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ㅇㅇㅇ산업은 국내 시장도 작고 자본력도 취약하고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국가에서 육성할 사업이 아니다"
인터뷰를 시작한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은 대뜸 'ㅇㅇㅇ' 산업이 무엇인지 맞춰보라며 퀴즈를 냈다. 답은 바로 반도체다. 이 문구는 1980년대 일본 미쓰비시 연구소가 내놓은 '삼성 반도체 사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보고서의 결론이다.
권 회장은 "삼성이 1980년대 처음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아무도 이 시장에서 1등에 오를 것이라 예견한 사람은 없었다"며 "해봤는데 어려운 것과 어려울 것 같아서 하지 않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그가 자본시장 변화에 쏟는 노력의 이유를 명쾌하게 풀어냈다.
그러면서 이번엔 'ㅇㅇㅇ'에 금융투자를 넣어보자고 했다. 지금은 현실적으론 글로벌 경쟁력이 뒤처지고 자본력도 여전히 취약하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이 30~40년에 걸쳐 성장한 것처럼 금융투자산업도 못 할 이유가 없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여기에 가장 필요한 핵심은 '혁신'이다. 그는 실물경제 혁신을 위한 자본시장의 역할과 자본시장 발전을 위한 업계 내의 혁신을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자본시장 관련 정책이 꾸준히 언급된다. 모험자본 조달과 국민 노후 자산 증식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내세워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11월 금융당국이 비상장기업투자전문회사(BDC) 도입, 개인 전문투자자 확대, 사모펀드 규제 개편 등을 골자로 하는 자본시장 혁신과제를 내놓으면서 증권회사의 자금 중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물꼬를 텄다.
이어 국회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자본시장활성화특별위원회가 결성했고 자본시장 세제 개편, 퇴직연금 제도 개선, 차이니스월 폐지 등 다양한 이슈를 제기하고 제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 과정에서 금융투자협회는 금융투자업계 회원사와 머리를 맞대 토론한 결과와 자체적으로 연구한 결과를 정책당국과 국회에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권 회장은 이러한 활동을 '국가적 대타협'이라고 말했다. 다소 과장일 수 있는 표현을 거리낌 없이 쓴 데는 이유가 있었다.
우선 실물경제의 혁신을 위한 자본시장의 역할을 살펴봐야 한다. 특히 4차 산업 시대에선 혁신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가졌지만 투자금이 부족해 사업으로 실현하지 못하는 초기 기업이 많다. 이들이 자본시장을 활용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데 여기엔 기존 정책과 규제를 개선하는 작업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는 "4차 산업은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산업과 응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거나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산업과 이해관계 조정이라는 국가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본시장은 4차 산업을 뒷받침하는 모험자본 공급 역할을 하는 동시에 4차 산업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는 두가지 역할이 있기 때문에 최근의 이슈와 제도 개선 작업은 국가 사회적인 타협의 결과물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시장의 자금이 4차 산업을 포함한 실물 경제로 흘러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재 모든 이슈의 방향성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논의 중인 자본시장 과세체계 개편만 보더라도 손익 통산과 잔여 손실 이월공제를 허용해 투자자가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초기 기업 투자를 포함한 고위험 상품 가입에 불이익이 없도록 한다.
증권회사의 영업 규제를 완화해 사후적 원칙 중심 규제로 전환하기로 한 '차이니스월' 규제 폐지 역시 창의적인 투자상품과 서비스 마련으로 다양한 모험자본 투자를 늘리기 위함이다.
권 회장은 "자본시장 과세 체계 개편은 자본시장의 자금 흐름을 이끄는 중요한 인프라로 투자자 자산증식과 글로벌 자금 유치 등에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말했다. 또 "차이니스월 역시 자본시장과 관련한 천여개 규제 중 하나일 뿐이지만 핵심 영업 규제를 풀어 창의적인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게 한 것이라 막혀있는 혈을 뚫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자본시장이 발전한 유럽에선 원칙 중심 규제에서 더 나아가 결과 중심 규제로의 전환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을 정도로 규제 방식 전환은 글로벌 추세라고 설명했다.
다만 투자자 보호와 사고 방지를 위해 업계 자체적으로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협회 차원에서도 사장단이 참여하는 내부통제 혁신 협의체를 가동할 예정이다.
업계 내 혁신도 거듭 강조했다. 플레이어들의 자율성을 끌어올리는 자본시장 환경이 만들어지면 자체적인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그들의 몫이라는 설명이다.
권 회장은 "한국판 골드만삭스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라며 "실제 10년 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증권사 연결기준 자기자본이 2조대였고 골드만삭스가 78조원대였는데, 지금은 골드만삭스가 100조원인 반면 미래에셋대우 연결 자기자본이 15조로 올라섰다"고 설명했다.
증권회사가 자기자본 규모를 키우면서 국내외 다양한 투자를 진행하는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대체투자라고 통칭하고 있지만 초기 빌딩 투자에서 최근 태양전지, LNG 터미널, 항만, 통신 인프라 등 업계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로 영역을 넓히고 있고 글로벌 유망 기업 지분 투자 등 투자 방법을 다양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핀테크를 활용한 혁신 서비스 강화도 화두다. 각사가 고객 관리 차원에서 챗봇,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로보어드바이저 등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업계 차원에서는 각종 규제 업무를 기술을 이용해 자동화하는 레그테크(Reg-tech)를 실현하고 공유 빅데이터 풀(POOL)을 마련해 데이터 규모를 키우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금융투자업계도 이젠 글로벌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에 아시아 펀드패스포트를 넘어 동북아 금융허브로 도약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처럼 전자, 자동차, 조선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제조업 기반을 가진 나라는 많지 않기 때문에 해외 금융회사가 들어와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며 "실물 경제 기반이 강한 여건을 살려 주력 제조업과 K컬쳐와 같은 신산업 발전을 두축으로 자본시장 인프라를 만들어주면 충분히 승산 있다"고 내다봤다.
협회는 해외 자본 유치를 위한 인프라 구축을 위해 관련 세제 개편과 함께 역외펀드 등록과 관련 제도 변경 등을 검토하고 있다.
권 회장은 "일례로 역외펀드를 주도하는 국가를 보면 신탁형 펀드보다 회사형 펀드가 많은데 신탁형은 모펀드와 수십개의 하위 펀드에 대해 모두 공시하고 보고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이라며 "회사형 펀드 제도를 강화하면서 운용사는 운용에만 집중하고 회사형 펀드의 전반적인 관리는 전문관리회사에 위탁할 수 있도록 매니지먼트 컴퍼니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업계 내 플레이어 하나가 뒤처지는 것보다 함께 힘을 모아 같이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우선"이라며 "업계와 협회, 정책당국과 금융당국, 국회 등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계가 한층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혁신(革新). 묵은 제도나 관습, 조직이나 방식 등을 완전히 바꾼다는 의미다. 과거 한국 기업들은 치열한 변화를 통해 성장을 이어왔고, 유례를 찾기 힘든 역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성장공식은 이미 한계를 보이고 있다. 성장이 아닌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 비즈니스워치가 창간 6주년을 맞아 국내외 '혁신의 현장'을 찾아 나선 이유다. 산업의 변화부터 기업 내부의 작은 움직임까지 혁신의 영감을 주는 기회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새로운 해법을 만들어 내야 하는 시점. 그 시작은 '혁신의 실천'이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