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했던 엔저 이슈가 다시 불거지며 증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달러 강세가 주춤한 가운데 엔화 대비 원화 강세가 심화되면서 수출주에 부담을 줄 것으로 우려되고 있는 것. 최근 이어진 코스피 랠리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일단 전문가들은 당국의 개입 경계감 등을 고려할 때 100엔당 900원선이 무너진 후에는 엔-원 환율의 추가 하락세가 제한될 것이란데 무게를 싣고 있다. 다만 30일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회의가 예정돼 있고, 증시에서 단기급등 우려가 나온 만큼 당분간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 엔-원 환율, 7년2개월래 최저..달러보다 엔 대비 절상폭 심화
전날(27일) 902원에서 장을 마쳤던 엔-원 재정환율은 28일 장중 899원으로 내려서며 900원선이 결국 붕괴됐다. 지난 2008년 2월 이후 7년2개월만이다.
한동안 엔저 이슈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 하다 이달 들어 다시 심화되고 있다. 달러 강세가 주춤해진 것도 있지만 엔화보다 원화의 달러대비 절상폭이 훨씬 더 커진 것도 크게 작용했다. 지난 3월13일부터 지난 24일까지 달러-원 환율은 4.4% 하락한 반면, 달러-엔 환율은 1.8% 하락에 그쳤다.(엔화 대비 원화 강세 심화)
원화의 상대적 강세에는 국내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외국인의 주식 순매수가 계속되고 있고 국내 무역수지 흑자폭 확대도 영향을 줬다. 둘 모두 당장 쉽게 꺾기는 힘든 요인이다.
▲ 엔-원 환율 추이(출처:NH투자증권) |
◇ 일본 기업 수출단가 인하 우려 높여..수출주에 부담
원화 강세가 외국인의 주식 매수와 경상수지 흑자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증시에는 수출주에 부담일 수밖에 없다. 한동안 원화 강세가 주춤하면서 1분기 실적에서 수출 기업들이 한숨 돌릴 수 있었던 만큼 역풍이 될 수 있다. 엔-원 환율 하락은 한국의 대일 수출뿐 아니라 일본과의 수출 경합도가 높기 때문에 제3국 수출에도 부정적이다.
아직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크게 하락하지 않고 있지만 지난 1분기 엔화 환산 일본의 수출 증가율(9.3%)은 한국의 원화 환산 수출 증가율(3.0%)를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안기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 업체들이 아직까지 수출 단가를 크게 낮추지 않고 있지만 가능성을 계속 열어둘 수 있다"며 "일본 기업들이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달러 표시 단가 인하에 나선다면 한국 수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하연 대신증권 연구원도 "엔화 약세로 수익성이 개선된 일본 기업이 수출품 단가를 낮추며 일본 수출품 가격 경쟁력이 개선되고 있고, 지난해 하반기 이후 일본 수출 물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최근 부진이 지속되는 국내 수출 물량과는 대조적"이라고 평가했다.
◇ 당국 추가 강세 제한?..30일 BOJ 회의 촉각
다만 전문가들은 엔화 약세가 현 수준에서도 부담이지만 추가로 심화될 것으로 보지는 않고 있다. 대외 여건 상 달러 약세가 심화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다 당국의 개입 경계감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안기태 연구원은 "한국은행이 올해 들어서는 엔 대비 원화 강세가 임계치에 왔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엔-원 환율을 바라보는 스탠스가 변했다"며 "100엔당 900원 수준에서는 하방경직성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 입장에서 수출 경쟁력 유지 등을 위해 엔-원 환율 800원선에서는 방어에 나설 수 있다"며 "그리스를 둘러싼 불확실성이나 중국 경기둔화가 지속되고 있는 점도 원화 추가 강세를 제약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오는 29~30일 예정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도 달러 추가약세를 이끌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큰 변수가 되지 못할 것으로 봤다.
반면 30일 예정된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회의는 일본의 추가 완화 가능성과 맞물려 시장도 예의주시할 전망이다. 최근 발표된 일본의 2월 근원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소비세 인상 효과를 제외할 때 0% 수준을 기록, 디플레이션 우려가 확산되면서 추가 통화완화 기대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