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긴축 강도를 높이겠다는 뜻을 시사하면서 미국 주식시장이 다시 공포에 휩싸였다. 당장 이달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투자심리가 급격히 얼어붙는 모습이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연준의 통화정책과 경제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증시 변동성 역시 확대될 소지가 크다고 보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선 단기적인 증시 변동성 확대에 대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긴축이 장기화하면서 은행주는 거센 후폭풍을 맞는 모습이다. 중소형 은행을 중심으로 유동성 우려가 불거지면서 은행주가 동반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파월 "금리 인상 속도 높일 준비 돼 있다"
연준의 긴축 강화 행보 전망에 방점을 찍은 것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발언이다.
파월 의장은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서 "최근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강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는 최종 금리 수준이 이전 전망보다 높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표에 따라 더 빠른 긴축이 필요하다면 금리 인상의 속도를 높일 준비가 돼 있다"고 전했다.
시장에선 그의 발언을 두고 3월 FOMC에서 기존 금리 인상 예상치(0.25%포인트)보다 더 큰 폭(0.5%포인트)으로 금리를 높일 여지를 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다음날 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선 시장의 충격을 의식한 듯 "아직 3월 (FOMC) 회의와 관련해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고 말했으나 필요시 인상 수준을 높이겠다는 의사는 재확인했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유효한 듯했던 연준의 통화정책 기조 전환(피봇·Pivot) 기대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연준의 통화정책 전망을 빠르게 반영하는 미국 국채 2년물 금리는 2007년 이후 16년 만에 5%대를 돌파했다.
시장에선 연준이 이달 빅스텝을 밟는 데 이어 5~6월 FOMC에서도 금리를 올려 최종 금리를 5.75%까지 높일 수도 있다고도 보고 있다. 릭 라이더 블랙록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연준이 경기를 둔화시키고 인플레이션을 2% 가까이 낮추기 위해 금리를 6%로 올린 뒤 장기간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고 관측했다.
다음 주 나올 소비자물가와 생산자물가·소매판매, 산업생산 지표는 연준의 통화정책과 시장 분위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에 발표되는 경제지표에 따라 금리 인상폭이 결정될 가능성이 큰 만큼 증시는 '좋은 지표는 나쁘게(Good is Bad)', '나쁜 지표는 좋게(Bad is Good)' 해석할 것"이라며 "연준 정책과 미국 경기 사이클 전망에 대한 시장 참여자들의 의견이 크게 갈릴 경우 증시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은행주, 긴축 장기화 '후폭풍'
연준의 긴축이 그 끝을 알 수 없게 계속되면서 미국 중소형 은행들을 중심으로 유동성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형국이다. 특히 금리 인상으로 채권 가격이 폭락한 데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실리콘밸리 테크기업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미국의 실리콘밸리뱅크(SVB)를 보유한 SVB 파이낸셜 그룹은 지난 9일 예금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자산을 매각해 18억달러에 이르는 손실을 입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유상증자를 실시, 22억5000만달러(약 3조원)을 조달한다고 전했다.
SVB는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테크기업들의 호황에 힘입어 대폭 늘어난 자산과 예금을 미국 국채와 미국 정부 보증 채권에 투자했으나 지난해부터 연준이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보유 채권 가치가 폭락한 상태다. 게다가 테크 기업들이 불황 여파로 예치한 예금을 잇달아 인출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보다 하루 앞서 10대 암호화폐 전문은행 중 하나인 실버게이트 캐피털도 암호화폐 시장 폭락으로 예금 인출 사태가 발생하자 대규모 손실을 감수하고 산하 중소형 지역 은행인 실버게이트 은행을 자발적으로 청산하기로 했다.
잇따른 악재 속에 은행주에 대한 투자심리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지난 9일 SVB 파이낸셜 그룹 주가는 하루 만에 60% 넘게 폭락했고, SVB 사태가 전체 은행권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JP모건체이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 씨티그룹 등도 4~6%대의 하락세를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SVB와 실버게이트 사례에 대해 과도한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견해다. 모승규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며 은행권에서 앞으로 연체율 상승이나 건전성 이슈가 부각될 것"이라면서도 "경기 둔화 흐름에도 전반적으로 견조한 미국 경기를 고려할 때 대형 크레딧 이벤트 가능성은 아직 제한적"이라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