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잠에 빠진 기업공개(IPO) 시장에 봄은 다시 찾아올까.
지난해 증시 보릿고개 속 상장 계획을 철회한 대어들을 포함해 재무적투자자들의 엑시트(투자금 회수) 요구에 직면한 기업들이 증시 입성에 다시 도전할지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전문가들은 당장 IPO가 활발해지긴 어려운 환경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만, 조심스럽게 하반기 부활을 점친다. 금리인상에 대한 불확실성이 완화되면서 공모주 시장도 온기를 되찾을 것이란 전망이다.
줄지어 상장 계획 미룬 대어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코스피, 코스닥 IPO 신규상장 건수는 총 135개로 전년 대비 2곳 더 적다.
특히 일반 기업의 신규 상장만 따로 살펴보면 감소폭이 더 크다. 작년에 상장한 스팩 수는 45개로 전년대비 20개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결국 스팩 상장을 제외하고 보면 신규 상장 기업 수는 2021년 112곳에서 2022년 90곳으로 감소한 셈이다.
금리인상 등 엄혹한 투자환경에 IPO 시장은 죽을 쒔다. 연초 현대엔지니어링을 시작으로 자람테크놀로지까지 총 13곳이 상장을 철회했다. 수요예측 단계에서 희망 공모가에 한참 못미치는 가치를 산정받자 아예 상장 레이스를 중단한 것이다.
작년 초 시장에서 거론되던 대어들도 연달아 상장 계획을 미뤘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LG CNS, SSG닷컴, 카카오모빌리티, CJ올리브영 등은 아예 거래소에 예비심사청구서를 제출하지도 않았다. 조 단위 대어들이 자취를 감추자 연간 공모금액 규모는 당초 예상됐던 30조원의 절반 수준인 16억원에 그쳤다.
IPO 투자심리, 하반기 재점화 관측
시장에서는 IPO 시장의 투자심리가 단기간 내 되살아날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현재 증시의 하방압력으로 작용 중인 긴축 기조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월가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5%대 초반까지 높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나승두 SK증권 연구원은 "자금조달 환경은 금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상장 직전 프리 IPO 단계에 있는 기업의 밸류에이션에 할인폭이 크게 적용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더욱이 IPO를 위한 1단계 허들인 거래소 예비심사 통과도 이전보다 까다로운 과제가 되고 있다. 경기불황의 폭풍우가 밀려오는 가운데 심사역들의 눈높이가 다소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비상장사 펀드를 운용하는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최근 기업들이 예비심사를 통과하고 상장한후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거래소에서도 부담을 느낄 것"이라며 "때문에 시장 추세를 감안해 좀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물가와 금리 등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하반기부터 조심스럽게 부활을 점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모주 가치 산정의 기준이 되는 피어그룹(이미 상장해있는 유사업종)의 주가가 올라가면 적정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경준 혁신IB자산운용 대표는 올해 6월을 시장 반등 시점으로 꼽았다. 이 대표는 "1분기 내 금리 인상이 마무리되고 3월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 제출 이후 옥석 가리기 작업이 이뤄질 것"이라며 "우량 기업 위주로 피어그룹의 주가가 되살아나면 작년 결산을 기반으로 5월부터 예심을 청구하는 곳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승두 연구원은 "금리가 계속 올라갈 것이라는 시각이 있어 올해도 녹록지않다"면서도 "경기가 3분기에 바닥을 찍는다고 가정하면 이보다 앞서 증시에선 반등세가 나타나며 IPO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나올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상장계획을 철회하거나 미뤘던 기업들이 다시 IPO를 재추진할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우선 지난해 거래소 예심을 통과한 기업들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컬리와 골프존카운티는 2월 말까지, 케이뱅크는 3월 말까지 상장 절차를 마쳐야 한다.
재무적투자자(FI)들의 엑시트 압박도 상장을 서두르게 하는 요인이다. 작년 8월 주관사 선정을 마친 11번가 역시 연내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민연금을 비롯해 새마을금고, 사모펀드 운용사인 H&Q코리아가 참여한 나일홀딩스 컨소시엄으로부터 500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하며 올해 9월 말까지 IPO를 완료하기로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