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두산그룹 사업 재편을 다시 한번 언급했다. 두산그룹 합병 신고서에 대해 무한 정정요구를 예고한 뒤에도 논란이 되는 내용을 바꾸지 않고 정정 신고서를 제출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다시 한번 경고 메시지를 낸 것으로 보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1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기업지배구조 개선 관련 학계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황선오 부원장보와 상법 분야 학계 전문가 5명이 자리했는데, 참석자 명단은 비공개에 부쳐졌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복현 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상법 학계에선 회사와 주주이익이 동일하며 충실의무 대상인 '회사'에 주주이익이 포함돼 있다는 견해가 다수임에도 현실에서는 이와 다르게 운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부 회사들의 불공정 합병, 물적분할 후 상장 등 일반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사례가 계속 발생하는데 안타까움을 표명했다.
참석자 명단도 비밀에 부친 비공개 간담회임에도 금감원장이 이같은 메시지를 내놓은 건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강경한 반대 입장을 재차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읽힌다.
두산그룹은 사업구조 개편을 위해 현재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두산그룹은 지난 7월 첫 신고서를 제출했지만 금감원으로부터 정정요구를 받았으며, 이 원장으로부터 '무한 정정' 경고를 받기도 했다. 이 원장은 이달 초 두산그룹 합병 신고서와 관련해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가 부족할 경우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고 지속적으로 정정 요청을 하겠다"고 언급했다.
두산그룹은 두 번째 정정 신고서를 제출해 효력 발생일을 28일로 미뤄놓은 상태다. 다만 금감원이 또 정정을 요구한다면 효력 발생도 다시 연기된다.
이 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한국적 기업지배구조의 특수성으로 △지배주주의 낮은 지분율 △낮은 주주배당 △일반주주 주식가치에 대한 빈번한 침해 등을 지적하며, 이러한 점이 밸류업의 걸림돌이라는 점도 언급했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서는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와 관련한 상법 논의가 주를 이뤘다.
이복현 원장은 기업들의 인식 전환을 위해서는 개별적 규제방식보다 원칙중심의 근원적 개선방안을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가 배임죄 등 형사적 이슈로 번져 경영환경이 과도하게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를 인지하고 있다며, 배임죄 폐지도 같이 논의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일각에선 회사법 체계를 고려할 때 상법 개정에 다소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에 따라 대안으로 별도의 조문을 신설해 이사의 주주 이익 보호의무를 규정하는 방안을 비롯해 주주 간 이해상충 상황에서 준수해야 할 공정성 확보 절차를 명확히 규정화하는 방안이 언급됐다.
또한 불공정 합병 비율을 제시하는 등 일반 주주의 불이익 우려가 있을 경우, 주주가 합병 중지를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거나 합병비율을 법원이 선임한 전문가에 의해 산정하도록 하는 규정을 추가하자는 안도 제시됐다. 지배주주의 사익추구시 부당결의취소의 소를 제기하는 것을 허용하자는 안도 나왔다.
이복현 원장은 두산그룹이 정정한 합병 신고서의 효력발생이 시작될 예정인 28일에도 경영계와 학계 13명을 소집해 상법 개정을 논의하는 자리를 또 한 번 가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