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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한국증시, 저평가 끝났다…이젠 재평가 시대 진입"

  • 2023.02.08(수) 14:00

정상진 한투운용 주식운용본부장 인터뷰
"규제 혁신과 사회 여론이 변화 이끌어"

금융당국이 국내 자본시장의 해묵은 과제인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제도 개선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코리아디스카운트란 통상 여러 가지 요인으로 한국 주식시장이 다른 나라 증시보다 저평가 받는 것을 의미한다.

당국의 행보는 최근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목표로 내세워 적극적인 주주활동을 벌이는 행동주의 펀드들의 움직임과 맞물려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시장 관계자들과 투자자들은 이런 모습에 반신반의하면서도 내심 이번에야말로 코리아디스카운트 완화에 따른 국내 증시 재평가를 바라는 눈치다.

정상진 한국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본부장/사진=한국투자신탁운용 제공

그렇다면 30년 가까이 금융투자업계에 몸 담으며 국내 증시 역사의 굴곡을 목격해온 베테랑 펀드 매니저의 생각은 어떨까. 지난 6일 비즈니스워치와 만난 정상진 한국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한국 증시가 저평가 받는 시대는 일단락됐다"며 "당국의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 노력과 사회적 여론의 변화 속에 한국 증시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 본부장은 1996년 대한투자신탁 입사로 금융투자업계에 발을 들인 뒤 CJ자산운용, 인피니티투자자문, 동부자산운용 등에서 펀드 매니저로 일했다. 2015년 한투운용으로 자리를 옮겨 2018년부터 주식운용본부를 이끌고 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 코리아디스카운트 어디부터 시작됐나

▲ 1980~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은 물론 신흥국 시장의 전반적인 밸류에이션(주식 가치)은 미국 시장보다 높았다. 1990년대 중반 미국이 정보통신혁명을 겪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에 1990년대 중반부터 코리아디스카운트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간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그때부터 지금까지 코리아디스카운트가 계속된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중심의 신흥국 장세가 펼쳐질 당시에는 국내 증시의 밸류에이션도 저렴하지 않았다. 

코리아디스카운트가 고착화된 건 2010년대부터라고 봐야 한다. 세계 경제와 증시의 주도권이 온전히 미국으로 이동하는 와중에 한국 기업이 주주환원에서 눈에 띄게 뒤처지면서다.

- 코리아디스카운트의 구체적인 배경은?

▲ 우선 한국 산업 사이클이 브릭스 시절 제조업 수출 중심에서 바이오와 같은 기술집약적 산업과 서비스 산업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가지 못한 영향이 크다. 전 세계 경제 여건이 나빠지면서 뜻대로 변화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이보다 더 큰 이유는 소액주주가 아닌 대주주 중심의 경영활동이 계속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대주주를 견제하고 통제할 제도가 필요한데, 2010년 중반부터 국내 증시 제도는 세계적인 흐름과 동떨어진 상황이다. 이는 소액주주 소외를 심화시키면서 코리아디스카운트를 부추겼다.

- 코리아디스카운트의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면?

▲ 당장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의 사례가 있다. 2차전지 산업의 성장성을 보고 LG화학 주식을 샀던 투자자들은 배터리사업부만 떼어내(물적분할) 만든 LG엔솔이 상장하면서 허탈한 상황에 처했다. 

주주보호 측면에서 이 같은 문어발식 상장은 안된다. 구글이 과거 지주회사인 알파벳을 상장하면서 기존 자회사들을 모두 상장폐지한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그렇다면 한국 기업의 소액주주권 보호 수준은

▲ 배당성향과 자사주 매입 성향을 합산한 주주환원율로 살펴보자.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10년 평균 주주환원율은 고작 28%에 불과하다. 미국이 89%, 아세안 평균이 50%대 중반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하물며 중국도 32%로 우리나라보다 높다. 

소액주주 보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미국은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주주환원율이 50~60%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80~90%대로, 특정 연도에는 영업이익보다 주주환원 규모가 더 큰 경우도 종종 있다.

미국이 이처럼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주환원에 적극적인 것은 지난 2004년 구글이 뉴욕증시 상장 과정에서 차등의결권(복수의결권)을 도입하며 소액주주들에게 반대급부로 대규모 주주환원정책을 펼친 것이 계기가 됐다. 이 같은 주주환원 확대 트렌드는 미국 증시의 상승동력으로 작용했다.

또한 기업의 경영성과를 소액주주들과 나눈다는 개념, 이게 바로 증시에서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라 할 수 있다. 

