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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삼성 신경영' 정신, 2023년 돌이켜보니

  • 2023.10.18(수) 15:38

이건희 선대회장 3주기 맞아 '신경영' 재조명
초심 되찾아 위기 극복·미래 준비 의지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18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사진=백유진 기자 byj@

"과거 10년간 우리 삼성이 너무 놀았다. 너무 엉망이다. 마누라, 자식만 남기고 다 바꾸자."

삼성이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 3주기를 맞아 선대회장의 업적을 재조명하며 추모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이 선대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당시 이 선대회장은 양(量)이 아닌 '질(質)'을 추구하는 경영 방침을 내세우며 변화와 혁신을 강조했다.

삼성은 이런 신경영 정신을 재조명해 초심을 되찾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해 미래 준비에 속도를 내겠다는 목표다.

'글로벌 삼성' 이끈 비결

18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는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한국경영학회가 주최하고 삼성글로벌리서치가 후원했다.

김황식 호암재단 이사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이건희 선대회장은 물량을 확보하고 공급하기에 급급했던 기업 구성원들에게 '질'을 높이는 것만이 생존을 담보한다고 말하며 손수 앞장섰다"며 "이를 시작으로 삼성은 사고방식에서 시작해 각종 제도와 경영방식에 이르기까지 기업의 모든 요소를 신경영의 정신에 맞추어 재정비하는 대대적 혁신을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선대회장은 기업이 가진 인재와 기술을 중심으로 국가 사회가 처한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며 "신경영 정신 재조명을 통해 한국 기업의 미래 준비에 이정표를 제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국제학술대회에는 경영·경제·인문·인권 분야 석학들이 연사로 참여했다. 기조연설은 '이건희 경영학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로저 마틴 토론토대 경영대학원 명예교수가 맡았다.

18일 삼성 서초사옥에서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됐다./사진=삼성전자

마틴 명예교수는 이 선대회장을 '전략 이론가'와 '통합적 사상가'라고 평가했다. 미래에 대한 상상력과 통찰력을 보유했을 뿐 아니라, 통합적 사고에 기반해 창의적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췄다는 의미다.

마틴 명예교수는 '과학'의 경우 사물의 본성이 변화하지 않는 세상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데이터'를 활용하지만, '경영'은 예측할 수 없는 고객을 대상으로 하므로 미래의 진실이 될 '상상'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틴 명예교수는 "경영은 현재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기 때문에 진실을 바탕으로 구상하는 것은 제한적"이라며 "현재 진실이 아니어도 미래에 진실이 될 것을 파악해 이를 바탕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선대회장의 신경영 전략에 대해 "이 선대회장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관련 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친 대단한 전략적 이론가"라며 "30년 전에는 아무도 이런 생각을 가졌던 사람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래픽=비즈워치

이와 함께 양자택일 결정에 놓인 상황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이 선대회장이 통합적 사상가의 면모도 갖췄다고 진단했다. 통합적 사고란 상반되는 모델들의 갈등 속에서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선택하는 대신, 개별 모델들의 요소를 포함하면서도 새로운 모델의 형태로 우수한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뜻한다.

마틴 명예교수는 "이 선대회장은 전략 이론가, 통합적 사상자의 면모를 지닌 훌륭한 리더였다"며 "이것이 삼성이 큰 성과를 낼 수 있던 이유"라고 언급했다.

스콧 스턴 MIT 경영대 교수는 이 선대회장이 '가능성을 넘어선 창조' 능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휴대폰 시장에서 스마트폰으로의 전환을 통해 글로벌 선두업체의 입지를 다진 것, 후발주자로 뛰어든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브라운관 대신 LCD(액정표시장치)로 빠르게 사업을 전환한 것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스턴 교수의 분석이다.

스턴 교수는 "기술과 디자인을 통한 혁신에 대한 독특하고 고유한 접근 방식이 수십 년 동안 삼성이 이뤄낸 성공의 핵심 요소"라며 "단순히 품질뿐만 아니라 가능성 이상을 보고 한계를 극복,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비결"이라고 말했다.

삼성이 찾아야 할 '초심'은

이날 연사들은 삼성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올해 삼성전자는 반도체 한파 영향으로 역대급 위기를 맞았다. 올 1분기에는 2009년 1분기 이후 14년 만에 1조원 이하의 분기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1993년 위기를 극복했던 신경영 정신으로 초심을 찾고 미래를 위한 도약이 필요한 상황이다.

마틴 명예교수는 향후 삼성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직원들의 행복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회사가 규모를 키울수록 직원들은 본인을 회사에 소속된 작은 나사 하나 정도로 느끼게 된다"며 "직원의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규모에서 오는 장점을 누릴 수 없다"고 짚었다.

이 밖에도 '선택과 집중'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마틴 명예교수는 "삼성이 더 커지고 더 성공할수록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주력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자원이 많아질수록 여력이 커지지만, 할 수 있는 모든 산업에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중에서도 무엇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8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로저 마틴 토론토대 경영대학원 명예교수가 인터뷰 하고 있다./사진=백유진 기자 byj@

스턴 교수는 삼성이 열린 자세로 역발상적인 사고를 수용하며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지속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스턴 교수는 "역발상적인 사고가 현상 유지를 방해해도 이를 수용할 용기가 필요하고, 이런 선경지명이 머리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현실화하는 역량도 강화해야 한다"며 "소비자 선호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혁신을 장려하는 문화가 필요하며, 잠재적 혁신이 현실로 이뤄질 수 있도록 실패를 장려하는 문화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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