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펀드와 소액주주들의 주주권 행사가 활발해지며 시장의 관심을 모았던 주주제안 안건들이 잇달아 부결되고 있다. 회사가 거부한 안건을 가처분 소송 승소로 되돌려놓은 주주제안마저 주총을 통과하지 못한 사례도 여럿이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8일 열린 KT&G 정기주주총회는 행동주의펀드의 패배로 끝났다.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와 안다자산운용이 제안한 안건 18건 중 분기배당 신설을 제외한 17건이 부결·폐기됐다.
회사 측과 행동주의펀드가 첨예하게 대립한 현금배당 증액과 사외이사 선임·증원 안건이 모두 주총 문턱을 넘지 못했다. 현금배당은 FCP와 안다자산운용이 각각 요구한 1만원과 7857원 안이 모두 고배를 마시며 이사회 측이 올린 5000원으로 결정됐다.
사외이사 정원을 6명에서 8명으로 늘리는 안다자산운용의 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행동주의펀드의 이사회 진입도 불발됐다. 현 이사회가 추천한 김명철, 고윤성 등 사외이사 후보들은 모두 재선임된 반면, FCP가 제안한 차석용 전 LG생활건강 대표이사 등은 모두 부결됐다. 이외 자사주 소각 결정 권한을 확대하는 정관 변경, 자사주 취득 등 주주제안 안건도 충분한 표를 얻지 못했다.
KT&G 지분 7.08%를 가진 최대주주 국민연금이 일찍이 이사회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행동주의펀드의 패색이 짙어진 가운데 이처럼 '완패'를 하면서 주가는 이날만 2.4% 빠졌다. 행동주의펀드가 의안상정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최근 한달간 낙폭은 5%가 넘는다.
또 다른 행동주의펀드 트러스톤자산운용이 경영참여를 선언하면서 이목을 끈 BYC 정기주총 역시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 BYC 3대주주(지분율 8.99%, 작년 말 기준)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이번 주총에서 감사위원 선임, 배당 확대, 자사주 취득, 주식분할 등 4건의 주주제안을 했지만 모두 부결됐다. 이후 주가는 불과 3거래일 만에 10% 이상 폭락한 상태다.
KISCO홀딩스도 지난 24일 주주총회 이후 2거래일간 낙폭이 10%가 넘었다. 28일에는 다시 7% 이상 급등하는 등 불안한 흐름을 보였다. 이 회사는 앞서 행동주의펀드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이 내놓은 주주제안을 주총 안건에서 배제했다. 이후 밸류파트너스가 의안상정 가처분 소송에서 승소하며 주총 안건으로 상정됐지만 표 대결을 넘어서지 못했다.
행동주의펀드가 연이어 주총에서 고배를 마신 배경에는 소액주주들의 표심을 얻지 못한 점이 꼽힌다.
KT&G만 해도 소액주주(외국인 포함) 지분율이 62.9%(작년 말 기준)에 이르지만, 이번 주총에서 안다자산운용 측이 위임받은 의결권 주식수는 전체의 1% 수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높은 대주주 지분율도 행동주의펀드에 장벽으로 작용했다. BYC 주총에선 주주제안 4건에 대한 찬성비율이 평균 21%로 적지 않았지만,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63%)에 우호지분까지 사실상 내부지분율이 70%가 넘는다는 게 트러스톤자산운용의 설명이다. 주주권리 행사에 대한 인식은 개선됐지만 판을 뒤집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의미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일반투자자들은 회사에 불만이 있어도 의결권을 위임하거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주식을 팔고 떠나는 것을 선택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과거보다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주총 현장에서는 여전히 일반주주들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참여율이 낮다"며 "특히 국민연금 등이 보수적인 기조로 회사의 손을 들어주는 일이 많아 주주들이 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기업가치 개선에 대한 인식 확대와 함께 활발한 주주권 활동으로 국내 상장사 주총도 변화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란 평가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기업들이 주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분위기가 변한 것은 맞다"며 "주주제안은 그런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양일우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재 코스피 상장사의 3분의 2가량이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이라며 "저평가 기업이 많은 만큼 행동주의 캠페인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