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연고점을 경신하며 반등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국내 주식시장에는 부쩍 돈이 돌지 않고 있다. 증시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주가조작 사태까지 터지며 시장 신뢰도가 추락한 데다 증권사들에 대한 압수수색 또한 잇따르자 불안감이 가중된 여파다.
대신 이들 자금은 단기차익을 따라 빠르게 이동하는 '핫머니'로 향하고 있다.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올해 들어서만 10조원 이상 몰린 게 대표적이다. 코스피가 최근 사흘 연속 2600대 마감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곤 있지만 투자자들의 마음을 사기에는 역부족이란 평가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18조원에 그쳤다. 이는 전달 26조4000억원 대비 31.8% 급감한 수치다.
경기침체 우려와 상장사 어닝쇼크 등으로 증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SG증권발 주가폭락 사태를 배경으로 주가조작 정황까지 드러나자 투자심리 전반이 급랭한 것으로 보인다. 연초부터 고공행진한 2차전지 종목들이 고평가 논란에 반락한 것도 투자자들의 발길을 돌리게 한 원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연이은 증권사 압수수색과 현재진행형인 현장검사 역시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가중하고 있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SG증권발 수급 이슈로 일부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투자심리 전반에 악영향을 미쳤다"며 "강한 상승세를 보인 2차전지 업종에서 어닝쇼크가 나오면서 시장 우려가 커지기도 했다"고 분석했다. 정민기 삼성증권 선임연구원은 "차액결제거래(CFD) 사태로 투자심리가 위축됐다"며 "구조적 회복을 위해서는 매크로 환경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대신 단기자금시장으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다. 실제 금융투자협회가 집계한 CMA 잔고는 이달 5일 기준 69조445억원을 기록했다. 50조원 후반대를 오가던 연초 대비 10조원가량 불어난 것이다. 앞서 지난달 25일에는 CMA 잔고가 69조1707억원까지 치솟으며 70조원대에 육박했다.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간 자금 상당 부분이 이들 CMA에 유입된 것이다.
CMA는 투자자가 증권사 계좌에 예치한 자금을 단기금융상품으로 굴려 발생한 수익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예금자 보호는 안 되지만 투자 대상이 국고채나 우량기업 등 사실상 안전자산인 데다 하루만 맡겨도 이자가 붙고 입출금 또한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코스피가 연일 연고점을 새로 쓰는 상황에서 CMA 잔고만 확대되는 이 같은 흐름은 다소 이례적이다. 코스피는 전날까지 최근 3거래일간 2600대를 수성했지만 개인투자자는 같은 기간 순매도로 일관하며 1조3000억원 이상을 팔아치웠다. 비단 거래대금 자체의 감소뿐만 아니라 주식을 사들일 유인이 크지 않아졌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증시 전문가들은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과 고강도 긴축이 아직도 진행 중인 만큼 확실한 방향성을 찾기 전까진 안전자산 위주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다은 대신증권 연구원은 "최근 선진국 신용지표들이 악화하면서 글로벌 경기가 재차 둔화하고 있다"며 "통화 긴축이 지속되는 국면에서 리스크는 더욱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박석중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그간 고성장·저물가·저금리가 낮은 투자 난도와 높은 수익률을 보장했다면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봐야 한다"며 "유망자산에 대한 선별과 포트폴리오 대응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