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실물이전(퇴직연금 계좌 갈아타기)' 시행이 열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투자자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기존에는 퇴직연금에 담아둔 금융상품을 모두 팔아 현금화한 후 다른 금융사로 계좌를 옮길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금융상품을 보유한 채로 다른 금융사로의 계좌 이전이 가능하다.
다만 DB형과 DC형, IRP는 각각 같은 유형의 상품으로만 변경할 수 있다. 또 주식과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 실물이전 대상이 아니다. 이에 따른 계좌 이전을 위해서는 주식 등을 미리 현금화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31일 시작…"해지 없이 계좌 갈아타기"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가 오는 31일 시작한다. 애초 15일 조기 서비스 개시를 목표로 시스템을 구축하고 테스트를 진행했으나 추가 테스트 기간이 필요하다는 업계 의견을 반영해 일정을 늦췄다.
지금까지는 퇴직연금 계좌를 변경하기 위해서는 미리 모든 금융상품을 매도(해지)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중도해지 금리 등 비용 발생, 펀드를 환매한 후 다시 매수하는 과정에서 시장변화에 따른 손실 가능성을 소비자가 부담해야 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상품 해지 비용과 수수료 비용을 낮추고 업계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를 도입했다. 특히 금융상품 중 원리금보장상품인 예금, 이율보증보험계약(GIC), 국채와 원리금비보장상품 중 공모펀드, 상장지수펀드 등을 상품 환매 없이 금융사만 바꿔 운용할 수 있게 된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의 장점은 손쉽게 수수료 비용 낮출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 공시에 따르면 42개 퇴직연금 사업자 중 지난해 퇴직연금(DC형) 수수료는 △한화투자증권 0.3% △현대차증권 0.37% △신한투자증권 0.4% △우리은행 0.52% △KB국민은행 0.57% 등이다. 수수료율이 낮은 금융사로 퇴직연금 계좌를 옮기면 같은 운용 성과에도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다.
예금 만기 전 해지 수수료를 줄일 수 있다. 기존에는 퇴직연금 계좌 이동을 위해 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예금을 해약해야 했다. 그러나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를 통해 해지 없이 예금을 다른 계좌로 옮길 수 있다.
계좌를 옮기는 중 발생할 수 있는 기회비용도 줄일 수 있다. ETF나 펀드를 옮기기 위해서는 매도 후 결제일까지 일정 기간이 필요하다. 특히 해외 펀드의 경우 펀드 매매 후 현금을 손에 쥐기까지 최장 14일이 걸린다. 퇴직연금 실물이전을 통해 이 같은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고 그 사이 ETF와 펀드 가격 상승에 따른 기회비용도 줄일 수 있다.
퇴직연금 사업자 간의 경쟁이 촉진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금감원은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 도입으로 가입자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사업자 간 서비스 기반의 건전한 경쟁이 촉진돼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식·디폴트옵션은 적용 불가"
다만 제약사항도 있다. DB형과 DC형, 개인형 퇴직연금(IRP)은 동일한 유형에서만 이전이 가능하다. DC형 퇴직연금 계좌를 운용하고 있었다면 다른 금융사의 DC형으로만 이전 가능하다. DC형 퇴직연금은 회사에서 관리하는 만큼, 회사가 선정한 금융사로 회사가 정한 시기에 신청할 수 있다. 개인형 퇴직연금인 IRP는 언제든 원하는 금융사로 이전할 수 있다.
DC형 계좌를 IRP로 이전하는 것은 같은 금융사 내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DC형을 다른 금융사의 IRP로 바꾸기 위해서는 기존 금융사에서 DC형 계좌를 IRP로 바꾼 후, 다른 금융사 IRP 계좌로 옮길 수 있다. 가령 신한은행의 DC형 계좌를 신한은행의 IRP로 바꾼 후, 신한투자증권의 IRP로 이전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상품군에 따라 퇴직연금 현물이전 가능 여부에 차이가 있다. 계좌 갈아타기가 가능한 상품은 예금 등의 원리금보장상품과 마니머켓펀드(MMF)를 제외한 공모펀드, ETF 등이다.
다만 ETF와 같이 실물이전이 가능한 상품이더라도 퇴직연금을 옮기려는 금융사가 해당 상품을 취급하고 있어야 한다. 은행권에서 거래할 수 있는 퇴직연금 ETF 개수는 약 90~140개다. 반면 증권사는 600~700개의 ETF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어 취급 상품에 차이가 있다. 만약 옮기려는 금융사에서 본인이 보유하고 있는 ETF를 취급하지 않는다면 미리 이를 매도해 현금화해야 한다.
주식은 현물이전이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주식을 보유한 퇴직연금 계좌를 옮기기 위해서는 계좌 이동 2일 전 주식을 매도해야 한다. 'T+2일' 결제 주기에 따라 거래일(T)로부터 이틀 뒤에 증권과 대금을 정산하기 때문이다.
다만 주식의 실물이전 가능 여부가 대세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DC형과 IRP에서 주식은 담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며 "만약 법인이 DB형에서 실물이전을 하려면 주식을 미리 매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디폴트옵션도 적용되지 않는다. 디폴트옵션은 상품 특성상 퇴직연금 사업자의 자체 상품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폴트옵션이 발동됐다면 이를 해지해 현금화한 후 계좌를 이동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