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태조)와 함께 조선왕조의 밑그림을 그린 정도전(1342~1398), 이방원(태종) 곁에서 왕권강화의 디딤돌을 놓은 하륜(1347~1416). 정도전과 하륜은 모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2인자였지만 상반된 길을 걸었다.
정도전은 이방원에 맞서다 비참한 최후를 맞았으나 하륜은 죽어서도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지향점이 달랐고 처세가 달랐기 때문이다.
정도전은 신권중심, 특히 재상중심의 통치를 이상으로 여겼다. 6조직계(六曹直啓)제가 아니라 의정부(議政府) 중심체제로 정치시스템을 설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국식 입헌군주제 하의 내각책임제를 꿈꾼 것이다.
정도전은 술자리에서 “한나라 유방이 장량(장자방)을 쓴 것이 아니라 장량이 유방으로 하여금 나라를 세우게 했다”는 얘기를 자주했다고 한다.
반면 하륜은 태종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움직였다. 하륜은 군주가 위에 있고 재상이 아래에 있는 상태에서 서로가 잘 협조하는 것을 이상적인 군신관계로 생각했다. 참모의 덕목은 군주의 의중을 잘 헤아리고 군주의 의지를 실천하는 것으로 봤다.
#오너가 있는 기업의 경우 2인자는 1인자가 될 수 없는 숙명적 한계를 안고 있다. 2인자가 오너의 빈자리를 잠시 메울 수는 있지만 자신의 뜻을 펼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너들은 대개 하륜 같은 2인자를 원한다.
‘자신을 알고, 리더를 알라’ ‘따르기도 하고 이끌기도 하라’ ‘조직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훌륭히 수행하라’ ‘물러날 때를 알라’.
리더십 분야의 권위자 워런 베니스와 데이비드 히런이 2인자에게 주는 조언이다. 자신의 장단점과 오너의 스타일을 꿰뚫고 있어야만 2인자로 생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기업에서 성공한 2인자들은 1인자를 돕고, 3인자를 독려하는데 능수능란한 사람들이다.
리더십 전문가들은 2인자는 1인자보다 먼저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고 재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예스맨 2인자만 있어서는 역동적인 혁신 기업이 되기 어렵다. 조선을 디자인한 정도전처럼 기업의 미래를 고민하고 신성장동력을 찾는 2인자도 필요하다. 1인자의 눈(프레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오너의 열린 마음이 전제돼야 한다. 총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외부 인터뷰조차 기피하는 분위기에서는 좋은 2인자를 기대할 수 없다. 기업 궁극의 목표가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면 2인자를 잘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1인자를 만든 2인자들’이란 책에서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MS)의 두뇌라면 스티브 발머는 MS의 심장이고, 게이츠가 기술자·전략가·총사령관이라면 발머는 사업가·책사·야전사령관”이라고 비유했다. 1인자와 2인자의 궁합이 잘 맞을 때 그 기업은 가속페달을 밟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