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사모펀드 운용사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이 KISCO홀딩스의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주제안 안건 상정을 요구하는 가처분 소송을 냈다. 자신들이 2년 만에 재개한 주주제안을 관철하기 위해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이다.
KISCO홀딩스는 일단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입장이다. 공식화되진 않았지만 주주제안 요건 등이 적법했는지를 두고 양측의 주장이 엇갈린다. 이에 따라 이번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결정에 관심이 모아진다.
'현금 많다' 주주제안→'가처분 신청' 공세↑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밸류파트너스는 KISCO홀딩스를 상대로 자신들이 제안한 주당 2000원 배당과 500억원의 자사주 매입·소각을 정기주총 안건으로 상정해달라는 내용의 가처분 신청을 지난 3일 창원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앞서 지난 5년여간 이 회사 지분을 보유하며 목소리를 내 온 밸류파트너스는 2018년부터 3년 연속 KISCO홀딩스에 주주제안을 한 바 있다. 모두 자사주 매입 및 소각 촉구가 골자였다. 2021년에는 주주서한으로 이를 갈음했다. 지난해에는 주주제안이 따로 없었다.
성과도 없지 않았다. KISCO홀딩스가 밸류파트너스의 주주제안을 주주총회에서 통과시킨 적은 없지만, 회사는 2021년 5월 약 218억원의 자사주 취득을 완료했다. KISCO홀딩스의 이 같은 공개적인 자사주 취득은 전례가 없던 일이며, 밸류파트너스가 주주제안을 시작한 지 약 2년10개월 만의 결정이었다. 이어 회사는 작년 3월 자사주 376억원어치를 소각하기도 했다.
밸류파트너스가 올해 정기주총을 앞두고 2년 만에 다시 주주제안에 나선 건 KISCO홀딩스의 보유 현금이 여전히 많은 데 비해 주가 수준은 낮아 자본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김봉기 밸류파트너스 대표이사는 "KISCO홀딩스의 순현금성자산은 최근 10년간 연평균 15%씩 불어나 작년 말 1조원을 기록했을 것으로 본다"며 "최근 고금리 상황에서 1조원에 대한 연간 이자수익만 400억원으로 잡으면 회사는 '현금덩어리'라는 의미"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지배주주 보유 주당순현금이 주가보다 2배 이상 많은 상황으로, 쉽게 말해 현재 주가 수준 대비 2배나 많은 현금을 회사가 그냥 들고 있는 격"이라며 "주가가 지나치게 저평가된 상태이기 때문에 자사주 매입·소각으로 주당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KISCO홀딩스는 동국제강그룹 계열사던 한국철강을 중심으로 2001년 독립한 기업집단이다. 2008년 9월 한국철강이 지주사 'KISCO홀딩스'와 사업회사 '한국철강'으로 분할하면서 지금의 구조가 됐다. 작년 상반기 말 기준 KISCO홀딩스 기업집단에는 국내 계열사 12곳이 있다. 이 가운데 상장사는 KISCO홀딩스를 비롯해 한국철강, 영흥, 대호특수강 등 4곳이다. KISCO홀딩스가 자회사를 통해 하고 있는 철근산업은 대규모 투자비를 수반하는 장치산업으로 진입장벽이 높다. 작년 3분기 말 기준 철근시장 점유율이 10.0%다. 막강한 캐시카우(수익창출원)다.
일반주주 제안까지 안건 상정 모두 '불발'
하지만 KISCO홀딩스가 지난달 28일 공시한 정기주총 안건 내용을 보면, 밸류파트너스 측의 주주제안은 단 한건도 들어가지 않았다.
회사 측은 올해 주주제안의 또 다른 축이던 새 감사위원 추천도 주총 안건에 올리지 않았다. 이 안건은 KISCO홀딩스 일반주주들이 주주제안한 것이다. 밸류파트너스는 이 건에 대해서는 직접 주주제안을 하지 않았지만 이에 동조했다.
일반주주들은 새로운 감사위원이 선임되면 ▲과거 불법 담합 과징금 약 1300억원에 대한 KISCO홀딩스 이사회 이사 및 경영진들의 민사책임 ▲장세홍 회장 모친의 한국철강 보유주식 고가 매수로 회사가 입은 손실 ▲영흥철강 헐값 지분매각 ▲토지 고가 재매수로 회사에 끼친 손실 등을 물어 법적 조치를 하는 등 감사위원 본연의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KISCO홀딩스 자회사 한국철강은 2015년 5월부터 현대제철 등 제강사 6곳과 담합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혐의로 2018년 9월 175억19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당시 자회사 환영철강에도 113억1700만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이에 KISCO홀딩스는 그해 3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일반주주들이 제안한 새 감사위원 선출 또한 KISCO홀딩스가 정기 주총 안건으로 채택하지 않으면서 현재로서는 논의조차 어렵게 됐다.
"묵살했다" VS "법적 검토한 것"
상법 제363조의2(주주제안권) 등 관련 법령에 따르면 주주제안은 주총에 상정하는 게 원칙이다. 다만 제안의 주체인 주주는 해당 회사 지분율 1% 이상 보유 등 일정 요건을 갖춰야 한다. 밸류파트너스 측의 KISCO홀딩스 지분율은 같은 성향의 일부 주주를 포함해 지난달 3일 기준 1.29%다.
밸류파트너스의 이번 가처분 신청 근거도 이 부분이다. 밸류파트너스는 이번 소송 제기와 관련해 지난 3일 낸 공시에서 "일정 요건을 갖춘 주식 보유자는 주주제안을 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며 "그러나 회사는 주주제안의 내용이 아무런 결격사유가 없음에도 어떠한 해명없이 이를 묵살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에 허용된 소수 주주의 주주제안권 행사가 원천적으로 봉쇄될 위기에 처했다"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빠른 결정이 필요한 상황으로 효력에 대한 정지를 구하는 의안 상정 가처분 소송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KISCO홀딩스의 입장은 다르다. 이번 주주제안과 관련해 내부적으로 법적 검토를 거친 회사는 먼저 법원의 판단을 받겠다는 설명이다. KISCO홀딩스 관계자는 "세부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주주제안에 대해 법적 검토를 정확히 했다"며 "그쪽에서는 요건을 갖췄다고 하는데, 관련해 (법원의) 판단을 받아봐도 되겠다고 결정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