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루의 저주
1999년 도이체방크의 애널리스트 앤드루 로런스는 초고층빌딩 100년 간의 사례를 분석해 ‘마천루(摩天樓)의 저주(Skyscraper curse)’라는 가설을 내놨다. 초고층 빌딩 건립 프로젝트는 경기가 활황일 때 시작되지만 완공 시점에서는 거품이 꺼지면서 불황을 맞는다는 것이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는 2000년대 초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일찍이 세상에 없던 도시를 만들기로 한다. 세계적인 건축가를 총동원해 빼어난 외관을 갖춘 빌딩을 짓고, 앞바다에는 야자수와 세계지도를 닮은 인공 섬을 만든다.
2004년엔 세계 최고층 빌딩 계획을 세우고 삼성물산을 시공사로 선정한다. ‘버즈두바이’(163층, 828m) 프로젝트다. 버즈두바이는 세계 제일 도시를 꿈꾸는 두바이의 기념비였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맞아 디폴트 위기에 처한 두바이가 아부다비에 손을 벌리면서, 버즈두바이는 이름마저 아부다비의 통치자 할리파의 이름을 딴 ‘부르즈할리파’로 바뀌는 신세가 됐다. 앞서 1931년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102층·381m)가 완공된 시점은 미국 경제가 대공황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고, 1998년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88층·452m)가 문을 열 당시는 외환위기의 쓰나미가 동남아시아를 휩쓸었다.
#마천루의 역사
마천루는 엘리베이터의 발명으로 시작된다. 1871년 대화재를 겪은 시카고가 마천루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55m, 10층·시카고 홈인슈어런스 빌딩) 이후 마천루 시장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으로 대표되는 뉴욕 맨해튼이 주도한다. 2013년에는 9.11테러로 붕괴됐다 다시 세워진 맨해튼의 ‘원월드트레이드센터’(541m, 첨탑 포함)가 1974년 이후 미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공인돼 온 시카고의 월리스타워(442m)를 제치고 왕좌에 오른다.
미국에서 시작한 초고층 빌딩 건축 경쟁은 1990년대 들어 아시아로 이동했다. 초고층 건물이 경제 발전의 아이콘으로 등장하면서 1998년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2004년 타이페이 101빌딩(101층·508m)이 잠시나마 세계 최고층 빌딩 자리를 차지했다. 2010년 문을 연 두바이 부르즈할리파는 압도적인 높이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듯 보였지만 조만간 자리를 물려줘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는 오는 2019년 완공을 목표로 무려 1007m규모의 킹덤 타워가 치솟고 있다. 향후 세계 초고층 빌딩의 판도는 중국으로 넘어간다. 중국의 주요 성도(省都)에는 100층이 넘는 건물이 우후죽순처럼 세워지고 있다. 2020년에는 세계의 마천루 톱10 가운데 5개를 차지하게 된다.
#마천루의 효과
마천루는 수직도시를 만드는 일이다. 수 만 명이 생활하는 공간을 압축적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관련 기술을 고도화하는 계기가 된다. 우선 엔지니어링(설계)과 토목·건축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한다. 콘크리트 철강 유리 등 건축자재의 수준도 전례 없이 높아지게 된다. 엘리베이터 관련 기술의 발전은 초고층 빌딩의 역사와 함께 한다.
부르즈할리파의 엘리베이터 속도는 1초에 10m에 불과하지만 올해 완공되는 상하이타워에 설치되는 엘리베이터는 1초에 18m를 주파한다. 빠른 속도로 올라갈 때 귀가 먹먹해지지 않도록 하는 기압조절장치, 급제동시 충격을 최소화하는 완충장치, 이동거리를 늘려주는 탄소섬유케이블, 케이블 한 개에 엘리베이터 2대를 배치하는 '쌍둥이 시스템' 등의 신기술도 초고층 빌딩의 산물이다. 초고층 건축 기술 노하우를 쌓으면 해외 수주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삼성물산이 부르즈할리파를 수주한 것도 초고층 빌딩 건축에 참여한 이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고층 빌딩은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블랙홀이다. 대다수 관광객은 뉴욕에 가면 엠파이어스테이트에 들르고 상하이에 가면 동방명주(東方明珠)에 오른다. 말레이시아는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완공 4년 후 관광객 수가 139%(98년 556만→02년 1329만명) 증가했다. 대만 역시 ‘타이페이 101’ 완공 4년 후 관광객이 71%(03년 225만→08년 385만명) 늘었다. 롯데그룹은 내년 말 잠실 제2롯데월드타워가 완공되면 연간 250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을 끌어모아 3000억원의 관광수입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천루의 축복
인구 15만 명인 독일 볼프스부르크에는 연간 2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폭스바겐의 자동차 테마파크 ‘아우토슈타트’ 효과다. 25만㎡ 부지에 총 1조2000억 원을 들여 조성한 아우토슈타트는 자동차의 생산공정을 보여주는 ‘아우토베르크’와 자동차 박물관, 고객에게 직접 차를 인도하는 딜리버리시스템을 갖춘 카 타워, 어린이 체험관 등을 갖추고 있다. 자동차의 '디즈니랜드'라고도 불린다. 현대차그룹은 2020년까지 서울 삼성동 한전부지에 571m(115층)짜리 마천루를 지을 계획인데 아우토슈타트는 현대차 강남사옥이 가야할 방향의 일단을 제시한다.
현대차 강남사옥이 마천루의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콘텐츠는 물론이고 건축디자인-공사과정-운용시스템 등 모든 면에서 예상을 뛰어넘어야 한다. 에너지를 100% 자급자족하는 ‘에너지제로 빌딩’, 빌딩의 혈관인 엘리베이터 상하수도 전기 통신 등을 사물인터넷으로 최적화한 ‘인텔리전트 빌딩’, 첨단과학 기술이 총망라된 ‘미래 빌딩’ 등 차별화 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 아사달 아사녀의 무영탑 설화처럼 빌딩에 얽힌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다면 금상첨화다. 2020년, 에펠탑을 보기위해 파리로 가듯이 현대차 강남사옥을 구경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10%만 돼도 성공한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 킹덤타워 1007m 2019년 준공예정 |
▲ 부르즈할리파 828m 2010년 준공 |
■세계의 마천루 톱10
1위 킹덤타워 1007m(167층)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2019년 준공예정
2위 부르즈할리파 828m(163층)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2010년 준공
3위 중난센터 729m(138층) 중국 쑤저우 2020년 준공예정
4위 핑안국제금융센터 660m(115층) 중국 선전 2016년 준공예정
5위 우한그린랜드센터 636m(125층) 중국 우한 2017년 준공예정
6위 상하이타워 632m(121층) 중국 상하이 2015년 준공예정
7위 KL118 610m(118층)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2019년 준공예정
8위 마카클록로열타워호텔 601m(120층)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2012년 준공
9위 골든파이낸스117 597m(117층) 중국 텐진 2016년 준공예정
10위 바오닝선양금융센터 568m(114층) 중국 선양 2018년 준공예정
11위 현대차 강남사옥 571m(115층) 서울 2020년
12위 제2롯데월드타워 555m(123층) 서울 2016년
출처 : The Skyscraper Center(준공, 건축 중인 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