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심기 건드리지말고 뺄 건 빼자'
재건축‧재개발 조합들이 기존의 사업 계획을 수정하거나 입찰 제안 내용을 철회하며 몸 사리기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나 서울시의 별다른 경고가 없었음에도 자발적으로 총회를 열고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등 위법 소지가 있는 항목을 매만지고 있다. 괜히 정비사업 인허가권자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눈 밖에 나 한남3구역에 이은 제2의 본보기가 될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시장에선 이를 통해 정비사업 수주의 불공정한 관행이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오는 한편 이런 조치가 조합원의 부담을 가중하고 도시 경관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 혁신설계 빼고 빨리 가자!…도로 성냥갑아파트
'재개발 최대어'로 꼽히는 용산구 한남3구역은 지난해 말 현대건설, 대림산업, GS건설 등 3개 시공사가 수주 경쟁을 벌이다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입찰 제안을 하면서 이례적으로 국토부와 서울시의 합동점검을 받았다.
점검 결과 혁신 설계, 재산상 이익 등이 위법 사항으로 꼽히며 이례적으로 '입찰무효 및 재입찰' 철퇴를 맞았다.
설계의 경우 도시 및 주거정비환경법(도정법)에 따라 사업시행계획인가의 '경미한 변경'만 할 수 있는데 이를 넘어서는 혁신 설계를 제안한 게 문제가 됐다. 스카이브릿지를 설치하거나 가구 수 변경, 커튼월룩 조성 등이 그 예다.
결국 한남3구역 조합은 재입찰을 결정하면서 3개 시공사의 입찰 자격은 유지하되 혁신설계안을 배제하기로 했다. 논란의 소지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송파구 잠실동 '미성‧크로바 재건축' 조합의 경우 기존에 승인했던 혁신설계안을 철회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지난 2017년 시공사로 선정된 롯데건설은 단지에 중앙광장 조성, 지하주차장 확대, 스카이브릿지 설치, 커튼월 적용 등의 다양한 특화설계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조합은 최근에 이런 혁신설계안을 대부분 빼고 서울시의 의견이 반영된 설계변경계획승인안을 공개했다.
이 안에는 도로변에 인접한 아파트 동의 높이를 최저 6층으로 낮추고, 소형 임대주택을 추가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각종 고급 설계를 도입해 랜드마크 단지를 만들려 했던 기존 계획과 달리, 새로 바뀐 설계안을 보면 성냥갑 모양의 아파트를 연상케 한다.
조합 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조합은 최근 이런 변경 계획이 담긴 건축심의안을 서울시에 제출해 확정을 기다리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서울시 요구를 거부하고 간다면(사업을 추진한다면) 결국은 시장의 지시로 계속 수정하게 될 것"이라며 "다른 정비사업장에서도 스카이브릿지 등 혁신설계 때문에 몇 번씩 퇴짜 맞아서 시간만 보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고 말했다.
◇ 더 예민해진 '돈'…"이주비 받지 말자"
금전적 이익 제공이 될 수 있는 제안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한남3구역의 경우 입찰 제안 중 사업비 무이자 지원 등을 금전적 이익 제공이라고 보고 도정법(제132조)을 위반했다고 지적됐다.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 제34조1항에도 '건설업자 등은 이사비, 이주비, 이주촉진비 등 시공과 관련없는 사항에 대한 금전이나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는 제안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다만 재건축 외 정비사업(재개발 등)은 사업시행자 등이 '금융기관으로부터 조달하는 금리 수준'으로 추가 이주비를 사업시행자등에 대여하는 걸 제안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시공사들은 입찰 제안 시 이주비를 '무이자'로 지원해주려 한다는 점이 문제로 꼽혔다.
은평구 대조동 '대조1구역' 재개발 조합도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2017년 수주 당시 조합원 1인당 이사비 1000만원을 제공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최근 한남3구역 사례 등을 검토한 후 '이사비 1000만원 지급 건'을 오는 17일 정기총회에서 논의키로 했다. 총회에서 이사비 지급 철회가 결정되면 현대건설에게 받기로 했던 이사비를 조합의 사업비에서 충당하게 된다.
이에 대해 대조1구역의 한 조합원은 "조합장에게 지급 방식 등을 위임하는 식으로 안건이 올라오긴 했는데 총회날 이사비에 대한 보전 방식을 상세 설명한다고 하는 걸 보면 지급 철회될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며 "조금 손해보더라도 논란거리를 남기지 않는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비업계의 이런 분위기에 대해선 우려와 기대가 공존하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한남3구역 제재 이후 정비사업 수주전의 경쟁 과열이 식고 올바른 수주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장기적으로 볼때 랜드마크적 요소가 부재하고 획일화된 성냥갑 아파트가 늘어설 수 있다는 점에선 도시 경관을 발전시키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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