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의 또 다른 이름이라 할 박병엽 부회장이 물러나기로 하면서 향후 팬택 운명에 대해 관심이 모이고 있다. 당분간 기존 경영 체제를 유지하겠지만 결국 새 주인 찾기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현재로서는 지배적이다. 특히 최근 주요주주로 부상한 삼성전자에 흡수되는 게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로 거론되고 있다.
팬택은 이미 지난 3월 경영진을 재편, 박 부회장과 이준우 부사장이 공동 최고경영자(CEO)를 맡는 각자대표 체제로 전환한 바 있다. 안살림을 이준우 부사장이 맡고 박 부회장은 바깥에서 투자자금 유치에 나서는 구조다. 박 부회장이 사임하게 되면 팬택은 당분간 이준우 대표 체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하지만 지금의 휴대폰 시장 환경이 삼성전자와 LG전자, 애플 등 대기업 위주로 판이 짜이고 있어 회사 규모가 작은 팬택은 더 이상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벤처로 시작한 팬택은 그동안 뛰어난 기술력과 박병엽 부회장의 탁월한 전략 덕에 근근히 경영을 유지해왔으나 대기업 틈바구니에서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것이다. 팬택측도 “기술력이나 상품력에서 팬택 제품은 뛰어나다고 자평하고 있으나 브랜드와 자금 조달력에선 삼성·애플에 비해 역부족”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박 부회장이 위기 때마다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벼랑끝 전술'로 어려움을 헤쳐왔으나 앞으로는 힘겨울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팬택을 둘러싼 시장 환경은 실제로 만만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팬택이 공을 들여왔던 해외시장에서 지난해 이후 눈에 띄게 성장세가 꺾였다. 2011년 54%에 달했던 해외매출 비중은 지난해 43%로 줄어든 뒤 올 상반기에는 29%로 급감했다. 게다가 국내 시장도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팬택은 국내에서 삼성전자에 이어 2위 자리를 지켜왔으나 최근 LG전자가 '옵티머스' 시리즈로 급부상하면서 위협 당하고 있다. LG전자에 치여 국내시장에서도 더 이상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팬택이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국내 경쟁사에 인수되는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관련 업계에선 LG전자보다 주요 주주인 삼성전자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팬택은 지난 5월 삼성전자로부터 530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바 있다. 삼성전자의 투자로 팬택의 지분 구조는 산업은행(11.81%), 퀄컴(11.96%), 삼성전자(10.03%) 등 10% 이상의 주요주주로 이뤄졌다. 삼성전자가 주요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만큼 팬택의 일부 인력이나 사업을 인수하지 않겠느냐란 것이다.
조성은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몇년 전만해도 팬택 채권단이 실적부진을 이유로 팬택 매각을 추진했으나 지금 기업 가치는 그때보다 더욱 떨어져 있는 상황"이라며 "인수합병(M&A) 대상이 되던가 할텐데 그나마 거둘 수 있는 곳은 주요 주주인 삼성전자"라고 설명했다.
한편 박 부회장은 지난 2011년에도 회사를 떠나 휴식을 갖겠다며 사퇴 의사를 밝힌 적이 있었다. 당시 박 부회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것은 연말로 예정된 팬택 워크아웃 졸업에 반대하는 일부 채권단을 압박하기 위한 일종의 '벼랑 끝 전략'이었다. 박 부회장의 사퇴 발언이 나온 지 하루 만에 채권단은 팬택의 연말 워크아웃 졸업을 합의하는 등 박 부회장의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준 바 있다. 당시 박 부회장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승부수로 사퇴 카드를 꺼내들었으나 지금은 변화된 시장 환경을 이기지 못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