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심사기간을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예상됐던 결과죠.
유럽에 기반을 둔 항공사를 위협할만한 합병 건이 아니고, 또 추후 EU 내에서도 항공사 간 합병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무리해서 반대표를 던질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곧장 승인하기에는 좀 더 따져봐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두 달 전 미국도 시간을 더 갖자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항공사 합병 추가심사 단계까지 넘어간 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건이 처음인데요. 경쟁당국이 타국적 항공사 합병을 승인한 최초의 사례로 남을 수 있는 만큼 신중을 기하는 모습입니다.
독과점 우려 노선, 외항사에 운항권 일부 넘길듯
EU와 미국이 심사숙고하는 부분은 '독과점 노선'입니다. 양사 합병 시 특정 노선 점유율이 50%에서 많게는 100%까지 오르게 됩니다. 이럴 경우 항공권 가격 인상 등 소비자 편익이 줄어들 여지가 생길 수 있습니다. 직항 노선이 걸립니다. 미국에서는 인천발 뉴욕·LA·시애틀·호놀룰루·샌프란시스코 노선이, EU에서는 파리·로마·프랑크푸르트·바르셀로나가 해당됩니다.
LA와 파리 노선은 국내 신생 항공사인 에어프레미아에 특정 시간대 운항 권한(슬롯)을 넘기는 걸로 정리됐습니다. 뉴욕은 대한항공이 굳이 나서지 않아도 항공사들이 서로 들어오려고 노리는 노선입니다. 애써서 대안을 찾지 않아도 되는 거죠. 호놀룰루, 샌프란시스코, 로마, 프랑크푸르트는 경쟁 항공사가 들어와 있는 상태입니다.
인천~시애틀과 인천~바르셀로나가 남았습니다. 일각에서는 이 두 노선을 주목합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두 노선 점유율은 100%에 달합니다. 그런데 수요는 비교적 많지 않습니다. 반면 운항 거리는 먼 축에 속합니다. 다시 말해 항공사 입장에선 효율이 좋은 노선이 아니라는 건데요.
이상적인 방안은 국내 다른 항공사에게 슬롯을 넘기는 겁니다. 하지만 장거리 운항 가능 비행기는 한정적이고, 팬데믹 기간 이미 큰 규모의 적자를 봤던 국내 다른 항공사가 쉽게 나설 것 같지 않다는 게 업계의 시각입니다.
대안으로 외항사가 거론됩니다. 앞서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통합 후 점유율 100%가 점쳐지던 인천~런던 노선의 슬롯을 외항사에 넘기기로 결정한 바 있습니다. 대한항공은 영국 경쟁당국 시정조치 요청에 따라 아시아나항공이 갖고 있던 해당노선 슬롯 7개를 영국 버진애틀랜틱에 넘기는 방안을 택했습니다.
최근 외항사들도 동아시아 시장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2024년 항공 여객수가 40억명에 도달해 2019년 대비 3% 증가한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 특히 동아시아 여행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봤습니다. 외항사 입장에서는 동아시아 허브공항 격인 인천공항에 취항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거죠. 물론 여력이 된다는 조건에서요.
슬롯을 외항사에 내주면 국내 항공사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하지만 외항사가 그 슬롯을 받고도 운항하지 않을 가능성, 다른 대안을 찾기에는 시간적 제약이 있다는 점 등을 미뤄보아 대한항공의 유일한 선택지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이 같은 이유로 대한항공이 시애틀과 바르셀로나 노선 슬롯도 런던과 마찬가지로 외항사에게 일부 내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습니다. 시애틀의 경우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슬롯 2개를 내주는 방안이 유력합니다.
통상 영국과 EU의 기업 합병 승인은 비슷한 기준 하에 진행된다고 합니다. 미국도 마찬가지고요. 영국은 버진애틀랜틱에 슬롯을 넘겨준 시정조치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분위기입니다. 자국 항공사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을 마다할리 없겠죠.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겠다고 발표한 지 벌써 2년이 넘었습니다. 그사이 아시아나항공 재무구조는 악화됐습니다. 시간을 끌수록 더 힘들어져 갈 뿐입니다. EU와 미국에서 승인 답변이 빨리 나오면, 연내 양사 합병이 가능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대한항공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얼마나 작동하는지 주목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