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법적 제동을 걸었습니다. 75년 동업 가문의 경영권 갈등이 이번엔 소송전 국면으로 격화된 모양새입니다. 배당 및 정관변경을 두고 주주총회서 표 대결을 펼친 지 불과 하루 만에 소송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최씨 일가와 장씨 일가 간 갈등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영풍이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은 고려아연과 해외 합작법인 HMG글로벌 간 유상증자건입니다. 유상증자로 지분율이 희석되면서 기존 주주가 손해를 보게 됐다는 논리인데요. 결국은 지분경쟁이 트리거가 된 셈입니다.
업계는 HMG글로벌을 대상으로 한 유상증자에 따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일가 지분(우호 지분 포함)이 장형진 영푼 고문 일가 지분을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022년 6월에만 해도 장 고문 측 지분이 2배 가량 높았는데요. HMG글로벌 지분 약 5%를 최 회장 측 우호 지분으로 분류하게 되면 약 32% 수준으로 장 고문 측 지분을 1%가량 웃돌게 됩니다.
'해외 합작법인' 해석 놓고 대립
영풍은 지난해 9월 이뤄진 양사 간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대한 신주발행을 무효로 해달라는 취지의 소장을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했습니다.
당시 HMG글로벌이 5200억원을 투자, 고려아연 지분 5%를 인수한 게 주 내용입니다. 현대차그룹과 고려아연 간 '니켈 동맹'이 배경이 됐었죠. 양사는 전기차 배터리 핵심소재 사업제휴 업무협약을 맺은 데 이어 지분 인수에도 합의하며 끈끈한 동맹을 맺었는데요. 참고로 HMG글로벌은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가 공동투자해 설립한 해외 합작법인입니다.
우선 살펴봐야 할 것은 정관 내용입니다. 현행 고려아연의 정관 규정에 따르면, 기존 주주가 아닌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신주를 발행할 경우 △경영상 필요가 있을 것 △발행대상은 외국의 합작법인일 것 등을 요건으로 합니다.
영풍 측은 '해외 합작법인' 개념에 HMG글로벌이 속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고려아연 정관에 규정된 '외국의 합작법인'은 고려아연이 당사자로 참여한 합작투자 계약에 따라 설립한 합작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는 겁니다.
영풍 관계자는 "상법상 신주발행은 특별한 신사업 및 기술제휴 등에 한해 상당히 보수적으로 진행된다"며 "정관에 '해외 합작법인'을 적시한 까닭은 국내 법인을 대상으로 신주발행을 제한하겠다는 뜻인데 국내 기업의 해외 계열사에 신주발행을 진행하는 것은 사실상 해당 조항이 무의미하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고려아연은 절차상 문제될 것이 없다며 반박에 나섰습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정관 내 '해외 합작법인' 의미를 임의로 해석하는 것은 오히려 영풍 측"이라며 "HMG글로벌에 대한 제3자배정은 회사의 합리적인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고 상법 등 관련 법규와 회사의 정관을 토대로 경영상 목적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거쳐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영풍의 뒤늦은 움직임, 묘수일까 악수일까
정관 해석 외에도 살펴봐야 할 부분은 또 있습니다. '시점'의 문제입니다. 해당 안건을 결의하기 위한 고려아연 이사회가 열린 때는 지난해 8월 30일, 신주납입이 이뤄진 때는 지난해 9월 13일입니다.
고려아연 기타비상무이사를 맡고 있는 장형진 영풍 고문은 지난해 8월 이사회에 불참했으나 안건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신주납입 이후엔 주식시장에 퍼진 흐름, 해당 투자금으로 고려아연이 진행한 사업 등을 원상 복구하는 데 들어갈 비용은 상당히 커지게 됩니다. 때문에 영풍이 소송을 제기한 시점이 지나치게 늦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아울러 최근 고려아연 주총에서 김우주 현대차 기획조정실 본부장이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됐는데요. 영풍 측이 해당 안건에 대해선 찬성표를 던지면서 앞뒤 맥락이 맞지 않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이에 업계 내에선 고려아연이 '외국 합작법인에게만 신주발행을 허용한다'는 정관을 삭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니, 영풍은 이것과도 연관해 법적 판단을 구해보자는 취지인 것 같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통상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가처분으로 제동장치를 걸어놓고 이후 본 소송으로 간다"며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상대측의 움직임을 축소·제한하기 위한 것이 주요 취지일 수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재계는 이번 소송이 양측 모두에게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법원 판단에 따라 경영권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될 것이란 관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