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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북한경제]⑤평양아파트와 돈주

  • 2018.04.30(월) 09:00

<북한 부동산과 금융>
주택 수요·공급 균열 생기며 매매시장 열려
정권도 부동산열기 경기회복 수단으로 활용



북한에도 부동산버블이 있을까.

사회주의 계획경제인 북한에서 주택(북한식 표현은 살림집)은 원칙적으로 국가예산으로 짓는 집단 소유물이다. 개인이 집을 지을 수 없고 소유도 허락되지 않는다.


따라서 북한의 일반적인 주거형태는 국가로부터 주택을 배정받아 매달 사용료를 내는 임대형식이다. 직장과 직위에 따라 배정받는 주택 등급도 달라진다. 그러나 작은 마을 공동체도 아니고 수백만 개 주택의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몇 십년간 계획대로 정확하게 맞추는 건 불가능하다.


북한에서 주택 수요와 공급의 심각한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다.

산업연구원이 탈북자 39명 인터뷰를 토대로 조사한 '북한 시장실태 분석' 보고서는 북한의 주택시장이 1980년대부터 태동했다고 설명한다. 베이비붐세대가 결혼적령기에 접어들면서 주택부족이 북한 사회의 문제로 부각된 시기다.

국가가 주택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대안으로 각 공공기관(기관)·기업(기업소)에게 토지사용을 허가하고 주택을 지어 배정할 권한을 줬다.

국가로부터 토지사용권을 넘겨받은 기관·기업소는 자체적으로 자재를 조달받아 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기관과 기업소는 재원 충당을 위해 완공주택의 일부를 개인에게 비공식 판매했다.

이러한 흐름은 1990년대 들어 개인이 직접 주택 건설에 참여하는 형태로 확장됐다.

개인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놓고 집을 지을 순 없지만 기관 이름을 빌려 아파트를 짓고 그 대가로 몇 채를 기관에게 제공하고 나머지를 판매하는 방식이 생겨났다. 기관이 주택을 짓겠다고 나서면 투자하겠다는 개인도 나타났다. 주로 권력과 가깝거나 밑천이 두둑한 사람들이다.

산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이렇게 기관명의를 빌려 사실상 개인이 지은 신규주택은 평양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3년에는 주택 수요를 취합해 자금을 모아서 주택을 공급하는 주택위탁사업소가 등장했다. 개인들로부터 주택건설 투자금을 모아 집을 짓고 분배하는 방식이다. 

주택거래가 생겨나면서 남한의 공인중개사에 해당하는 '주택거간'도 나왔다. 팔고자하는 사람과 사고자하는 사람간 알선 업무는 물론 법적인 문제까지 해결해줄 주택거간을 찾는 수요도 늘었다. 당연히 기관에 있었거나 기관에 연줄을 댈 수 있는 사람들이 주로 거간을 맡았다.

1990년대부터는 고층아파트를 일컫는 '달러아파트'도 생겨났다. 당시 북한의 무기개발을 담당하는 국방과학원이 지은 아파트는 1세대당 1만 달러였는데 순식간에 다 팔렸다. 이후 국방과학원은 아파트 한 동을 더 지어 1세대당 2만 달러에 팔았는데 역시 순식간에 다 팔렸고 그 다음에는 1채당 3만 달러에도 동이 났다.

2013년 평양의 최신식 아파트는 10만 달러까지 가격이 상승했다. 북한에서도 비싼 집을 살 능력을 갖춘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의 차이가 존재한다.

평양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곳은 보통강, 중구역, 모란봉, 평천이 꼽힌다. 지하철이 다니거나 극장·도서관 등 문화공간이 있고 대학과 병원이 집중돼 있는 곳의 집값이 비싼 것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마찬가지다. 북한에서 좋은 집의 조건은 싱크대와 베란다를 갖추고 방 2개 이상에 승강기도 있어야한다.

 

요약하면 북한의 부동산시장은 주택 수요·공급의 불균형이 심각해지면서 계획경제에 균열이 생겼고, 점차 민간자본의 참여가 확대되면서 본격적으로 발달했다. 또 부동산 열기를 경기회복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정권의 의도가 가세하면서 시장이 더욱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에는 수요를 무시한 아파트 건설 난립으로 평양의 부동산 버블이 붕괴될 가능성이 일본 언론에서 언급되기도 했다.

 



한편 북한의 금융시스템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통일부 북한정보포털과 산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북한의 일반주민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다. 기업은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은행이 빌려줄 수 있는 자금의 한계 등으로 자금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이러한 흐름은 곧 사금융시장의 수요로 이어졌다.

 

북한에서도 고리대금업이 성행하고 법적담보와 계약이 성립하지 않은 조건에서 개인자금을 빌려 쓰고 갚지 않는 채무불이행이 사회적인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때문에 "돈 꾸는 사람은 로력(노력)영웅이고, 돈 꿔준 사람은 일등머저리"라는 말도 나왔다. 돈을 빌리기는 어렵지만, 일단 빌리고 나면 제때 갚지 않고 오히려 이자놀이를 한 채권자를 관계기관에 신고하는 하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전주(錢主)를 일컫는 말로 '돈주'란 표현도 있다. 비록 개인이 이자놀이를 하는 것은 리스크를 수반하긴 하지만 각종 보고서에 따르면 부동산과 유통, 금융 등 북한 전반적인 생활전반에 돈주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장마당(종합시장)과 함께 돈주를 최근 북한의 시장경제를 견인하는 존재로 꼽는 시각도 있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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