- 당국이 추진하는 배당 지급 관행 개선에 대한 생각은

▲ 큰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지만 일단 개선안 자체는 긍정적이다. 이 정책이 다는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현 정부 출범 후 내놨던 방안들이 현실화되는 게 중요하다. 

- 변동성 완화 위한 파생상품시장 조기 개장은 어떻게 보는지

▲ 예전 차익거래가 활발할 때만 해도 효과가 있었을지 모르나 현재 침체된 파생상품시장의 상황을 고려하면 실효성은 떨어진다고 본다. 지금은 소액주주권과 시장 제도 전반을 더 살필 때가 아닌가 한다.

- 물적분할시 투자자 피해 방지에 대한 생각은

▲ 긍정적이다. 미국 시장을 보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들의 주식 발행물량과 환수 물량을 비교하면 매년 마이너스(-)다. 수요보다 공급이 적으면 가격(주가)은 올라간다. 시장 스스로 주가 관리를 하는 셈이다.

LG엔솔의 사례를 다시 들겠다. 이 회사는 상장 당시 코스피 시가총액의 7%를 홀로 차지했다. 이 정도 규모가 되는 종목이라면 패시브 펀드나 국민연금 등의 연기금, 외부 자금을 굴리는 자산운용사들이 일정 수준의 투자 비중을 무조건 가져가야 한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다른 대형주를 팔아서라도 말이다. 이는 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다.

물적분할은 코리아디스카운트를 부추기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한데, 분할 시 모자회사 중 하나는 상장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국내 증시는 기업 자금 조달을 우선시해 상장폐지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국가 산업 발전, 고용 창출을 중시하던 'IT 버블' 때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불과 7~8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국민의 가계금융자산 내 주식투자 비중은 15%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21%가량 된다. 빈부 고착화 속에서 그나마 중산층 이하 국민이 자산을 불릴 수 있는 수단이 주식이다. 따라서 기업의 자금 조달보단 국민(투자자)의 부 축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상진 한국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본부장/사진=한국투자신탁운용 제공

- 당국이 추진 중인 의무공개매수는 어떻게 보는지

▲ 전 세계적으로 대주주 지분을 인수할 때 의무공개매수를 안 해도 되는 곳은 한국과 미국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은 알아서 소액주주 지분을 사주는 문화가 보편화돼 있다. 결국 한국만 소액주주를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당국이 제안한 '50%+1주'만 시행해도 괜찮다고 본다. 이를 통해 주주환원율을 50~60%대로 만들 수만 있다면 어마어마한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한국형 지배구조 문제 중 하나로 지목되는 세제에 대한 생각은

▲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우리나라의 상속세와 증여세, 배당소득 종합과세 등은 대주주 숨통을 터주는 방향으로 조정해도 되지 않을까 한다.(현재 국내 상속세율은 최대 60%로 OECD 최고 수준) 경영권 승계 등의 문제는 아시아 기업들의 문화적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은 만큼 아예 무시할 순 없다.

다만 세제 관련 규제는 완화하되 대주주의 사적 이익 편취 등에 대한 규제와 처벌은 더 엄격해져야 한다. 그래야 소액주주들도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

- 국민연금 고갈론으로 불거진 연금개혁에 대한 생각은

▲ 국민연금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일각에서 말하는 (국민연금) 폐지론은 답이 될 수 없다. 그보단 자산배분 의사결정을 장기적으로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국민연금의 거대한 몸집을 고려하면 단기적으로 벤치마크 대비 초과수익을 올리기 쉽지 않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수익률을 개선하고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가야 한다. 

- 행동주의펀드들의 활동은 어떻게 보나

▲ 한국 자본주의 시장은 바뀌어야 한다. 기업들이 곳간에 돈을 쌓아두는 시대는 지났다. 기업에 투자하는 개미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공유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행동주의펀드들은 변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행동주의펀드들의 적극적인 활동에 힘입어 점차 더 많은 기관투자자들이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뛰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아울러 기업들은 지금껏 주주들에게 나눴던 이익을 자사 직원과 지역사회, 거래처, 고객 등에 공유해야 한다. 이게 바로 장기 성장으로 가는 길이자 진정한 ESG 실현이다.
 
-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최근 가속화하는 당국의 규제 혁신과 행동주의 펀드를 필두로 한 주주권리 강화 흐름을 고려하면 국내 증시의 언더퍼폼(underperform·시장수익률 하회)은 끝났다고 본다. 다시 말해 리레이팅(rerating·재평가)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이제 소액주주들이 가진 주식 가치 역시 재평가의 출발점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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