4만원대에 도달하면 그간 투입한 신규 자금 일부를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있다. 강석훈 산은 회장은 지난 9월 기자 간담회에서 "(대우조선 주가가) 4만원 근방으로 올라가면 투입한 금액의 상당 부분을 회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이 보유한 주식수(5973만8211주)를 주당 4만원에 매각하면 2조3000억원 가량을 남길 수 있다. 이는 산은이 출자 전환한 2조1000억원을 회수하고 2000억원의 차익을 남길 수 있는 수준이다.
나머지 대출금 1조9500억원은 대우조선해양이 향후 산은에 갚아나가야 할 돈이다. 이 대출금엔 한도 대출 등 다양한 금융상품이 포함돼있다. 대우조선해양의 기업 정상화가 빨라질수록 산은의 자금 회수 시점도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산은 관계자는 "이 대출금엔 한도대출이 포함됐기 때문에 대우조선해양이 1조9500억원을 다 갚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며 "이 대출금엔 한도대출, RG(선수금 환급보증), LC(신용증) 등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산은, 영향력 행사할까
산은은 2대 주주로서 대우조선해양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사외 이사 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빠른 자금 회수를 위해 2대 주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강 회장은 "한화그룹의 의사를 존중할 예정"이라면서도 "산은 지분이 28%대에 이르게 되기 때문에 사외 이사를 파견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 3분기 기준 대우조선해양은 사내이사 3명, 사외이사 4명 등 총 7명이다. 사외이사엔 산은 측 인물이 포함돼 있지 않다. 현재 정관상 대우조선해양 이사는 최대 9명(정관 제34조)까지 선임이 가능하다.
이사 선임에 대한 문턱도 낮춘 상태다. 대우조선해양은 작년 3월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사내 이사임기는 3년 이내, 사외이사 임기는 2년 이내로(제36조 1항) 변경했다. 기존엔 사외 이사 임기 3년, 사외 이사 임기 2년으로 보장적 성격이 강했다. 여건만 갖춰진다면 산은 측 사외 이사가 언제든지 선임될 수 있는 셈이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과거 임기를 보장하는 차원이 강했지만 이번 정관 변경을 통해 이사의 임기를 특정하지 않기로 했다"며 "경영 환경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산은 측의 이사회 진입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다. 산은 관계자는 "아직 해외 경쟁당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하고 증자도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외이사 진입을 거론하는 건 이르다"면서 "사외이사를 진입하더라도 완전히 인수 과정이 마친 시점 이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