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이하 MBK)에 맞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반격 카드가 1차로 나왔다. 고려아연 지분(1.85%)을 가진 영풍정밀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히 다지기 위해 대항공개매수에 나서기로 했다. 기존 MBK가 제시한 영풍정밀 공개매수가격(2만5000원)보다 5000원 더 높은 3만원을 제시하면서 가격 면에서 MBK보다 우위에 서게 됐다.
제리코파트너스(이하 제리코)는 2일 금융감독원에 공개매수신고서를 제출하면서 영풍정밀 주식 383만7500주(발행주식총수의 25%)를 주당 3만원에 공개매수하겠다고 밝혔다. 제리코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삼촌인 최창영 고려아연 명예회장, 최창규 영풍정밀 회장과 함께 출자해 만든 특수목적법인(SPC)이다. 장형진 영풍 고문에 맞선 최씨 일가의 연합인 셈이다. 제리코는 이번 대항공개매수에 1181억원을 투입하는데 이중 자기자금 300억원을 제외한 881억원은 하나증권으로부터 빌려서 조달했다.
앞서 MBK는 지난 9월13일 고려아연과 함께 영풍정밀 주식도 공개매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MBK는 지난달 26일 고려아연 공개매수가격을 75만원으로 높이면서 영풍정밀 매수가격도 2만5000원으로 끌어올렸다.
MBK가 영풍정밀 공개매수를 시도하는 건 이 회사가 가진 고려아연 지분(1.85%)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현재 영풍정밀은 최윤범 회장 측이 특수관계법인으로 묶여있는 곳이다. 따라서 MBK가 영풍정밀 공개매수를 통해 과반 이상 지분(기존 영풍 측 보유지분 포함)을 확보한다면 단순히 1.85%의 고려아연 지분을 컨트롤하는 것을 넘어 최 회장과의 지분 격차를 3.7%포인트 차이로 벌리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같은 논리로 최윤범 회장도 영풍정밀에 대한 지배권을 MBK에 빼앗긴다면 경영권 방어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에 대항공개매수에 나선 것이다. 특히 자사주 매입카드를 활용할 것으로 보이는 고려아연에 대한 반격 전략과 달리 영풍정밀 공개매수에는 최윤범 회장 일가가 직접 등판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영풍정밀을 두고 펼치지는 MBK와 최윤범 회장 측의 공개매수에는 일부 차이가 있다. 일단 가격은 최윤범 회장이 우위에 서 있다. MBK가 지난달 영풍정밀 공개매수가격을 기존 2만원에서 2만5000원으로 올렸지만 최윤범 회장이 대행공개매수에 참전하면서 영풍정밀 공개매수가격을 3만원으로 제출했기 때문이다.
더 높은 가격을 써낸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30일 종가기준 영풍정밀 주가는 2만5300원으로 최윤범 회장이 제시한 공개매수가격은 영풍정밀 현재주가보다 19% 더 높다.
공개매수로 사들이겠다는 주식수량은 MBK가 더 많다. MBK가 세운 특수목적법인(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는 영풍정밀 주식 684만801주(발행주식총수의 43.43%)를 사들일 예정이다. 이는 장형진 영풍 고문 일가와 최윤범 회장 일가가 보유한 지분(56.57%)을 제외한 나머지 수량이다. 즉 대주주 지분을 제외한 유통주식 전량을 공개매수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대항공개매수에 나선 최윤범 회장 측은 공개매수 수량을 393만7500주로 잡았다. 이는 영풍정밀 총 발행주식수의 25%다.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56.57%)을 제외하고 남은 43.43% 주식 중 일부만 공개매수로 사들이겠다고 밝힌 것이다.
다만 MBK와 최윤범 회장측 모두 공개매수 응모주식이 매수예정 수량을 밑돌아도 전량 매수할 예정이라는 점은 같다. 이는 결국 양측 모두 영풍정밀 지분 과반 확보가 절실한 상황에서 1주라도 더 끌어모으려는 전략이다.
현재 영풍정밀 지분은 최윤범 회장 일가가 35.45%, 장형진 영풍 고문일가는 21.25%를 보유 중이다. 이 상황에서 최윤범 회장 측이 이번 대항공개매수에 성공한다면 영풍정밀 지분율은 60.43%로 올라간다. 자연스레 영풍정밀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에 대한 의결권은 최 회장이 지금처럼 보유한다. 공개매수 예정수량을 모두 확보하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과반(50%+1주) 지분만 확보해도 성공이다.
MBK는 애초 영풍정밀 공개매수를 통해 지분 64.68%(장형진 영풍 고문 일가 측 기존 지분 포함)를 확보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최 회장 측의 대항공개매수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최윤범 회장은 영풍정밀에 대한 대항공개매수뿐만 고려아연 경영권 방어를 위한 반격에도 나선다. 2조원에 달하는 고려아연 내부 현금을 이용해 회사가 자사주 매입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김상훈 부장판사)는 2일 오전 영풍 측이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측을 상대로 제기한 자기주식 취득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 결정했다. 이에따라 고려아연은 현재 MBK가 제시한 고려아연 공개매수가격(75만원)보다 더 높은 80만원~85만원 사이에서 자사주 공개매수 카드를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