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스타벅스' 1호점이 대학가인 이대 앞에 문을 열었다. 당시 미국 물좀 먹어 본 이들이 "미국에선 1달러도 안했는데"라고 한마디하며 먹었던 커피다. 그로부터 10년 후 2009년. 매일유업이 야심차게 준비한 커피 프렌차이즈 '폴바셋' 1호점이 들어선 곳은 신세계 강남점이었다. 2016년 미국의 유명 프랜차이즈 햄버거 '쉐이크쉑' 1호점이 문을 연 곳 역시 강남역 인근이었다. 2호점도 청담동에 문을 열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소비 트랜드를 주도하는 세대들이 모이는 곳이 더는 명동, 신촌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미 강남으로 바뀐지는 한참 됐다. 스타벅스가 1호점을 낼 당시에만 해도 신촌은 핫한 곳이었지만 강남에 그 자리를 내준지 오래다.
강남은 주거지역, 교육 중심지로 국한하지 않고 단순한 상업지구라는 설명으로 부족할 정도로 문화와 트랜드를 주도한다. '청담동 며느리' 패션부터 '강남스타일'까지 대중문화 속에 비춰진 강남의 모습도 고급스럽고 차별화된 이미지를 내포한다. 주거 교육 문화 상업 각종 편의시설이 몰리고 사람이 몰리는 곳이 강남이다.
올해 '마용성'으로 불리는 마포·용산·성동구 집값 상승의 주된 원인중 하나 역시 강남과의 접근성이다. 강남과 가깝고 접근성이 좋은 것이 부동산의 가장 큰 호재가 될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강남의 위상은 남다르다.
또한 이런 강남을 있게 해 준 것은 교통의 요충지로 발돋움하면서다. 지금도 지하철이든 새 철도노선이든 강남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 강남 시대의 서막 '제3한강교'
강남이 처음부터 강남은 아니었다. 허허벌판이었던 강남에 제3한강교(한남대교)를 놓으면서 강남시대의 서막을 알렸다. 이때가 1969년 12월27일이다.
제3한강교를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이와 연결되는 경부고속도로도 착공에 들어갔다. 강남에 차와 사람들이 오가기 시작했던 것도 이때부터라고 얘기한다. 이후 강북에 모여있던 버스터미널을 반포에 있는 강남고속버스터미널로 옮기고 집결시켰다.
80년대 들어선 지하철 2호선 개통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신설동에서 종합운동장까지, 이후 84년에 서울대입구에서 을지로입구 구간을 개통하면서 서울 중심지를 잇는 순환선이 만들어졌다. 이후 강남 집중이 더욱 가속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강남개발을 위해 정부가 인위적인 노력을 투입했다면 이후엔 자발적인 유입이 생겼다. 이후 강남과 연결되는 3호선, 7호선, 9호선 등이 생겼고 가장 최근엔 수서고속철(SRT)이 개통됐다.
강남권에서 서울역으로 이동하지 않고 고속열차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도권과의 접근성도 좁혔다. SRT로 평택에서 강남까지 20분 이내, 동탄2신도시에서는 15분 이내로 단축했다.
오는 2023년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파주~동탄)도 완공된다. 삼성, 수서역을 통과하는 이 노선은 사업성이 가장 큰 것으로 평가된다. B노선(송도~마석)과 C노선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이지만 사업성 측면에서 논란이 많다.
그나마 C노선은 삼성, 양재를 거치며 사업성이 낫다는 평가지만 강북을 지나는 B노선의 경우 사업성이 가장 떨어진다는 평가를 얻는다. GTX A노선까지 완공되면 수도권에서의 강남 접근성은 더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 쉐이크 쉑(Shake Shack) 한국 1호점이 2016년 7월 22일 오픈했다. 당시 쉐이크쉑의 대표메뉴인 쉑쉑버거를 비롯한 햄버거를 먹기 위해 약 400명의 시민이 오픈하기 전부터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
◇ 잠실·삼성엔 랜드마크, 관광 문화 상업 중심지로
'강남스타일'이라는 싸이의 노래는 제3한강교 만큼은 아니더라도 관광 트랜드를 바꾼 계기가 됐다.
해외의 젊은 세대들이 강남의 문화를 즐기고 경험하기 위해 강남을 거쳐간다. 송파구 잠실은 이미 잠실관광특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지상 123층 높이의 롯데월드타워라는 랜드마크를 중심으로 롯데백화점, 면세점, 호텔, 롯데월드 등이 자리잡고 있다.
롯데월드타워뿐 아니라 국내 대표 랜드마크는 강남권에 있거나 이 지역에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 삼성역은 코엑스와 무역센터에 이어 현대차그룹에서 추진하는 105층 짜리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가 들어설 예정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 입찰에 10조원을 써낸 일은 당시로선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세워질 GBC와 삼성역 인근의 가치를 생각하면 상당부분 이해가 간다는 것이 최근 부동산 전문가들의 얘기다.
이외에도 삼성서울병원, 현대아산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등 내로라하는 국내 대형병원들도 강남권에 포진했다.
최근 만난 삼성 한 고위임원은 삼성본관(태평로)에 근무하던 시절을 언급했다.
"80~90년대 태평로 삼성본관에 근무하던 시절 직원들중 일부는 상계동에, 일부는 강남에 집을 샀다. 당시에만 해도 가격차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직원들간 희비가 완전히 갈렸다" 그만큼 교통 교육 상업 문화 주거 중심지로 발돋움한 강남과 베드타운 기능으로만 머문 강북 상계동간의 위상은 하늘땅 만큼이나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