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이노텍이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 박람회 'CES 2024'를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열린 전시 기간 동안 6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LG이노텍 부스를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는데요. 이는 지난해 CES에 첫 참가했을 때보다 3배 정도 늘어난 수치라고 합니다.
LG이노텍이 이런 희소식을 알린 지난 15일, 금융감독원 전자정보공시시스템을 통해서는 다소 우울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작년 대비 영업이익이 30% 이상 급감하며 공시 의무가 생긴 것인데요.
아이폰15 부진에 '휘청'
LG이노텍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연결 기준 8308억원에 그쳤습니다. 매출은 전년보다 5.2% 증가한 20조6053억원을 기록했지만, 수익성은 떨어졌습니다. 전년 대비 34.7% 감소한 수준이고요. LG이노텍의 영업이익이 1조원 밑으로 떨어진 것은 지난 2020년 이후 처음입니다.
급성장이 기대됐던 지난 4분기도 시장의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한 모습입니다. 4분기 LG이노텍의 영업이익은 4837억원으로 전년 동기 1690억원에 비하면 큰 폭으로 성장했지만, 증권사 컨센서스(추정치)인 4915억원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4분기 실적 부진은 LG이노텍에 다소 뼈 아픈데요. LG이노텍의 주요 고객사는 애플입니다. LG이노텍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애플로부터의 매출은 9조8445억원으로 전체 매출(13조467억원)의 75.5%에 달하죠.
특히 LG이노텍은 이번 아이폰15 시리즈에 카메라 모듈뿐 아니라 아이폰15 프로맥스 모델에만 새로 탑재된 신형 폴디드줌 카메라 모듈을 독점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아이폰15의 판매량이 LG이노텍의 실적과 직결된 셈이죠.
그런데 LG이노텍은 지난해 3분기 아이폰15 시리즈용 부품 초도물량 공급 과정에서 차질을 빚었습니다. 그 탓에 아이폰15에 공급되는 물량이 3분기에서 4분기로 이월됐죠. 3분기 다소 부진한 실적을 냈지만, 4분기가 기대됐던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아이폰15가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면서 LG이노텍은 4분기에도 웃지 못했는데요. 애플이 주요 시장인 중국에서 고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아이폰의 생산 기지이자, 본토인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인데요. 지난해 3분기 기준 애플의 중국 시장 매출은 150억8000만 달러(약 20조2000억원)로, 전체 매출(894억9800만 달러, 약 119조9000억원) 대비 17%에 달합니다.
하지만 최근 중국에서 미국의 수출 규제 강화에 따른 '애국 소비' 움직임이 나타나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자국 브랜드인 화웨이가 애국소비 열풍의 주역으로 떠오르며 급부상했고, 반대로 애플의 위상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이죠. 이에 애플은 아이폰15 시리즈의 가격을 6~8% 내리는, 이례적인 할인 행사까지 진행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그간 LG이노텍은 애플의 의존도가 높다는 지적을 받아왔는데요. 애플의 신작 흥행 여부에 따라 회사 전체의 실적이 휘청이는 이런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이었겠죠.
모바일 벗어나 전장으로
이에 LG이노텍은 최근 전장(자동차 전자 부품) 사업을 주력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LG이노텍이 노리는 것은 '자율주행차'입니다. LG이노텍은 '자율주행 센싱 솔루션을 글로벌 1등 사업으로 육성하겠다'고 선포한 바 있는데요.
LG이노텍은 CES 2024에서도 자율주행차 관련 부품 라인업을 다양하게 전시했습니다. 광학 기술 노하우를 모빌리티 분야로 확대 적용한 자율주행용 카메라 모듈, 레이더, LiDAR(라이더) 등이 대표적이죠.
특히 부스 중앙에는 자율주행차 목업(Mockup)을 전시해 눈길을 끌었는데요. 여기에는 LG이노텍이 개발한 미래 모빌리티 핵심 전장부품 18종은 실제와 동일한 위치에 탑재돼 있었습니다.
CES 현장에서 기자들을 만난 문혁수 LG이노텍 대표는 "LG이노텍은 모바일에서 카메라만을 하는 게 아니라 모바일에서 전장으로 넘어가는 중"이라며 "사업 하나만 하는 회사가 아니라 산업의 변화에 들어가는 부품을 해, 고객을 승자로 만드는 부품 회사"라고 설명했습니다.
전장 사업은 모바일 사업에 비해 호흡이 긴 만큼, LG이노텍도 긴 시간을 공들일 계획인데요. 문 대표는 "제품 수주하고 개발하는 데 3년이 걸리고 양산에 들어가면 5~7년 걸리는 게 전장 사업"이라며 "10년 정도로 호흡이 길어 규모 있게 키우는 사업은 2027~2028년이 돼야 모이고 내년에는 아마 과거에 뿌린 씨앗의 성과가 조금씩 나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전장 사업이 말 그대로 '미래'를 위한 사업이다 보니 단기적인 실적 부진은 피할 수 없어 보입니다. 문 대표도 올해 실적에 대해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는데요.
그는 "올해는 작년보다 조금 성장하는 정도로 목표를 잡았지만 사실은 올해가 작년보다 시장 자체가 더 어렵다"며 "온디바이스 AI로 PC나 스마트폰 시장이 경기 대비 고성장한다면 같이 성장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작년만큼 힘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상황에서도 지속 성장을 이끌어내겠다"고 강조했죠.
또 애플 의존도가 높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코로나 시기에 광학솔루션사업 비중이 크게 늘어 다른 사업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어 보이는 거지, 다른 사업도 같은 비중으로 늘고 있다"며 "스마트폰은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에 2~3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애플과의 관계가 소홀해진다는 것은 아닙니다. 문 대표는 "북미 고객(애플)을 줄이는 게 아니라 다른 사업의 비중이 늘어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부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